청량리성당 장년게시판

기형도 님의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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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 [kks114] 쪽지 캡슐

2001-10-23 ㅣ No.3126

 

흩어진 그림자들,

모두 한 곳으로 모으는

그 어두운 정오의 숲 속으로

이따금 나는 한 개 짧은 그림자 되어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쉽게 조용해지는 나의 빈 손바닥 위에 가을은 둥글고 단단한 공기를 쥐어줄 뿐..

그리고 나는 잠깐동안 그것을 만져볼 뿐이다..

나무들은 언제나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작은 이파리들은 떨구지만 나의 희망은 이미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너무 어두어진 모든 추억들은 갑자기 거칠어진다..

내 뒤에 있는 캄캄하고 필연적인 힘들에 쫓기며,

나는 내 침묵의 심지를 조금 낮춘다..

공중의 나뭇잎 수효만큼 검은 옷을 입은 햇빛들 속에서,

나는 곰곰히 내 어두움을 생각한다..

어디선가 길다란 연기들이 날아와 희미한 언덕을 만든다,

빠짐없이 되살아나는 내 젊은 날의 저녁들 때문이다..

 

한 때 절망이 내 삶의 전부였던 적이 있었다..

그 절망의 내용조차 잊어버린 지금

나는 내 삶의 일부분도 알지 못한다..

이미 대지의 맛에 익숙해진 나뭇잎들은

내 초라한 위기의 발목 근처로 어지럽게 떨어진다..

 

............ 시인 기형도 님의 시입니다...........

 

 

10월의 하늘을 바라보노라면..

그 말간 빛속에선 누구나..

한줄기 추억속에 혹은..

아련한 기억속에 빠지게 된다..

그 기억의 힘이란..

순전히 날씨탓이다..

계절이 주는 신비한 느낌탓이다..

 

아주조금씩 느리게 시간을 들여 자기 몸에 노오란 색을 들이고..

조금더 시간을 들여 붉은 옷으로 갈아입고 난 후엔..

얼마후쯤엔.. 돌연히.. 자기 몸을 바닥에 내 던진다..

그렇게 알몸인채 시간을 견디어 내는 것을 보아가며..

누구나.. 지난 시간을 추억하기 마련이다..

 

10월이 저물어 가고 있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점점 그렇듯.. 내 젊은 날의 하루가 이렇게 스러져가고 있다..

빛나는 희망을 주워담을 봉지는 충분히 비워져 있다..

하얀 눈을 기다리기 전에..

그 봉지안의 막막한 그리움을 채워 주어야만 할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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