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어린이를 어린이 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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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훈 [p0o9i8] 쪽지 캡슐

2003-04-11 ㅣ No.4751

 

 

어린이를 어린이 답게

 

생활이 정말 험악하고 무서워져 가나 봅니다.

요즘 어린아이들은 너무 일찍 영악해진다고 합니다.

오죽했으면 아이들이 아이들답지 못하고 애어른이 되었

겠습니까?

차라리 세상을 일찍 알고 그에 대처하는 게 낫다고요?

그래도 어린이들이 그 나이에 어울리는 순수함을 잃어

가는 건 안타까운 일 아닐까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발명은 바로 어린이의 마음이라는

말도 있는데 말입니다.

여기 어린이를 어린이답게 지켜 주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충청북도 청원군 두메산자락에 있는 내곡초등학교.

이 학교에서 제일 큰 어른은 오하영 교장 선생님(60세)

입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제일 큰 아이도 교장 선생님입니다.

언제나 아이들 속에서 매일같이 신나는 일들을 만들어

내는 놀기 대장이니까요.

그런 선생님이 어느 학교를 가든 아이들에게 빠지지 않고

하는 첫 인사가 뭔지 아십니까?

"여러분의 친구가 오늘부터 한 명 더 늘었어요. 우리

같이 재미있게 놀아요."

입학식 날이라고 예외가 될 순 없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훈화를 해야 할 자리에서 느닷없이 마술쇼

를 보여 줍니다.

웬 마술쇼냐고요?

선생님은 아이들이 불안과 두려움으로 운동장에 서 있다는

걸 압니다. 학교라는 곳에 처음으로 온 아이들,

그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학교가 마술처럼 재미있는 곳이라

고 일러 주고 싶습니다.

그 마음이 벌써 아이들에게 전달된 걸까요?

어느새 아이들이 까르르 웃음을 터뜨립니다.

"신기해요. 웃겨 죽겠어요."

선생님이 마술을 배우기 시작한 건 3년 전부터입니다.

아이들의 친구가 되고 싶어서 마술책과 마술 도구들을 사

모아 독학 으로 갈고 닦은 솜씨로 선생님이 보여 주시는

마술 레퍼토리는 스물 다섯 가지 정도.

전교생이라야 128명이 전부인 작은 학교이긴 하지만 선생

님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아이들 틈에서 안끼는 데가

없습니다.

점심 시간 급식을 받기 위해 줄 서있는 아이들에게 동전

마술을 선보이며 무료함을 달래 주는 것도 선생님입니다.

"저기에서 딱 뺐잖아요."

아차, 근래에 익힌 새로운 기술을 보여 주는데 실수를

했습니다.

예전에도 그런 적이 몇 번 있습니다.

동전 마술을 보여 주면서 동전을 옷소매에 재빨리 감춰야

하는데 바닥에 떨어뜨린다든지,

물건을 옷 안에 숨겼다가 꺼내야 하는 순간에 어디 뒀는

지 찾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면 선생님은 모르는 척 얼른 다른 마술로 넘어

갑니다.

조금은 허술한 마술사 선생님.

그래도 아이들한테는 늘 인기 최고입니다.

조용한 오후,

교장 선생님은 아이들을 위해 또 하나의 마술을 준비

합니다.

알록달록한 교실이며 운동장 놀이기구에 손수 색을

입히는 겁니다.

페인트로 학교를 동화 속 멋진 모험의 나라처럼 꾸미는

선생님의 손길은 바쁘기만 합니다.

화장실도 예외는 아닙니다.

선생님은 사비를 털어서 방향제, 꽃, 그림 액자,

휴지 걸이, 비누, 수건등을 마련해 화장실도 기분 좋은

공간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재미있는 규칙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이 등교하자마자 학년 수만큼 운동장을 뛰게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1학년은 한 바퀴,

6학년은 여섯 바퀴를 뛰어야 합니다.

선생님은 뭐 하느냐고요? 선생님도 같이 뜁니다.

그렇게 늘 아이들 곁에 있는 오하영 교장 선생님은

교장실 문도 활짝 열어 둡니다.

혹시 지나가던 아이들이 문이 닫혀 있으면 용기를 내지

못할까 미리 열어두는 것입니다.

원하면 언제든 들어와 놀다 가라고....

그러나 그건 선생님의 기우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 교장실은 재미있는 놀이터입니다.

아이들은 여기저기 수북이 쌓여 있는 마술 도구들을 가지

고 장난을 치기도 하고, 선생님께 마술을 배우기도 합니다.

가끔 6학년 여학생들은 남자 친구에게 이메일을 받으면

교장실로 달려와 그 내용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건전한 교제는 좋은 거니까 많이 사귀어

보라고 귀뜸해 주신답니다.

오늘은 교장실에서 중요한 연중 행사가 있습니다.

손톱에 봉숭아물 들이기.

꽃잎은 작년 여름에 선생님이 미리 따 놓은 것입니다.

"와, 연분홍 손톱 위에 봉숭아 꽃이 피었네."

붕숭아 물을 들인 손톱을 신기하게 쳐다보던 아이들이

선생님의 손을 잡아 끕니다.

"선생님, 우리 나가서 공기 놀이해요."

아이들과 함게 어울려 놀기 좋아하는 선생님이 마다할 리

없습니다.

선생님은 무조건 좋다고 아이들을 따라 운동장으로 나갑니다.

그러니 학부형들이 선생님께 학교에 필요한 물건이 뭐냐고

물어 보자 대뜸 "노래방 기계" 라고 말한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아이들이 서로 어울려 노래 부르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걸

선물해 달라고 말했을 뿐이니까요.

학부형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에 조금 당황해하긴 했지

만 선생님은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저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 주고 추억을 만들어 주는 데

여념이 없는 오하영 교장 선생님.

그런데 선생님은 정작 어린이들의 친구가 되어서 좋은 건

자신이라고 말합니다.

어린이들의 천진난만한 세계에서 같이 어울리며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어서 말입니다.

어려서부터 꿈꾸던 선생님이 된 지도 벌써 40여 년.

아이들과 함께 보낸 그 세월 동안 마음은 나이를 잊었습니다.

그런 선생님이 가장 아끼고 보물은 전교 어린이들의 모습과

별명,

희망이 적혀 있는 사진첩입니다.

그것을 들춰 보면서 선생님은 소망합니다.

어린이들이 어린이 답기를,

그래서 아이들이 어른의 아이가 아니라

자연의 아이로 커 나가기를.....

그렇게 하기 위해서 선생님은 앞으로도 어린이들의 친구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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