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성당 장년게시판
노래와 세월-"부용산 오리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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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산 오리길에
부용산 오리길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솔밭 사이 사이로/ 회오리 바람 타고 /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너는 가고 말았구나/
피어나지 못한 채/ 병든 장미는 시들어지고/
부용산 봉우리엔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박기동 작사 /안성현 작곡)
내가 처음 이 노래를 들은 것은 고1때였다. 나는 그때 어느 선배와 방을 같이 쓰고 있었는데 그 선배가 종종 이 노래를 부르곤 하였다. 애조 띤 가락과 슬픈 가사가 가슴을 저려와 노래의 사연을 물어 보았다.사연은 노래처럼 슬픈 내용이어서 오랫동안 기억하게 되었다.
해방 후 목포 항도여중에 예쁘고 공부 잘하는 학생이 있었는데 며칠동안 결석을 하였다. 걱정이 된 담임선생님이 가정방문을 했더니 학생이 폐결핵으로 며칠 전에 죽었다는 것이었다. 기가 막힌 선생님은 묘소를 물어 찾아가 죽은 제자의 넋을 위로하고 돌아오면서 제자의 죽음이 너무도 안타까와 그 심정을 시로 써서 당시 목포일보에 사연과 함께 기고를 했다한다. 그를 본 어느 음악 선생이 곡을 붙여 역시 신문에 기고를 했고 그때부터 이 노래가 불려지게 되었다 한다. 노래를 잘 하지 못하는 나는 기억마저 아련한 가사와 애조 띤 멜로디 만 가슴에 담은채 오랜 세월을 지내왔다.
98년 2월에 한국일보 김성우 칼럼에서 우연히 부용산 노래의 정확한 내력을 읽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알고있는 것과는 다소 달랐지만 기본적인 흐름은 같았다. 작곡·작사자 미상으로 알려져 온 그 노래의 작사자는 당시 항도여중의 국어교사였던 시인 박기동씨였으며 작곡자는 같은 학교의 음악교사였던 안성현씨라고 밝히고 있다. 또 시가 쓰여진 사연은 박기동씨가 일찍 죽은 여동생을 애도해 쓴 것이며 같은 무렵에 죽은 제자의 죽음도 추모하고 있었다 한다. 작곡자 안성현은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를 작곡했으며 월북한 무용가 최승희의 남편 안막의 조카로 6.25때 월북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노래는 오랫동안 부를 수 없는 노래가 되었던 것이다. 98년 봄, 몇 사람의 노력으로 당시의 악보가 발견됐고 수소문끝에 지금은 이민 가서 호주에서 살고 있는 작사자 박기동씨에게서 52년만에 2절 가사까지 받게 되어 목포에서 음악회까지 열렸다.
새로 지어진 2절 가사는 이랬다.
그리움 강이 되어/ 내 가슴 맴돌아 흐르고/
재를 넘는 석양은/ 저만치 홀로 섰네/
백합일시 그 향기롭던/ 너의 꿈은 간 데 없고/
돌아서지 못한 채/ 나 외로이 예 서 있으니/
부용산 저 멀리엔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이 노래는 학창시절의 내 추억의 일단이기도 하다. 마치 사랑을 시작도 하지 않은 채 실연당한 듯한 느낌을 주기도해서 그때를 돌아보게한다. 내게 노래를 가르쳐주던 그 선배는 젊어서 이미 세상을 떠났고 나도 이제는 노래보다 세월의 흐름이 더욱 가슴 시리는 나이가 되었다. 또 한해도 저물어 가고 있으니 괜한 회한이 밀려오곤 한다.
나는 오랜 기억을 더듬어 때로 이 노래를 부르곤 한다. 가슴 속에만 맴돌던 옛 노래의 악보도 나왔고 가수 이동원, 안치환도 이 노래를 불렀다. 사람들은 가도 노래는 남아 옛 시름을 다독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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