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농동성당 게시판

오늘날씨가 시한편 읽음 좋을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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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송희 [kitty2529] 쪽지 캡슐

2001-09-14 ㅣ No.2149

                       그 집의 나무

 

                                                    이민하

 

나무는 선채로 뼈가 굵었던 것이다 몸피를 늘려가며

 

두 발을 꼭꼭 묻었던 땅을 더 단단하게 밟았던 것이다

 

그 집의 붉은 벽, 벽돌 하나쯤으로 여겨져 쓸쓸했던 나무는

 

계절 따라 몸 바꾸고 삐딱하게 서 보았지만 지나는 사람들은 눈치 채지 못했다

 

입버릇처럼 뿌리를 그리워하는 담장 너머의 차들 골목을 빠져나갈 때

 

저도 모르게 훌쩍 목만 길어진 나무

 

목 위로 손을 무수히 매달고 손끝마다 수만 개의 눈을 박아 넣은 나무는

 

팽팽한 하늘에 새하얀 기저귀 같은 햇빛이라도 널리는 날엔

 

그 많은 눈으로 반짝 울어도 보았던 것이다

 

훔쳐보는 세상이 부끄러운 밤이면 제 그림자를 끌며

 

맨살로는 닿을 수 없는 바닥을 천천히 어슬렁거리는 나무

 

어쩌다 바람이 스치면 빽빽이 손을 뻗어 온 몸이 종이 되는 나무는

 

푸르게 멍이 들도록 바람에 부딪히며 밤새 아침을 깨웠던 것이다

 

그렇게 제 몸 안에서 어둠을 앞지르는 걸음마를 익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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