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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예수를 안고계신 마리아-도시빈민♬Ave Mundi Spes Ma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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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정 [wjyou57] 쪽지 캡슐

2002-12-22 ㅣ No.806

"아기 예수를 안고 계신 마리아" - 성 이냐시오 영성 카페에서

 

지난 크리스마스 때 필리핀 도시 빈민들을 위해 일하고 계신 분이 한 신부님께 크리스마스 선물로 이 사진을 확대하여 액자로 만들어 가지고 왔다.

 

처음 나는 이 사진을 보았을 때, 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사도직에 관심이 많은 신부님이시기에 자신이 활동하는 빈민촌의 어려운 상황을 사진에 담아 가지고 왔다는 생각으로 큰 관심 없이 사진을 보았다.

 

그 때 한 신부님이 내게 이 사진은 "아기 예수를 안고 계신 마리아"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 크리스마스 선물로 보내온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아기 예수를 안고 계신 성모님의 사진이라…" 나는 한동안 이 사진을 유심히 바라 보면서 이 사진 속에서 참된 아기 예수와 마리아의 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우리는 보통 예수와 마리아의 모습을 아름답고 화려하게 장식하거나 유태인의 모습으로 그린다. 그러나 그것은 참된 그리스도의 육화된 모습이 아니다. 즉, 인간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모습이라 볼 수 없다.

 

그리스도의 참된 육화는 2000년전 이스라엘에서 인간이 되어 태어나신 예수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시대에 우리 삶의 한 가운데에 머물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2000년 전 예수님의 육화는 바로 끊임없이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삶의 한 가운데에서 계속 되고 있다. 어떻게 우리는 그리스도 육화의 의미를 2000년전의 이스라엘 지방으로 제한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그리스도의 육화의 의미를 현세의 시간과 공간에 가두어 버리는 것이다. 그리스도 육화의 의미는 그러한 시간과 공간적 의미 아니라 우리 인간 삶의 한 가운데 인간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기에 우리는 바로 육화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그리고 우리 삶의 한가운데서 찾아야 한다.

 

그러므로 참된 아기 예수의 모습은 우리의 현실과 동떨어진 그러한 모습이 아니라 바로 우리 주변의 너무나도 흔해서 별로 관심이 없는 그런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듯 우리 주변에 육화해 계신, 우리의 현실에 구체적으로 현존하고 계신 참된 예수와 마리아의 모습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사진을 참된 우리 시대의 예수와 마리아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비유적인 표현으로 사진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이고 마리아라는 것이 아니다. 또한 그것은 우리가 어떤 대상을 인식하고 파악하는 그러한 우리의 인식 구조에 기인하여 파악되는 예수이고 마리아라는 의미도 아니다. 그것은 그러한 사고 형식을 뛰어 넘는 참된 의미에서의 예수이고 마리아인 것이다.

 

우리는 성서를 통해 예수님의 승리는 나약함을 통해 이 세상에 드러남을 알 수가 있다.

 

그분은 늘 가난한 자들과 병든 자들 그리고 보잘것 없고 하찮다고 당시 생각했던 사람들 그리고 많은 이들로 부터 버림 받은 죄인들과 늘 함께 하셨던 그런 분이다. 그렇다면 그런 가난하고 보잘것 없는 곳에 왜 예수님은 늘 함께 하시었을까?

 

예수는 또 성서에서 가난한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끊임 없이 말씀하시며, 가난한 네 이웃에게 해 준 것이 곧 나에게 해준 것이라고 말씀을 하신다. 그렇다면 어떻게 가난한 형제에게 해 준 것이 곧 예수께 해드린 것일까? 그것은 단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닐까? 그만큼 사랑을 실천하라는 말씀이 아닐까?

 

우리는 가끔 사랑을 실천하기에는 너무 상대방이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경우를 보곤 한다. 그리고 상대방으로 부터 그를 도우려는 진실된 마음을 배반 당하곤 한다. 때론 충분히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장애자의 모습을 하고 애절하게 구걸하는 걸인을 보곤 한다. 그리고 집 없는 어린 아이들을 시켜 구걸하여 오도록 하는 사람들을 본다. 때로는 그런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푼다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갖기도 한다. 그리고 나의 진실된 사랑의 마음을 몰라 주고 배반하는 사람에게 사랑은 아무 의미없는 듯이 느껴지곤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는 또 어떻게 사랑을 베풀 수 있을까?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새로운 관념이 필요하다. 우리가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울 때, 우리는 그 사람에게 다시말해 어떤 대상에게 즉 절대적으로 그와 분리된 주관과 객관의 입장에서 내가 그를 도와 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 대상을 잃어 버려야 한다. 즉, 그것은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실천이라는 그 행위적 사실 자체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선을 베풀 때는 상대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는 그 행위에 포인트가 있다. 사랑이 있는 곳에 하느님도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 내 힘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 보다는 사랑의 실천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고 또 그 사랑의 실천이 곧 하느님께 해드리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사랑을 실천할 때 그 대상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이처럼 우리가 그 객관적인 대상을 잃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이 사진을 보며 그들이 어느 필리핀 도시 빈민 지역에 살고 있는 한 어머니와 아기가 아니라 그들이 바로 참된 예수요 마리아라는 것을 받아 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주변의 어렵고 힘든 그리고 내 힘을 필요로 하는 형제들을 만날 때, 우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이고, 그에게 해주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께 해 드리는 것이다. 그것은 사랑의 실천이며, 그 사랑에 하느님이 함께 하신다.

 

그렇다면 우리는 책상 앞에 모셔진 성모자상 만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을 살펴 보며 우리 삶 안에 구체적인 모습으로 현존하고 계신 예수와 마리아를 찾아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할 것이다.

 

♬3.Ave Mundi Spes Maria-베네딕도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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