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동성당 게시판

아! 안중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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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준태 [pete3200] 쪽지 캡슐

2002-07-16 ㅣ No.1783

안의사의 遺墨유묵은 대부분 1910년 2월부터 3월 26일 殉國순국 직전까지 썼으며, 모두200여 점으로 추정하지만, 300여 점이라 주장하는 일본인도 있다. 현재까지 40여 점이 발견되었으며, 안의사의 여순 감옥 수감시절 주변에서 친절을 베풀어준 關東都督府관동도독부 법원 및 여순감옥 옥리-교도관 등 관계 당국의 일본인이나 친지들에게 써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의사 유묵은 안의사가 어려서부터 배운 漢學한학을 기초로 先賢선현-윗어른으로부터 듣고 배운 文章문장들을 독창적으로 인용하여 寸鐵殺人촌철살인(한 치의 쇠로 사람을 죽인다)- 짤막한 경구(警句)로 사람의 마음을 크게 뒤흔드는 구성을 해낸 것으로, 모두 落款낙관-글씨나 그림에 작가가 자신의 이름이나 아호(雅號)를 쓰고 도장을 찍는 일. 또는, 그렇게 찍힌 도장. 관지(款識).-대신 1909년 正月정월 동지 11명과 함께 斷指同盟단지동맹-손가락을 끊어 뜻을 같이 함을 피로써 맹세하며 자른 왼쪽 手印수인-손도장이 찍혀 있다. 안의사의 유묵은 예술적 가치도 뛰어나지만 유묵집의 한편마다 담긴 깊은 의미와 교훈을 되새겨 봐야할 것이다. 사형을 目前목전-눈앞에 두고 悲壯비장-슬프도록 장엄한 안의사의 심정을 헤아려 보자. 안중근의사 숭모회 ’안중근 기념관’에서 발행한 <大韓國人 安重根대한국인 안중근>을 기초로 引用-끌어다 사용 揭載게재하면서 특별히 ’默想묵상을 위한 자료집’을 만들어 보았다. 유묵의 설명도 특별히 표현에 문제가 있지 않는 한 고치지 않고 상기-위에 적은 안의사 기념관의 자료에 실린 설명을 가급적-되도록 그대로 실었다.

 

爲國獻身 軍人本分 위국헌신 군인본분

나라 위해 몸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

 

이 문장은 안의사가 여순감옥에서 공판정을 오갈 때마다 경호를 맡으면서 안의사의 사상과 인격에 감복-마음 깊이 느껴 충심으로 따르며, 안의사를 스승으로 받들었던 일본인 간수-교도소 근무의 한 직종 헌병 치바 도시치에게 써 준 것으로 전해진다. 치바 도시치는 안의사가 순국한 뒤 고향으로 돌아가 센다이시에서 철도원으로 근무하면서 안의사의 반명함판 사진과 유묵을 모셔놓고 하루도 빠짐없이 참배드렸다고 한다. 그가 죽고 난 후에는 부인이 이 일을 대신하다가 부인마저 사망하자 양녀-입양한 딸이며 질녀-조카 딸인 미우라씨가 그 뒤를 이었다 한다. 이를 알게된 ’동경 국제 한국연구원 최서면 원장이 장장 10년여에 걸친 교섭으로 이를 헌납받아 1980년 8월 23일 안의사 기념관에 기증했다.

보물 제 1150-2호 이다

 

百忍堂中 有泰和 백인당중 유태화

백번 참는 집안에 태평과 화목이 있다.

 

인내를 강조한 문장. 선현들의 口傳구전-입으로 전해오는 글귀로 "한결같이 부지런히 일하는 세상에는 어려움이 없다 一勤天下無難事 일근천하무난사"와 짝을 이루는 문장이다. 현재 강신종씨가 소장하고 있다. 보물제 569-1호 이다

 

 

1999년 신성국 神父신부 지은

’義士의사 안중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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