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동성당 게시판
복중에 기억해보는 성탄 자시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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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예수님
어려서의 기억 아름다운 기억
지나간 기억들은 아름다울 수 있는지? 어려서의 기억이 모두가 아름다울 수 있는지? 모르겠으나 언젠가도 잠시 언급했지만 첫 번째 성탄자시미사를 이 복중에 기억한다.
얼마나 행복한가 기억의 창고 생각나면 꺼낼 수 있는 큰 열매 붙어 더 아름다워진 보물단지 속의 기억들
--- --- --- 보릿고갠 여적 있었으나 한 겨울 뜨끈한 사랑방엔 메주덩이가 달렸고 지난여름 추수한 옥수수가 바짝 말라 어른들은 저녁이면 사랑방에 둘러 모여 수북히 쌓아 놓은 마른 옥시기를, 뭉툭한 송곳으로 옥수수를 타개는 밤이면
조그만 시골동네에도, 누구였는지? 메밀묵을 사라고! 찬 공기를 가르고 구성지게 불러 제끼며 다니곤 했는데 어느 해 성탄이 가까워 오며 어른들이 모두들 기뻐하시는 것 같아 뭣 도 모르며 나도 덩달아 좋아했었나 보다.
얘기로만 듣던 성탄 자시미사를 기대하며 준비하시던 (아마도 동란 후 처음이었던? 아님 성당이 생긴 55년만에 처음?)
어른들의 모습들이 아마도 그랬던 것인가 한다.
난 그해 봄, 혁명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은 것 같다. 4.19가 나던 바로 그해 자시미사를 드렸다.
내가 기억하는 첫 자시미사인 것이다. 그해 겨울, 그 무렵 내가 살던 치악산 자락, 街촌(Not 산촌)에도 지방자치 선거(?)로 도의원, 면장 선거인가를 했는데
자시미사를 끝내고 나와보니 성당에 들어가기 전엔 없었던 눈이 정말 많이 쌓였는데 어린 내 무릎높이의 거의 반 정도는 되었던 것 같다.
걱정이 되셨던지 언제 끝날 줄 모르셨던지 성당에 들어오시기 쑥스러 우셨던지 그때는 외인이셨던 선친의 중절모에도 눈이 제법 쌓여있었다.
오밤중에 미사 한다는 아내와 아이들을 마중하시기 위해서 선거운동 방향을 성당 쪽으로 미리 잡으셨던가 보다. 미끄러웠을 그 길을 눈에 푹푹 빠졌을 그 십여 리가 좀 못되는 길을 얼마나 걸려서 집까지 왔는지 기억 없으나 먼 오리 길이었으니 어린 다리로 시간 여는 걸렸을 것이다.
아무 것도 모르면서 시작한 성탄 자시미사를, 그 후로도 아직까지 빼먹지 않았으니 이런 은총도 쉽지는 않으리라 생각된다. 몇 차례 끊어질 수도 있었으나 가능했었다. 군에 간 첫해에도 대대장의 뜬 금 없는 저녁시간 외출허가로 늦었지만 그해 본당의 자시미사를 드렸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선택했다."는 말씀이 더 새로운 것은 나의 자만일 것이 리랴만 첫 번째 자시미사로부터 금년 마흔 세 번째의 성탄도 기억되는 성탄으로 연속되면 좋겠다.
바드리시온 군에 안셀몬 공부하러 떠나 둘만 있는 여름밤이 덥기는 한가? 냉방기는 전기룔 아끼겠다고 에스텔이 쳐다보지도 않는 이 여름 복중에 성탄을 기억해본다. --- --- --- 성탄을 기억해서 조금 시원해 졌나?
아님, 더 더워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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