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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5일 성 이시도로 농부 축일♬13.Christus Na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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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정 [wjyou57] 쪽지 캡슐

2003-05-15 ㅣ No.1163

축일: 5월 15일

성 이시도로 농부

Saint Isidore the Farmer

농부들의 수호성인.1070-1130년

 

 

하느님께서는 사회의 모든 계급과 모든 방면의 사람들에게 자기 모범이 되고 보호자가 될만한 여러 성인을 나게 하셨다.

성 이시도로는 일생동안 농사를 지으며 지낸 관계로 전 세계의 농부의 보호자로 공경을 받는 성인으로서 시골 공동체의 수호 성인이다.

특히 그는 스페인의 마드리드와 미국 국립 농촌 생활 위원회의 수호자이다.

농부인 성 이시도로는 1070년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 태어났다.

4월 4일의 성 이시도로는 주교이고 교회 학자일뿐 아니라 농부 이시도로보다 약 6백 년이나 먼저 태어난 사람이다.

 

집안이 구차하고 학교에 갈 여유조차 없었던 그는 책을 잃고 쓰는 것을 몰랐지만, 영혼 구원에 필요한 진리에 대해서는 기도중에 직접 하느님께 배운 때도 있었고, 혹은 강론을 들으며 배움으로써 학자들에게도 떨어지지 않을 만한 지식을 구비하고 있었다.

 

그는 양친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겨우 괭이를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나이 때부터 마드리드 부근의 후안 데 베르가스라는 사람의 농장에 고용되어 "기도하고 또 일하라!" 는 트라피스트의 표어대로 노동 시간에는 열심히 일했지만, 매일 아침 미사 성제에 참여하며 기도를 올리는 것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이시도로에게는 깊은 종교적 심성이 있었다. 그는 성당에 가기위해 아침 일찍 일어났으며, 휴일에도 마드리드와 그 주변 성당을 순례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런 만큼 일요일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하느님을 위하여 주일답게 거룩하게 지내며 노동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동료들은 이시도로에 대해서, 그는 신심을 빙자로 농사일을 게을리하고 있는 자라고 주인에게 고발했으므로 주인도 그에 대해 "너와 같은 느림뱅이는 없다!"라던가 "아침에 밭에 나오는 것이 그렇게도 느리니 아마도 정한일을 하지 못하는게 아니냐?"는 등 잔소리를 퍼붓는 때도 종종 있었다.

 

그래서 하루는 이시도로가 "그러면 내가 부치는 밭과 다른 사람이 부치는 밭하고 어느 것이 수확을 더 많이 거두게 되는지 비교해 보십시오"하고 청했다.

주인은 시험삼아 비교해보니까 놀랍게도 주일날도 쉬며 아침저녁에도 오래 기도하는 이시도로의 밭이, 항상 붙어서 일하는 이들의 것보다 더 수확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은 하느님의 축복이 경건한 이시도로 위에 풍성히 내려진 덕분이라 하겠지만, 그러한 사실로 보아 그가 일할 때에는 천사가 와서 거들어 준다던가, 혹은 기도하는 동안에는 천사가 대신 일을 해 준다는 소문까지도 퍼지기에 이르렀다.

 

 

그는 같이 일하던 마리아 토 리비아라는 단순하며 소박하고 정직한 여인과 결혼했는데 그녀 역시 남편 못지 않은 신심과 가난을 살았으므로 산타 마리아 데 카베사란 이름으로 공경을 받는다. 그들은 매우 화목하여 후에 한 아들을 낳았다가 조금 자라서 아들이 죽자 그 뒤부터는 남매와 같이 정결한 사랑의 생활을 했다고 전해 내려온다.

 

그는 일생동안 가난하고 검소하게 생활했지만, 곤궁에 빠진 이를 도와 주며 나그네를 대접하는 등 모든 자선 사업을 가장 좋아했다.

이시도로는 가난한 이들에 대해 크나큰 사랑의 마음을 가진 이로 널리 알려졌으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적적으로 음식을 마련해 주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그의 자비심은 동물에까지 미쳐 한 겨울에는 먹이가 부족한 것을 염려해 새들에게 보리 알을 뿌려 주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마드리드 교외에 있는 그의 농토는 산비탈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착하는데도 힘이 드는데다가 한 여름의 태양이 한창 쪼일때는 도무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으나, 그는 그것을 죄의 보속으로 생각해 참으며 극기 인내의 덕을 닦는 기회로 삼았다.

 

또한 그는 하루 종일 쟁기질을 하면서 하느님과 대화하였다.

그리고 남의 눈에 띄지 않는 농사일을 하느님께 봉사해 드리는 무상의 직무로 만족하고, 종자를 뿌릴 때에는 주 예수의 씨 뿌리는 비유를, 재잘거리는 새소리를 들을 때에는 하늘의 새의 비유를 상기하여, 그속에 포함된 진리를 묵상하고 창공을 쳐다보고서는 천국의 영광을 연상하는 등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며 어느덧 60세에 달해 마침내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1130년 5월 1일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은 얼굴은 형언할 수 없는 성스러운 광채로 가득 차, 보는 이로 하여금 무의식중에 "아, 이 사람은 성인이었다!"하고 부르짖게 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 뒤 그의 전구로 기적이 많이 일어났지만, 그 중에도 스페인 국왕 필립보 3세는 그의 전구로 중병이 완치된 것을 매우 기뻐하며 그를 스페인 왕실의 보호자로 존경하며 그를 성인품에 올리도록 간청했는데, 1622년 그레고리오 15세 교황 치하에 이냐시오, 예수의 데레사,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및 필립보 네리와 같이 이시도로도 성인품에 올라 만민의 영광을 받게 되었다. 이들은 ’다섯 성인’으로 스페인에 잘 알려진 인물들이다.

 

 

 

♬13.Canto Gregoriano-Christus Na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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