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동성당 게시판

[성서] 로마 4,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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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석 [haein] 쪽지 캡슐

2002-01-05 ㅣ No.8390

 

아브라함의 믿음

 

 1. 우리 민족의 조상 아브라함의 경우는 어떠했습니까?

 

 2. 만일 아브라함이 자기 공로로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얻었다면 과연 자랑할 만도 합니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3. 성서에 "아브라함은 하느님을 믿었고 하느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해 주셨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4. 공로가 있는 사람이 받는 보수는 자기가 마땅히 받을 품삯을 받는 것이지 결코 선물로 받는 것은 아닙니다.

 

 5. 그러나 아무 공로가 없는 사람이라도 하느님을 믿으면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얻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비록 죄인일지라도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6. 그래서 다윗도 선행과는 관계없이 하느님께로부터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받은 사람의 행복을 이렇게 읊었습니다.

 

 7. "하느님께서 잘못을 용서해 주시고 죄를 덮어 두신 사람들은 행복하다.

 

 8. 주께서 죄없다고 인정해 주시는 사람도 행복하다."

 

 9. 이러한 행복은 할례를 받은 사람만이 누리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도 누리는 것입니까? 우리는 앞에서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해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10. 언제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가 할례를 받은 후입니까? 받기 전입니까? 할례를 받은 후가 아니라 받기 전의 일입니다.

 

11. 아브라함은 할례를 받기 전에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뒤 그것을 확인하는 표로 그는 할례를 받았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할례를 받지 않고도 믿음으로써 올바른 사람이라고 인정받은 모든 사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12. 또 아브라함은 할례받은 사람들의 조상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할례받은 사람들이란 그저 할례를 받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할례받기 전에 보여 준 믿음을 볻받아 사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믿음으로 이루어진 하느님의 약속

 

13.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세상을 물려 주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것은 아브라함이 율법을 지켰다 해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하셨기 때문에 하신 약속이었습니다.

 

14. 만일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만이 상속자가 될 수 있다면 믿음은 무의미 하게 되고 그 약속은 무효가 됩니다.

 

15. 법이 없으면 법을 어기는 일도 없게 됩니다. 법이 있으면 법을 어기게 되어 하느님의 진노를 사게 마련입니다.

 

16.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상속자로 삼으십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은총을 베푸시며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에게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르는 사람들에게까지, 곧 아브라함의 모든 후손들에게 그 약속을 보장해 주십니다. 아브라함은 우리 모두의 조상입니다.

 

17. 성서에 "내가 너를 만민의 조상으로 삼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게 만드시는 하느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18. 아브라함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믿어서 마침내 "네 자손을 저렇게 번성하리라."고 하신 말씀대로 "만민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19. 그의 나이가 백 세에 가까와서 이미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이 되었고 또 그의 아니 사라의 몸에서도 이제는 아기를 바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는 믿음을 가지고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20. 그는 끝내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의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더욱 굳게 믿으며 하느님을 찬양하였습니다.

 

21. 그리고 그는 하느님께서 약속하신것을 능히 이루어 주시리라고 확신하였습니다.

 

22. 하느님께서는 이런 믿음을 보시고 아브라함을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하셨습니다.."

 

23.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하셨다."는 말씀은 비단 아브라함만을 두고 하신 것이 아니라

 

24. 우리를 두고 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곧 우리 주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분을 믿는 우리들까지도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25. 예수는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가 우리를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시기 위해서 다시 살아나신 분이십니다.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과의 화해

5장

 

 1. 이렇게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졌으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과의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2.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지금의 이 은총을 누리게 되었고 또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할 희망을 안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3.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기뻐합니다. 고통은 인내를 낳고

 

 4. 인내는 시련을 이겨내는 끈기를 낳고 그러한 끈기는 희망을 낳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5.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 속에 하느님의 사랑을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5. 우리 죄많은 사람들이 절망에 빠져 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때가 이르러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죽으셨습니다.

 

 7. 옳은 사람을 위해서 죽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혹 착한 사람을 위해서는 죽겠다고 나설 사람이 더러 있을지 모릅니다.

 

 8.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많은 인간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확실히 보여 주셨습니다.

 

 9. 우리가 이제 그리스도의 피로써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얻었으니 그리스도의 덕분으로 하느님의 진노에서 벗어나게 될 것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10. 우리가 하느님의 원수였던 때에도 그 아들의 죽음으로 하느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하물며 그분과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에 와서 우리가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받으리라는 것은 더욱 확실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11. 게다가 우리를 하느님과 화해하게 해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덕분으로 우리는 지금 하느님을 섬기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12. 한 사람이 죄를 지어 이 세상에 죄가 들어 왔고 죄는 또한 죽음을 불러 들인 것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죽음이 온 인류에게 미치게 되었습니다.

 

13. 율법을 주시기 전에도 죄는 세상에 있었습니다. 다만 율법이 없었기 때문에 그 죄가 법의 다스림을 받지 않았을 뿐입니다.

 

14. 그러나 죽음은 아담으로부터 모세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을 지배하였는데 아담이 지은 것과 같은 죄를 짓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그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장차 오실 분의 원형이었습니다.

 

15. 그러나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은총의 경우와 아담이 지은 죄의 경우와는 전연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아담의 법죄의 경우에는 그 한 사람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하느님의 은총의 경우에는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덕분으로 많은 사람이 풍성한 은총을 거저 받았습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은총의 힘이 얼마나 더 큽니까!

 

16. 하느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총과 아담의 죄는 그 효과에 있어서 서로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아담의 경우에는 그 한 사람 때문에 모든 사람이 유죄 판결의 심판을 받게 되었지만 은총의 경우에는 죄지은 많은 사람이 은초을 거저 입어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17. 아담의 범죄의 경우에는 그 한 사람 때문에 죽음이 군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은총의 경우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풍성한 은총ㅇ을 입어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거저 얻은 사람들이 생명의 나라에서 왕 노릇할 것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은총의 힘이 얼마나 더 큽니까?

 

18. 그러므로 한 사람이 죄를 지어 모든 사람이유죄판결을 받은 것과는 달리 한 사람의 올바른 행위로 모든 사람이 무죄판결을 받고 길이 살게 되었습니다.

 

19.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된 것과는 달리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20. 법이 생겨서 범죄는 늘어났지만 죄가 많은 곳에는 은총도 풍성하게 내렸습니다.

 

21. 그래서 죄는 세상에 군림하여 죽음을 가져다 주었지만 은총은 군림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게 하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6장

 

 1. 그러면 "은총을 풍성히 받기 위하여 계속해서 죄를 짓자."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2.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미 죽어서 죄의 권세에서 벗어난 이상 어떻게 그대로 죄를 지으며 살 수 있겠습니까?

 

 3.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가 된 우리는 이미 예수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4. 과연 우리는 세례를 받고 죽어서 그분가 함께 묻혔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스러운 능력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5.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이 죽어서 그분과 하나가 되었으니 그리스도와 같이 다시 살아나서 또한그분과 하나가 될 것입니다.

 

 6. 예전의 우리는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서 죄에 물든 육체는 죽어버리고 이제는 죄의 종살이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7. 이미 죽은 사람은 죄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8.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라고 믿습니다.

 

 9. 그것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는 죽는 일이 없어 죽음이 다시는 그분을 지배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0. 그리스도께서는 단 한 번 죽으심으로써 죄의 권세를 꺾으셨고 다시 살아나셔서는 하느님을 위해서 살고 계십니다.

 

11. 이와 같이 여러분도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죽어서 죄의 권세를 벗어나 그와 함께 하느님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십시오.

 

12. 그러므로 결국 죽어 버릴 육체의 욕방에 굴복하지 마십시오. 그래야 죄의 지배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13. 또 여러분의 지체를 죄에 내맡기어 악의 도구가 되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오히려 여러분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으로서 여러분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고 여러분의 지체가 하느님을 위한 정의의 도구로 쓰이게 하십시오.

 

14. 여러분의 율법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은총의 지배를 받고 있으므로 죄가 여러분을 지배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정의의 종

 

15. 그렇다면 우리가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고 은총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해서 죄를 지어도 좋다는 말이겠습니까?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16. 누구든지 자기 자신을 남에게 내맡겨서 복종하면 곧 자기가 복종하는 그 사람의 종이 된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죄의 종이 되어 죽는 사람도 있고 하느님께 순종하는 종이 되어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되는 사람도 있다는 말입니다.

 

17. 여러분이 전에는 죄의 종이었지만 이제는 진실한 가르침을 전해 받고 그것에 성심껏 복종하게 되었으니 하느님께 감사할 일입니다.

 

18. 그리고 여러분은 죄의 권세를 벗어나서 이제는 정의의 종이 되었습니다.

 

19. 여러분의 이해력이 미치지 못할까하여 이렇게 인간사에 비추어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온 몸을 더러운 일과 불법의 종으로 내맡기어 불법을 일삼았지만 이제는 온 몸을 정의의 종으로 바쳐 거룩한 사람이 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20. 여러분이 죄의 종이었을 때는 여러분의 정의에 예속되지 않고 제멋대로 놀아났었습니다.

 

21. 그 때에 여러분이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일들 밖에는 없지 않았습니까? 그런 생활은 결국 죽음을 안겨 줍니다.

 

22. 그러나 이제는 여러분이 죄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여러분은 거룩한 사람이 되었고 마침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23. 죄의 대가는 죽음이지만 하느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사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여기서도 사도 바울로는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올바른사람으로 인정해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국 할례라는 것도 겉으로 들어난 표시이기에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오로지 믿고 따름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음을 보게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오직 당신을 믿고 따르므로 당신에게 희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신분의 귀천을 넘고 이방인들일지라도 그분에게는 모두 당신의 자녀로 받아들인다는, 그분의 자녀가 되기위에서는 아무런 조건없이 오직 ’믿음’이라는 단어 하나뿐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깨닫습니다. 겉으로 들어난 것으로 판단하기 보다 그 개개인이 간직하고 있는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려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바라볼 수 있는 진실의 눈을 키워야겠습니다. 주님, 아브라함이 현실적으로 볼때 불가능한 일이었음에도 오로지 당신의 말씀을 믿고 따른 것처럼 저희들의 마음도 순백의 눈에 새겨진 발자국처럼 당신의 말씀을 그대로 하나의 발자국이 되어 영원히 가슴에 간직하고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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