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음동성당 게시판

사랑과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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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숙 [lhs1708] 쪽지 캡슐

2000-08-19 ㅣ No.941

- 퍼온글<두레박>

 

  어느날 오후 미도파 앞에서 버스를 타려고 바삐 길을 가는 중이었다. 국민학생인 듯한 어린이 몇명이 "아줌마 아줌마"하며 뛰어오길래 다른 사람을 부르는 줄 알고 그냥 지나치려 했더니 불쑥 내 앞으로 와 작은 모금함을 내밀며 "좀 도와 주세요"했다. 양로원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께 선물을 하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얼떨결에 돈을 넣고 "많지 않아서 미안해"했더니 "괜찮아요 아줌마 주님의 축복 많이 받으세요"하며 뛰어갔다.

  마냥 즐거워하던 그애들의 귀여운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하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고 남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정성과 시간을 쏟아야만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죠"하는 인사말에 우린 바쁘다는 대답을 하기가 일쑤다. 또 "얼마나 바쁘십니까"라는 물음에는 말도 못하게 바쁘다는 표현을 예사로 한다. 물론 바쁜 것도 사실이긴 하겠으나 자기가 좋아하는 것, 꼭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위해서는 바쁜 중에서라고 시간을 낼 수 있는 걸 보면 시간의 유무는 인간의 마음 여하에 달린 것 같다. 시간이 없어 만날 수 없고, 시간이 없어 편지를 쓸 수 없고, 시간이 없어 교회에 못 나가고, 기도를 할 수 없고, 등등.

 

  옛날보다 몇배나 더 편리한 시대를 살면서도 우리는 왜 이토록 바쁘게 허덕이고 핑계가 많은지 모르겠다. 내가 쓰는 시간은 너그럽게 가지면서도 남을 위한 시간엔 인색하기만 하다. 자기 마음에 드는 넥타이 하나 고르는 데 서너 시간을 낭비하지만, 함께 사는 형제를 위해서는 단 5분의 투자도 꺼리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매일 시간표를 작성해 놓고 하루에 쓸 시간의 용도를 따져 본다는 어느 신부님의 말씀이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가 자기의 취미생활을 위해 바치는 시간의 단 볓분의 1이라도 이웃을 기쁘게 해 주고 봉사하는 일에 쓸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밝고 따뜻해질 것인가. 사랑이 많을 수록 시간도 많다는 얘기가 된다. 사랑의 마음이 있으면 없는 시간도 생기는 법이고 사랑의 마음이 없으면 있는 시간도 없어지는게 아닐까. "인생을 재는 법은 그 길이에 있지 않고 그 사랑에 있는 것이다"라고 한 존 부로우즈의 말을 마음에 새기면서 툭하면 ’시간없다’는 소리를 연발했던 나의 사랑 없음을 반성해 본다.

 

  사랑하는 일에 아낌없이 자신을 내던진 예수의 시간처럼 나의 시간도 조금씩 사랑의 나눔으로 쓰여지고 열러 있길 기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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