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덕동성당 게시판

내 영화의 여주인공이 되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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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진 [pero36] 쪽지 캡슐

1999-12-15 ㅣ No.1346

내가 그녀를 만난 건 1999년 9월 19일이었다...

그날은 선배결혼식이었기에 난 아침부터 굉장히 분주했다....

예도를 해주어야했기에...

용산 육군회관에서의 결혼식은 여느 결혼식이 그러하듯 순식간에 치뤄졌다

식사를 마치고 난 정복을 입은채로 명동으로 향했다....

주일미사를 드리기위해서 나는 명동을 자주 찾는다....

명동성당에 가면 왠지 포근하다.

그날도 난 어김없이 고해성사를 드렸다. 명동에서의 고해성사는 모르는 신부님에게 죄를 고백하기 때문인지 그리 부담이 없어서 좋다.

사실 머리 속에 그리 큰 죄가 떠오르지 않았다.

지난 주 일직근무때문에 미사를 드리지못한 것을 빼고는 대죄는 없었기에....

그렇다고 그냥 주일미사 불참만을 고백하고 나오기에는 너무 싱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부님, 전 군인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운 좋은 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참으로 모든 일이 잘 풀립니다. 하지만 한가지 외롭다는 생각은 지워지질 않습니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요새는 많이 느낍니다. 제가 짓는 사소한 죄는 이 외로움을 못참아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종교라는 것이 있는지도 모르죠. 형제님이 왜 혼자입니까? 하느님이 계시는데....알아요...그것이 어떤 자신의 반쪽에 대한 외로움일수도 있죠...하지만 그걸 스스로 풀려고한다던지 아니면 하느님뜻과는 반하는 방법으로 푼다던지 하면 그 외로움은 결코 사라질 수 없답니다....오히려 더하죠....기도하세요. 그리고 하느님께 정말 자신의 반쪽이 어디있는지 알려달라고 하세요.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들어주실겁니다."

고백소를 나오며 난 가슴이 뿌듯함을 느꼈다.

그러던 그날...

난 그녀를 만났다.

미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정복을 입은채로 우산도 쓸수 없고 그렇다고 허겁지겁 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난 그 비를 맞으며 걸어갔다. 하지만 어느누구도 우산을 씌워주는 사람이 없었다. 난 속으로 피식 웃었다. 우산은 쓰지못하면서 우산 씌워주길 바란다....후후

어느새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 젖어버렸다.

난 어느가게 처마밑에서 비가 잦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봤다.

때마침 멀리서 두사람이 우산을 쓰고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굳이 두사람이 눈에 띄인 것은 한사람이 내게는 익숙한 옷을 입고 있었기때문이다.

그녀는 군인이었다.

일부러 용기를 내어 그녀와 그녀의 친구에게 우산을 같이 쓰자고 했다. 그녀는 후보생이었고 나는 장교였기에 그랬는지 그녀는 거부감 없이 그러자고 했다. 난 차를 한잔 대접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와의 첫만남은 이루어졌다.

 

그후로 그녀에게 면회를 두번인가 갔다.

하지만 거의 문전박대 식이었다.

그놈의 나이차...

그녀와 난 7살 차이가 났다....

 

어느날 문득 그녀에게 편지가 쓰고 싶어졌다.

그러면 그녀를 안잊을것 같았다.

그녀가 나를 사랑해주길 바라기보다 내가 그녀를 잊고싶지 않았기때문에 난 편지를 썼다.

몇통의 편지를 보냈다.

그러는사이 두달이 흘렀다.

 

난 대대에서 여단 정보처로 보직이 바뀌었다. 그리고 대학원도 다니게 되었다.

하루하루가 눈꼬틀새 없이 바빴다.

인수인계부터 대학원 입학준비까지

정말 잠잘 시간이 모자를 지경이었다.

 

토요일 아침 전화가 왔다.

"통신 보안! 정보처 항사장교(항공사진해석장교)입니다."

"나 인선이..."

"누구?"

난 머리속을 더듬거렸다. 내게 전화할 여자가 누구지?

내 번호를 아는 여자는? 어머니, 사촌여동생, 동생 여자친구, 학교 후배녀석들....

그런데 그중에 인선이라는 사람은 없는데....

문득 한 이름이 생각났다. 매일 되뇌이던 이름. 혼자서만 불러보던 이름

그 인선이였다.

 

그녀는 내게 말했다.

그냥 잊기싫었다고....

물어물어 전화를 했다고....

 

그날 난 100통의 편지를 시작했다.

그리고 100통의 쪽지를 시작했다.

 

내 사랑의 크기가 재고 싶어졌다.

 

그녀는 인형을 사달라고 했다.

인형이 필요하다고

난 여기저기를 뒤져서 그녀에게 곰인형을 보냈다.

곰인형을 받고도 그녀는 전화한통 없었다.

사람들이 그랬다.

’인형때문에 전화 한거라니까.....속지마라...아직도 순진해가지구....’

’장교가 자존심도 없냐? 사달라고 막사주냐? 빙신.,...’

하지만 난 아무렇지않았다.

그냥 그녀가 좋아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며칠이 지나서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그녀는 고맙다는 말뿐 다른 말은 없었다.

난 그녀에게 그 인형을 뜯지 말라고 했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면 안된다고

그 속에는 아주 귀한게 들어있다고

그녀는 물었다.

그게 뭐냐구....

난 비밀이라고 했다.

난 결국 말했다.

"그속에 있는건.....내 마음이야.."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외박을 나온다고

난 그녀의 얼굴을 봤으면 했다.

보고싶었다.

기억이 나지 않을것 같았다.

누군가 그랬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4시간의 기다림 끝에 그녀를 봤다. 10여분의 짧은 만남.

역을 나서면서 난 후회했다.

괜히 봤다.

보면 다시는 보고싶어하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보고나니까 더 보고싶어진다.....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를 많이 쓴다고 혼났다고 했다.

난 그녀가 불쌍했다.

눈치보는 일은 참 슬픈일이다.

그녀가 우울할 것 같았다.

밤새 그녀에게 무얼해줄까 고민했다.

 

다음날 난 PX에서 꽃배달 서비스를 신청했다.

1월달 강하수당(낙하산을 타면 나오는 생명수당)을 미리 지급맏은 것이다.

갑자기 공돈이 생겼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꽃을 보냈다.

그녀가 꽃을 받고 좋아할....나 때문이 아니라 꽃 때문이라도.... 그녀를 생각하니 괜히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오늘.....

난 그녀가 게시판에 올린 글을 봤다....

 

앞으로 더 힘들일은 없을것 같다....

이미 힘드니까....

이전에도 힘들었고

지금도 힘들고....

 

누군가에게 내 지난 몇달을 이야기했다.

영화를 보는 것 같다고 했다.

 

지금 난 그녀에게 내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영화가 헤피엔딩으로 끝나기를 고대한다.

흥행1위보다는 사람들의 기억속에 영원히 남을 명작이길 기대한다....

개런티는 없다.....그녀에게 줄것이라고는 사랑밖에 없다....

그게 내가 가진 전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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