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동성당 게시판

미켈란젤로의 작품세계

인쇄

안재홍 [martia04] 쪽지 캡슐

2004-04-28 ㅣ No.10126

..
제목없음
추천하기 스크랩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 작품세계]


[최후의 심판]
1537~41년 프레스코 13.7*12.2m / 바티칸궁 시스티나 성당 천장 부분



한 팔을 들고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군림한 심판자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천상(天上)과 지옥(地獄)의 세계가 함께하는 거대한 공간과 그 속의 군상이 전개되고 있다.
그 규모는 자그만치 2백 평방의 벽에 391인의 인물이 그려져 있는 그런 것이다.
이전의 어느 심판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규모와 구상이다.
이 일을 위촉한 교황 클레멘스 7세가 사망했지만
누구보다 미켈란젤로의 특성을 잘 이해하는 파울러스(Paulus 3세)가 교황이 되고 나서
새로 의뢰하여(1534년), 그는 더 없는 제작에의 의욕을 불어넣을 수가 있었다.
이 때는 또 개혁적 정신주의자 비토리아(Vittoria Colona)를 사귀게 된 시절이라
행복하던 때이기도 하다.
당초의 계획은 제단 벽의 이 최후의 심판과 아울러
입구 벽에 장식할 <루치퍼(Luzifer)의 추락>이 들어 있었으나,
다음 제작할 파올리나 예배당 일로 그를 데려가 버려서 완성을 보지 못하였다.

..............................................................................................................

[예레미야]
1511년 프레스코 390*380cm / 바티칸궁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 부분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미래에의 희망을 강조하면서 살던
선지자 예레미야가 무녀(巫女) 리비아 맞은 편에 자리하고 있다.
그것은 앞선 무녀와는 대조적으로 조용히, 그리고 생각에 잠긴,
정적인 포즈를 하고 있는 노인상(老人像)이다.
미켈란젤로는 이 그림에서와 같이 시스티나 천정화에서
여러 가지의 독자적인 해석과 조형적인 표현을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그 규모와 작업의 범위는 어마어마한 것으로,
범인(凡人)들의 상상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것은 여기서 보는 바와 같은 그 하나하나의 그림의 내용과
도상(圖像)과 그들이 전하는 사상을 특유한 인간과 인체의 표현으로 매개하면서,
한편 전체의 구성에 대한 그 나름의 리듬에 한 몫을 담당시키고 있다.
여기에는 물론 형태의 표현만이 아닌 특유의 미적 색채감을 남기고 있다.

.......................................................................................................................................................................................

[에리트레아 무녀(巫女)
]
1509년 프레스코 360*380cm / 바티칸궁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 부분



노아의 이야기를 둘러싼 선지자 그룹,
즉 입구에 가까운 위치에 있는 이 <에리트레아의 巫女>는
이사야와 마주하는 비교적 정적인 표현 세계에 속하고 있다.
미켈란젤로에게서는 육체와 영혼의 표현상의 균열이나,
도상(圖像)내용과 표현 형태 사이의 일치의 초극이라는
문제가 그의 중요한 한 특징을 이루고 있다.
그런 면의 한 경우를 이 그림에서 찾아볼 수 있다.
최후의 심판을 말한
에리트레아의 무녀가 비록 책장을 넘기면서 무시하는 모습에
그의 그 놀랍고도 엄숙한 예언의 기미를 담고 있다고도 하겠으나,
역시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인체의 움직임이 그다지 크지 않은 조용함이라 하겠다.

뒤의 기대의 박공을 떠메고 있는 장식 조각의 푸토(putto)들이
입구 위의 예언자군에서 보는 바와 같은 정면성을 넘어 사선으로 움직이고,
그에 못지 않는 배경의 어린이의 움직이는 포즈도 이를 깨뜨리지는 않는다.

......................................................................................................................................................................................

[노아의 만취(滿醉)]
1509년 프레스코 170*260cm / 바티칸궁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 부분



'방주에서 돌아온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 셈과 야벳에게 고하매 이들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 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 였더라-'는
창세기 9장의 이야기 내용이 하나의 화면에 동시에 묘사되었다.
커다란 포도주 통이 놓여 있는 막사 안에 취해 있는 노아와 그 앞에 세 아들이 서 있고,
밖에는 '씨를 뿌리고 거두어 들이는 일에, 덥고 춥거나, 여름이나 겨울이나, 낮과 밤을
끊이지 않는' 농사를 짓는 노아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그림 네 귀퉁이에는 다름 아닌 4계절의 의인상(擬人像)이
그 의미의 내용에 일치시키고 있다. 봄(右下), 여름(右上), 가을(左下), 겨울(左上).

..............................................................................................................

[천지창조
]
1511년 프레스코 280*570cm / 바티칸궁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 부분


미켈란젤로는 이 천정화의 가운데 축에 해당하는 그림의 구분에
4체의 나체상<이뉴도(Ignudo)>이 있는 작은 형태의 것과 그것이 없는 큰 형태의 경우를
교대로 배열하면서 예배당 안쪽에서부터 내용의 순서가 시작되어 입구에서 끝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내용상으로 두 번째에 해당하는 이것이
달과 해를 창조하고 식물을 창조하는 창세기 1장 1절에서 19절까지의 이야기가 되겠다.
밝음을 안고 달과 해를 창조하는, 역동감에 넘친 성난 표정의 하나님의 비상하는 모습과,
식물을 창조하는 하나님이 등을 보이며 사라지는 모습이 한 장면 안에 동시적으로 그려져 있다.
여기서는 입구 쪽의 노아의 장면에서 보는 바와 같은 실내 장면이 외부 공간으로 바뀌고
그 표현은 여기에서 그 절정을 맞이하는 역동감(力動感)이 넘치는 공간감(空間感)에 가득 차 있다

..............................................................................................................

[이브창조]
1509~10년 프레스코 170*260cm / 바티칸궁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 부분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야훼 하느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창세기 2-21, 23).
커다란 망토에 둘러싸인 하느님은 오른손을 들어 그야말로
나무 밑에 자고 있는 아담의 옆구리에서 나오는 듯한 이브를 바라보고 있다.
이 그림에서 그가 볼로냐(Bologna)에서 본,
그가 많은 영향을 받은 쿠엘치아(Gacopo della Querciar)의 힘찬 구약성서
부조와의 유사점을 지적받기도 한다.
주위의 나체상은 인체 속에 흐르는 네 가지의 액체 내지
네 가지의 인간의 기본 성격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혈액으로서의 다혈질(右下), 황담즙으로서의 담즙질(右上),
점액으로서의 점액질(左下), 흑 담즙으로서의 우울질(左上) 등으로 지적된다.

..............................................................................................................

[아담 창조-1]
1510년 프레스코 280*570cm / 바티칸궁 시스티나 성당 천장 부분


 
큰 폭의 구름과 천사들에 떠받들려  
하늘에 부상하는 하느님이 오른손 끝으로  
땅위의 아담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장면이 정적 속의 긴장을 가득 담고 그려져 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
또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라](창세기 2,26~28)
아담의 모습은 이 창조물을 보고
천사들이 놀랄 만큼이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다.
그 가까워진 생기의 거리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고 있는 그런 것이 되었다.

...............................................................................................................


[아담 창조-2
1510년 프레스코 280*570cm / 바티칸궁 시스티나 성당 천장 부분



큰 폭의 구름과 천사들에 떠받들려  
하늘에 부상하는 하느님이 오른손 끝으로  
땅위의 아담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장면이 정적 속의 긴장을 가득 담고 그려져 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
또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라](창세기 2,26~28)
아담의 모습은 이 창조물을 보고
천사들이 놀랄 만큼이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다.
그 가까워진 생기의 거리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고 있는 그런 것이 되었다.

...............................................................................................................


[원죄
]
1509~10년 프레스코 280*5700cm / 바티칸궁 시스티나 성당 천장 부분



여기서는 두 가지의 장면이 동일화면에 나타나고 있다.
중앙의 지혜의 나무를 중심으로,
왼쪽은 나무를 감고 있는 뱀에 유혹되어 이브와 함께 나무 열매를 따려는 아담,
오른쪽에는 천사에 의하여 낙원에서 추방되는 두 남녀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그려져 있다.
거기에 열매를 따려는 아담의 뻗은 파로가 유혹하는 뱀의 팔,
그리고 천사의 검 (劍)을 피하려는 아담의 뻗은 팔에서 다시 양 면(面)이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여기서 얻은 균제감과 나무를 이중(二重)으로 감고 있는
여자 얼굴의 뱀과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는 천사로 두 부분을 다시 강조하고 있다.
오른편의 추방당하는 아담과 이브는 브란카시(Brancasi) 성당의,
울면서 쫓겨나는 마사치오(Masaccio)의 같은 주제의 상을 방불케 하는 바 없지 않다.
그러나, 젊은 시절 흠모하던 이 작가의 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깊은 감정이 흐르고 있다.

..............................................................................................................


[성 베드로의 책형]

1542~45년 프레스코 625*662cm / 바티칸 파올리나 성당 천장 부분




전체로 묶여 있거나, 매여 있거나, 또는 추락하는 걷잡을 수 없는
부자유스러운 육체 속에 정신적인 고통을 내뱉고 있는 것이
경험상으로 봤을 때의 그 당시의 미켈란젤로의 예술 원리라 할 수 있다.
그와 같은 그의 특성은 오늘날 <노예>의 이름으로 알려지고 있는
여러 미완성 작품에서 들여다볼 수 있다.
이런 정신과 육체의 싸움에는 거의 비극적이라 할 성향마저 찾아볼 수 있다.
그런 것에 속하는 화제(畵題)로서 적절한 것이
후기 작의 <성 베드로의 책형>에서도 드러난다.
화면에는 사선(斜線)으로 구획하면서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린
베드로가 중심이 되어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여기에는 이미 중앙의 그와 같은 장면에
대응할 만한 격렬한 움직임을 주위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그것은 무거운 하날이 짓누르는 것처럼 모두가 속으로 침전하고 있는 것이다.

..............................................................................................................


[사울의 回心]
1542~45년 프레스코 625*661cm / 바티칸궁 파올리나 성당 천장 부분.



이 그림은 바울의 다마스커스에서 있은 회심(回心)사건을 다룬 것이다(사도행전 9장).
70살 가까운 미켈란젤로는 교황 파울러스 3세의 명에 따라서
<최후의 심판> 벽화가 거의 완결되려 할 때
이것을 다시 제작하게 된 것이다.
그는 교황의 이름에 따른 바울 이야기를 주제로 삼았다.
기독교에 강한 반감을 가진 사울이 전도하는 제자들을 박해하려고
대사제(大司祭)의 편지를 가지고 그들이 활동하는 다마스커스로 향하던 도중,
갑자기 하늘에서 강한 빛이 내려와서 눈이 어두워지고 땅에 넘어졌다.
그때 '사울, 사울, 왜 나를 박해하는가?'의 소리가 들려와서
누군가고 물었더니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그 후 기도한 그가 3일 후 다시 눈이 뜨이게 되자,
그는 신력(神力)에 감동하여 기독교로 개종(改宗),
이름을 바울(Paul)이라 하였다.
화면에는 하늘의 빛으로 넘어진 사울이 부축을 받고 있고,
하늘에는 예수와 더불어 이 기적을 보는 성자들이 있다.

..............................................................................................................

[피에타]



미켈란젤로의 초기 작품이며, 동시에 르네상스 전성기의 대표작이다.
그리스도의 시신(屍身)을 무릎 위에 앉은 어머니 마리아의 군상(群像)이
자연스럽고도 이상적인, 특유한 아름다움을 띠며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후기에 가서도 같은 주제로 작품을 제작하였으나,
그가 보여준 것은 '로마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리석상(大理石像)이었던
' 이 작품과는 전혀 다른 세계이다.
이 피에타상 형식의 직접적인 계보는
중세 북구(독일) 형식의 개신(改新)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실물 크기 이상의 마리아가 보통 크기의 그리스도를
크게 포개진 옷의 무릎 위에 비스듬히 사선으로 안고,
슬픔과 고통을 내면화(內面化)시키고 있는 청정하면서도 부드러운 아름다움은
당시의 미켈란젤로가 보여준 독특한 이상적 조화미의 세계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하겠다.

..............................................................................................................

[다윗]
1501~4년 대리석  410cm / 피렌체 아카데미 미술관 소장



 '젊고 불고 용모가 아름다운' 다윗은
골리앗의 목을 벤 승리의 청년상(靑年像)으로서
조각가들이 즐겨 다루는 주제가 되었다.
발 아래 골리앗의 목을 누르고
검(劍)을 가지고 서 있는 부드러운 소년상(少年像)은
그런 일반적인 다윗상의 형식이었다.
미켈란젤로가 조각가로서의 자신을
충분히 발휘한 것도 역시 다윗상에 서였다.
그러나 그가 1501년 8월 피렌체 대성당의 의뢰를 받고 제작하게 된
그 커다란 대리석상은 그와 같은 승리의 상과는 그 취향을 달리하고 있다.
망태를 메고 옆을 똑바로 응시하면서 서서
돌을 쥐고 막 던지려는 순간의 나체(裸體) 청년상이
균형감을 지키면서 드러나 있다.
그 자신 같은 때에 청동(靑銅)의 다른 다윗상을 만들었다고 전하나
실물은 없어졌다. 1495년 메디치가에서 일단 나온 그는 실물보다
큰 헤르쿨레스 상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모두 이 작품 제작의 환경을 들려주는 것이다. 

 
..............................................................................................................

[모세]
1515년 대리석 235cm / 로마 성 피에트로 인 민콜리 성당



시스티나 천정화가 완성되고 얼마있지 않아서
당시의 교황 율리우스 II가 사망했는데,
그때 유언에, 1505년에 계약한 바 있는 미켈란젤로의
율리우스 II 묘당을 위해 10,000 두카덴(Dukaten)을 남겨 놓았다.
사실 이 묘당을 위해서 계획하고 추진하던 미켈란젤로의 그간의 노력은
그 시스티나 천정 벽화의 고난 작업을 하는 동안에도 식은 적이 없었다.
그곳에 안치될 상의 하나로 예정된 것이 바로 이 모세상이다.
머리 위의 뿔과 십계의 石板(석판)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 예고자로서의
모세는
그 위엄의 모습을 대리석에서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여기서는 시스티나 예배당의 여러 예언자 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형태감을 넘어서서,
평생 대리석을 유일한 매체로 삼던 미켈란젤로의 조각가로서의 본격적인 대결이
그의 응집된 量塊(양괴) 속에서 이 <모세>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

 




15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