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동성당 게시판

12.달 생활 말씀 기쁜 성탄 맞이 하도록 항상 즉시 기쁘게 현순간을 체선을 다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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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순 [appol] 쪽지 캡슐

2006-12-12 ㅣ No.7202

행복합니다, 마음속으로 순례의 길을 생각할 때 당신께 힘을 얻는 사람들!”(시편 84, 6)

이달 생활말씀이 담겨 있는 시편을 노래한 시인은 예루살렘 성전으로 순례여행을 갔습니다. 성전에 둥지를 튼 제비처럼 자신도 그곳에 머물고 싶었지만 고향으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그는 향수에 젖어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했던 ‘사랑 가득한 주님의 거처’를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시 굳게 결심하고는 예루살렘을 향한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거룩한 여행’이 될 것이며 다시 한 번 그를 ‘하느님 앞에’ 놓아주게 될 것입니다. 모든 문화와 종교에서처럼 여행은 삶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거룩한 여행’은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여정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죽음’이라는 말 대신, 하느님과 만나는 가운데 새로운 삶이 시작되기에 ‘만남’이라고 불러야 할 목적지를 향해 나아갑니다. 우리 모두는 그분께서 불러주셔서 그곳으로 가도록 운명지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우리의 존재 자체를 가야할 목적지에 맞추어 생각할 수 없을까요? 우리를 기다리시는 분이 성인(聖人)이신데, 우리는 왜 단 하나뿐인 삶을 ‘거룩한 여행’이 되게 할 수 없을까요?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거룩한 사람 즉 성인이 되도록 불렸습니다(1 테살로니카 4, 3 참조). 그분 하느님께서는 우리 각자를 무한한 사랑으로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해 우리가 걸어가야 할 정해진 발걸음을 계획하셨고, 도달해야 할 정확한 목적지를 생각해두셨습니다.

"행복합니다, 마음속으로 순례의 길을 생각할 때 당신께 힘을 얻는 사람들"

물론 우리가 때로는 멈출 수 없는 활동주의와 능력주의를 사랑하고, 더러는 어떤 직업을 선호하며 다른 직업을 과소평가하거나 두려워한 나머지 삶의 어떤 순간들을 지워버릴 수 있다는 환상 속에 이런 순간들을 침묵으로 덮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시대가 낳은 결과입니다.
어쩌면 우리도 이 같은 경향에 영향을 받거나 현혹되어 공연히 힘을 낭비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휴식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기도하는 시간을 부수적인 것으로 여기며, 하느님께서 사랑의 목적으로 허락하신 질병이나 여러 어려움들을 자신의 삶의 장애물로 여기기도 합니다.
그럼 어떻게 ‘거룩한 여행’을 시작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요? 이를 깨닫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뜻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하는 것입니다. 삶의 현 순간에 이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다면 우리의 모든 행위 속에는 이를 이끌어주는 특별한 은총이 있음을, 곧 지식을 비추어주고 우리의 감정과 의지를 선으로 기울게 하는 ‘상존은총’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는 참으로 큰 은총입니다.
또한 특별한 믿음을 갖고 있지 않는 사람 역시 올바른 윤리 의식을 지니고 정직하게 길을 걸어가며 그의 삶을 걸작품으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행복합니다, 마음속으로 순례의 길을 생각할 때 당신께 힘을 얻는 사람들"

만약 삶이 하느님의 뜻으로 새겨진 거룩한 여정이라면 우리의 발걸음은 매일 나아져야 합니다. 우리를 밀어주는 사랑이 더욱더 자라나고 나아져야 합니다. 어제 우리가 살았던 것에 만족할 수 없습니다. “오늘은 어제보다 낫게 살아야 한다”라고 반복해 말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멈추게 될 때, 잘못을 범하거나 단지 게으름으로 인해 뒷걸음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의 잘못에 낙담하며 이미 시작한 발걸음을 포기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그 순간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말은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잘못과 죄를 범한 우리의 과거를 하느님의 자비에 맡기고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능력보다 하느님의 은총을 더 신뢰하면서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생활말씀은 우리가 그분 안에서 다시 힘을 되찾게 됨을 말해줍니다. 마치 매일 매일이 첫날인 것처럼 다시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 안에 일치되어 서로 도와주면서 함께 걸어가도록 합시다. 그렇다면 성인이신 하느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실 것이며 그분께서 우리의 ‘길’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더 분명히 깨닫도록 해주실 것이며, 이를 실행할 수 있는 바람과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모두 함께 일치되어 있다면 더욱 쉬워질 것이며 우리는 ‘거룩한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약속된 참 행복을 얻게 될 것입니다.

"행복합니다, 마음속으로 순례의 길을 생각할 때 당신께 힘을 얻는 사람들"

이 순간 한 사람을 기억하게 됩니다. 엔조 폰디가 1951년 로마에서 태어나고 있던 포콜라레 운동 안에서 하느님을 위해 온전히 자신을 바치고자 한 것은 22살 때였습니다. 의학을 전공한 후 그는 라이프치히의 한 병원에서 의사로 일을 했으며 ‘철의 장막’(옛 동유럽 공산권을 가리킴) 너머에서 복음적 사랑을 몸소 실천해보였습니다. 그리고 사제로 서품됐고, 같은 메시지를 전해주기 위해 미국에서도 지냈습니다.
삶의 마지막 시기에는 포콜라레 운동이 추진하는 종교간의 대화 부문에서 일했습니다. 여러 곳에서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면서 이 운동을 전개했지만, 그는 항상 유일한 한 프로그램을 지녔습니다. 바로 하느님의 뜻 안에서 그분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2001년의 마지막 날 저녁 그는 ‘거룩한 여행’을 마쳤습니다. 컴퓨터 앞에서 평소처럼 일하는 자세로 책상에 머리를 기댄 채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얼굴은 어떤 고통의 그림자도 없이 평온했습니다. 죽었다고 말하기보다는 한 방에서 다른 ‘방’으로 평온하게 건너간 것 같았습니다.
죽음을 맞이하기 15일 전에 그는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그분의 마지막 바람, 유언. 나에게 있어 하느님의 마지막 뜻은 지금 그분께서 나에게 바라시는 것이다. 다른 것이 아니다. 하느님의 마지막 뜻이 무엇이든지 간에 이를 완전하게 하는 것, 이것이 내가 마지막으로 바라는 것이다. 내 삶에서 마지막으로 하게 될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한 가지는 지금 이 순간처럼 마지막 그 순간에도 ‘상존은총’이 있다는 것이다. 이 은총은 현재의 순간을 잘 살면서 이를 활용하도록 훈련해온 만큼, 나에게 하느님의 뜻을 하도록 도와준다.”

끼아라 루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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