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창동성당 게시판

5월12일 성 방그라시오(판크라시오) 순교자♬9.Salve Festa Dies.

인쇄

유화정 [wjyou57] 쪽지 캡슐

2003-05-12 ㅣ No.1156

 

축일:5월 12일

성 방그라시오(판크라시오)순교자

St. Pancracio, St. Pancratius

St. Pancras of Rome

어린 소년들의 주보성인. 304년

 

순교성인이시며 이태리에서는 모든 가톨릭 액션 단체에 가입된 젊은이들의 주보성인이시다.

 

시리아(소아시아의 피리지아)태생인듯한 그는 일찌기 양친을 여의고 고아가 되어 로마에 살던 삼촌(디오니시오)에게 맡겨졌다.

그는 여기서 삼촌과 함께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는데, 이때 그는 불과 14세의 나이였다.

 

디오클레시아누스 황제의 박해 시 로마에서 순교했다고 보며, 이 소년에 대한 기념은 그를 기념하기 위한 달력에 특별히 기록되어 있다.

그에 대한 추앙은 교황 심마코가 순교자의 묘지 비아 아우렐리아에 그를 기념하는 교회를 세우면서부터 확대되었다.

 

어린 소년들의 주보성인인 방그라시오는

그리스도 신자의 증거는 그리스도와 형제들과의 결합에서 온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믿음 안에서 소년들을 보호하는 문제는 오늘날 교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이다.

소년들이 믿음을 잃게 되는 주요 원인은 교회 공동체가 좀더 진지하고 개방적이며 포용력 있는 태도로 소년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데에 있다.

 

 

 

성 판크라시오는 디오클레시아노 황제 시대에 청형되어 순교한 소년이다.

그는 교회에서 옛날부터 특별히 존경을 받아왔고, 로마에는 지금도 그에게 봉헌된 성당이 있어 추기경좌의 높은 격식(格式)이 마련되어 있다.

그리스도교 신자였던 학자의 소개로 마르첼리노 교황을 알현하고 교회의 진리를 깨달아 세례를 받고 열심한 신자가 되어,

겨우 14세 때에 꽃이라면 봉오리와 같은 홍안의 미소년으로서 용감히 피를 흘리며 신앙을 증명했다. 그는 칼레포디우스 묘지에 안장되었다.

 

런던에 있는 성판크라시오 철도역은 우리가 그에 대해 거의 아는것이 없는 초기 그리스도인 순교자에게서 그 이름을 딴 것이다.

그는 디오클레시아누스 황제의 박해중에 14세의 어린 나이로 순교했다고 한다. 그는 후에 그의 이름이 붙은 공동 묘지에 묻혔다.

교황 대그레고리오는 그곳에 베네딕토회 수도원을 세웠고,

베네딕토회 회원인 캔터베리의 아우구스티누스가 영국에 오자 그는 자기가 세운 첫 교회에 판크라시오라는 이름을 붙였다.

철도역의 이름은 여기서 유래된 것이다.

 

판크라시오는 와이스먼 추기경의 소설인 ’파비올라’에서 소설화되어 나타난다.

독일 농부들은 이름이 비숫한 세 성인들,

즉 판크라시오,세르바시오,보니파시오를 그들의 축일이 5월 12,13,14일인데도 계절에 맞지 않게 날씨가 싸늘하다 하여 ’차가운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또다시 그에 대해서 거의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지만 그의 생애와 죽음이 교회의 기억 속에 지금까지 고이 간직되어 온 또 한분의 성인을 보았다.

자세한 내용은 아득히 사라졌거나 갖가지 환상적인 전설과 뒤섞여 있다. 그러나 단 하나의 확고한 사실은 남아 있다.

그것은 그가 그리스도를 위해서 죽었다는 것이며, 그의 영웅적인 생애는 그 당시의 교회를 통하여 영감의 물결을 보내 왔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와 같은 느낌을 함께 나누는 것은 좋은 일이다.

 

 "너희는 잡혀서 박해를 당하고 회당에 끌려가 마침내 감옥에 갇히게 될 것이며 나 때문에 임금들과 총독들 앞에 서게 될것이다.

그때야말로 너희가 나의 복음을 증언할 때이다.이 말을 명심하여라. 그때 어떻게 항변할까 하고 미리 걱정하지말라.

너희의 적수들이 아무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주겠다."(루가21,12-15)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의 강론에서

(Sermo 17 psalmun Qui habitat, 4, 6: Opera omnia 4, 489-491)

 

환난중에 나는 그와 함께 있다.

 

"환난중에 나는 그와 함께 있다."라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니 내가 환난말고 다른 무엇을 구해야 하겠습니까?

그분은 또 "나는 그를 구하여 영화롭게 하리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 내 행복은 하느님 곁에 있는것"이고, 그에 더하여 "내 주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일"입니다.

 

"환난 중에 나는 그와 함께 있다"."내 기쁨은 사람의 자녀들과 함께 있는 것이다."라고 주께서는 말씀하신다.

따라서 주님은 임마누엘 즉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십니다. 마음 상한 이들에게 가까이 계시고 우리가 환난을 당할 때 우리와 함께 계시고자 내려오십니다.

또 "우리가 구름을 타고 공중으로 들리어 올라가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고 항상 주님과 함께 있게 될 때" 그분은 우리와 함께 계실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 여정의 동반자로서 우리와 함께 계시도록 우리가 노력한다면 후세에 본향에 들어가게 하실 그분은 지금 우리의 길이 되시듯이 그때 우리의 본향이 되실 것입니다.

 

주여, 나에게는 당신과 함께 환난을 당하는 것이 당신 없이 다스리고 당신없이 화려하게 지내고 당신 없이 명예를 즐기는 것보다 낫습니다.

주여, 나에게는 환난 중에 당신과 더 밀접히 결합되어 불가마 속에서 당신을 모시는 것이 비록 하늘 나라라 할지라도 당신 없이 있는 것보다 낫습니다.

"나에게는 천국 외에 무엇이 있고, 지상에서 당신 외에 또 무엇을 원하겠습니까?"

 

"금은 용광로 속에서 단련되고 의로운 사람은 환난의 시련 속에서 단련됩니다."

주여, 당신은 그 곳에 그들과 함께 계십니다. 당신이 옛적에 세 젊은 이들과 함께 계셨던 것처럼 당신의 이름으로 모인 이들이 있는 바로 그 곳에계십니다.

 

우리가 왜 두려워 하고 왜 설레이며 왜 이 불가마에서 도망쳐야 하겠습니까? 불은 맹위를 떨칩니다. 그러나 주님은 환난 중에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 되셨으니, 누가 감히 우리와 맛서겠습니까?" 더욱이 그분이 우리를 구하시는데 누가 그분의 손에서 우리를 빼앗겠습니까?

우리를 그분의 손에서 탈취할 수 있는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분이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는데 누가 망신시킬 수 있겠습니까?

 

"나는 오랜 세월로 그를 가득 채우리라." 이 말은 흡사 이렇게 말씀하시는것 같습니다.

나는 그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목말라 하며 무엇이 그를 즐겁게 해주는지를 알고 있다.

그는 금이나 은 덩어리를 기뻐하지 않고 쾌락이나지식의 획득 또는 어떤 세속적인 품위도 즐거워 하지 않는다.

그는 이 모든것을 손실로 여겨 내던져 버리고 쓰레기로 여긴다.

 

그는 자신을 완전히 비워 버리고 자기를 만족시킬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런 것들에다 마음을 빼앗기는 것을 허락치 않는다.

그는 자기가 누구의 모상으로 지음받았는지 알고 있고 얼마나 큰 것을 이룰 능력을 갖고 있는지 알고 있으며 가장 큰 것을 이룰 능력을 갖고 있는지 알고 있으며

가장 큰 것을 잃어버림을 뜻하는 그런 작은 것에 대한 집착을 피한다.

 

그러므로 나는 참된 빛으로써만 충족될 수 있고 그 영원성으로써만 충족될 수 있는 사람을 "오랜 세월로 가득 채우리라."

실상 그 지속은 끝이 없도 그 광채는 쇠함이 없으며 그 만족은 결코 싫증이 나지 않는다.

 

 

 

 

 

♬9.Canto Gregoriano-Salve Festa Dies.

 

 

 

 



185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