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팔년이라는 시간을 굽은 허리를 펴지 못하고 살았던 여인에게는 안식일도 제대로 된 안식일이 아니었습니다. 안식일에 갖게 되는 하느님과의 휴식의 여유도(출애 20,`11 참조), 종살이에서 해방된 기쁨도(신명 5,`15 참조) 다른 사람이 누리는 것과 같은 의미로 보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제 이 여인은 오랜 기간 자신을 붙잡고 있었던 병마가 떨어져 나가던 그날을 그 누구보다도 잘 기억할 것입니다. 이 여인에게 안식일은 그냥 일주일마다 찾아오는 빨간 날이 아니라 허리 펴고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날로 기억할 것입니다. 이제 이 여인은 안식일에 자신에게 일어난 이 해방의 체험, 살아 계신 하느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날로 살아갈 것입니다. 이 여인이야말로 어느 율법주의자보다도 더욱더 깊이 ‘해방’이 무엇인지, ‘하느님과 함께 쉼’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왜 굳이, 왜 하필, 그 좋은 날 다 놓아두고 이날이어야 하는가라는 회당장의 의문은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 속에서도 불쑥불쑥 튀어오르는 물음이 아닐까요? ‘아니 왜’라는 말 다음의 빈칸에 우리는 어떤 말을 집어넣고 살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고 그런 질문을 던지는 나를 가만히 들여다봅시다. 그 질문이 옳은지를, 혹여 내가 빠뜨리고 있는 것은 없는지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