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음동성당 게시판

* 천리길도 한걸음부터(10/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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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국길 [fcan] 쪽지 캡슐

2004-10-26 ㅣ No.3704

연중 제30주간 화요일 (2004-10-26)

독서 : 에페 5,21-33 복음 : 루가 13,18-21

*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 *

그때에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무엇과 같으며 또 무엇에 비길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이 겨자씨 한 알을 밭에 뿌렸다. 겨자씨는 싹이 돋고 자라서 큰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겨자씨와 같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 수 있을까? 어떤 여자가 누룩을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 넣었더니 마침내 온 덩이가 부풀어올랐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런 누룩과 같다.”
(루가 13,18-­21)

가끔 수녀원 미사를 드릴 때마다 느끼는 것 중의 하나는 별것도 아닌 것에 웃고 즐거워한다는 점입니다. 이런 느낌은 답답해서 어떻게 사나 하고 생각할 봉쇄 수녀원에 가면 더욱더 커집니다. 정말 별것도 아닌 것에 까르르 웃습니다. 어떤 땐 뭐가 그리 즐거울까라는 생각도, 심지어는 워낙 성덕이 깊으신 분들이어서 썰렁한 내 말에 장단을 맞춰주려고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별 의미도 없이 던진 말 한마디에 어떻게 저렇게 웃을 수 있을까?
사실 주위를 돌아보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생글생글 웃으면서 인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는 전화 상담원들이나 백화점, 대형마트의 직원들. 그런데 수녀님들한테서 느끼는 친절은 그들에게서 느끼는 것과는 달랐습니다. 매장에서는 혹시나 직원들이 달라붙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아예 직원들이 없는 곳에 가서 물건을 고르는 제 특이한 성격이 수녀원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같은 물건을 사더라도 조금 작은 가게에 가면 느낌이 다릅니다. 아니, 정반대입니다. 오히려 필요한 물건을 집어 맨송맨송 계산만 하고 나오다 보면 왠지 제 자신이 참 썰렁하고 무뚝뚝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고속도로 요금소에서 계산을 할 때는 먼저 인사하지 않는 날도 꼭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외국에서는 어느 가게에 가든, 어느 식당에 가든 점원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 습관적이었습니다. 잘 알지 못하는 가게에 가서도 항상 인사부터 하곤 했습니다. 왜일까요?
언젠가 외국 본당에서 방학을 지낼 때 함께 산책을 하던 신부님의 질문이 생각납니다. ‘너희 나라도 길 가다가 사람 만나면 이렇게 인사하니?’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반적인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 바로 내 모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나라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누구에게 말을 건넬 때는 항상 인사부터 했던 것입니다. 별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런 삶의 모습 안에서 훨씬 더 삶을 여유롭게 즐기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느님 나라도 그렇게 작은 것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요?

이정석 신부(전주 가톨릭신학원)

-   비로 만든집 -


비로 만든 집에서
나는 살았네
안개로 만든 집
구월의 오솔길로 만든 집
구름비나무로 만든 집

비로 만든 집에는 언제나
비가 내리지
비를 내리는 나무
비를 내리는 길
비를 내리는 염소들

세상이 슬픔으로 다가올 때마다 나는
그곳으로 가서 비를 맞았네
비의 새가 세상의 지붕 위를 날고
비를 내리는 오솔길이
비의 나무를 감추고 있는 곳

비로 만든 집에서
나는 살았네
비의 새가 저의 부리로
비를 물어 나르는 곳
세상 어디로도 갈 곳이 없을 때 나는
그곳으로 가서 비를 맞았네

비로 만든 집에는
언제나 비가 내리지
비를 내리는 나무
비를 내리는 길
비를 내리는 염소들

- 류시화의 詩중에서 -


님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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