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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 배낭여행-20] 대만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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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대 [changjhon] 쪽지 캡슐

1999-12-23 ㅣ No.1131

◎세계인과 대화하는 배낭여행 - 20회 {대만-6}

 

 

내가 타이페이역에 도착하니 저녁 7시 20분, 이미 캄캄한 밤이었다. 그러나 타이페이 YH을 찾아가는데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미 묵었던 곳이고 길도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송구영신(送舊迎新), 12월 31일이다. 시내의 야간 분위기는 약간의 들뜬 분위기를 느낄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진짜 송구영신을 맞는 분위기는 YH에 들어서면서 였다.

 

나는 배낭을 내려놓고 라운지에 나갔다. 그곳엔 네 명의 미국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배낭족이자 학원에서 영어 강사를 하는 장기 투숙자(켄트, 닉크, 브루스, 낸시)들이었다. 그리고 수단에서 온 친구인 모하메드 바비커가 한데 어울려 ’Happy New Year Party’를 열고 있었다.

 

파티래야 대단한 게 아니다. 술 대신 콜라와 과자 부스러기 그리고 토스트가 고작이었다. 한쪽에선 닉크가 계속 토스트를 구워 낸다. 어쩌다 시꺼멓게 태우기도 한다. 이 친구 은근히 나보고 빵을 구워 볼 것을 권한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켄트와 낸시도 동조한다. "Yha, you can do it. Try it."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OK. No, problem. I will show you how to make good one. It’s my specialty." 나는 후라이 팬에 버터를 바르고 빵을 올려 구웠다. 나는 빵을 뒤집을 때 팬을 들고 빵을 공중으로 던져 사뿐히 뒤집는 묘기를 보여주려다 그만 실패하고 만다. 폭소와 야유....

J: Oh, boy. I can’t do it! Maybe my sun has set!(이런 내 솜씨도 이제 한 물 갔군.)

K: Hey, Jack. You are holding it the wrong way. Look, I’ll show      you how to do it.(팬을 잘못 잡았잖아. 내가 보여주지.)

J: OK. Kent. You watch it. I will try it again. OK?  Like this...

K: Yes. You got it. That’s more like it.

J: Yap. I made it. You see?

K: Great! You need no more practice to get the hang of it.

   (좋았어. 더 이상 연습은 필요 없겠어. 요령을 터득했으니...)

 

원래 별 말이 없는 브루스 친구, 그의 긴 머리와 수염은 마치 영화 속의 예수를 연상케 했다, 그는 나의 빵굽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겠다며 내 카메라를 달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아예 그에게 나의 비데오 카메라를 건네주면서 전체를 촬영하라고 주문했다.

 

J: OK. Bruce. Will you videotape me, please?(비데오 좀 찍어 줄래?)

B: I am not so good to handle a videotape camera.(서툰데...)

J: Oh, it’s very simple. You just aim and press this button.

  (아주 간단해. 카메라만 바로 들이대고 이 단추만 눌러 주면 돼.)

B: It’s easier than I thought. And this video camera is so small and light.(생각 보단 쉽군. 조그만 게 가볍네...)

J: Ya, it’s a brand-new 8mm camcorder(새고 나온 캠코더야.)

 

나는 다시 빵을 굽기 시작했다. 이 장면을 찍던 브루스가 갑자기, "Wait a minute" 하더니 나와 낸시가 같이 서서 키스하는 장면을 연출해 보라는 것이다. 모두들 소리를 지르고(Yha, that’s a good idea. Great. It’s a New Year Party. Go ahead.....) 난리 법석이다. Actually however, Nancy was more active at the moment. It was true. I was a little shy though, I made it, not only on the cheek but also on the lips. Those guys were very naughty and open minded.

It is, I’m sure, one of the unforgettable memories of mine in my world travelling.(이런 면에서도 서구 친구들은 명랑한 편이다. 그리고 장난기도 다분하다. 한 마디로 있는 그대로를 느끼고 즐거움을 발견한다고나 할까. 나의 세계 배낭여행 중 잊지 못할 추억 거리인 셈이다.)

 

새해 첫 날 나는 대만의 명소 중 명소인 중정 기념관을 찾았다. 중정 기념관은 1975년 서거한 장개석 총통의 위업을 기념하기 위해 전세계 화교들의 기금으로 설립된 곳이라 그 의미의 무게를 달리한다. 이곳에 들어서면 탁 터인 넓은 공원 좌우에 대만 국립극장과 국가 음악청이 자리하고 있다. 중앙의 기념관에는 장개석 총통의 동상이 있고 그의 유품과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다음 나는 중국 문화의 전당 고궁 박물관을 들렸다. 박물관 앞의 대형 주차장에 관광 버스들로 만차인 점만 봐도 어느 정도의 명성을 짐작케 한다. 혹자는 세계 4대 박물관(佛의 루부르, 英의 대영, 美의 메트로폴리탄)에 들것이라고 한다. 나는 이집트 카이로에 있는 고대 박물관을 포함 세계 5대 박물관을 다 가 보았다.

 

고궁 박물관의 주 소장품은 중국에 국한 된 것이고 카이로의 그것 역시 이집트에 국한 된 것이다. 그런 면에서 고궁 박물관과 고대 이집트 박물관은 세계 3대 박물관과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일단 고궁 박물관에 소장된 고대 중국의 유물만 해도 자그마치 62만 점이나 된다고 하니 과연 그 나라의 국민 수만큼이나 양적으로도 압도한다. 전시품은 3개월에 한 번씩 돌아가며 바꾼다는데 그것을 다 보려면 8년은 족히 걸린다고 한다.

 

이곳엔 우리에게도 익숙한 주판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보고 깜짝 놀랬다. 연대 표기란에는 1644년이라 되어 있었다. 그 외 60만년 전의 북경원인, 1만8천년 전의 뼈바늘, 4천7백년 전의 목각 황제, 1백7십만년 전의 윗어금니, 3백만년 전의 이디오피아 여인의 인골, 한국 삼국 시대의 기마 인물상, 금관, 금빗.... 한 개의 상아(象牙)를 정교하게 조각하여 9층으로 만들어 놓았는데 각층마다 불상을 안치해 놓은 조각품과, 역시 상아를 재료로 한 17개의 둥근 공들이 각각의 크기를 달리 하면서 한 공간에 다 들어 가 있는 조각품이 있다.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작품이다. 그것을 보기 위해 확대경을 이용하도록 진열장에 설치해 놓았다. 확대경을 통해야만 그 내용물이 보일 만큼 미세하게 조각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나는 그 엄청난 중국의 영토와 인구 수의  크기에 비해 너무 대조적임을 보고 재미있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흔히들 말하는 대륙적 기질이란 외부 지향성, 확대 팽창형, 대범한 기상 등을 떠올리는데 이와는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듯한 작품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혹시 모를 일이다. 일본인들의 축소 지향 주의가 이 조각품에서 착상된 건 아닌지. 엉뚱한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타이페이 시내 중심가에는 서울의 학원가를 방불케하는 입시 학원과 영어회화 학원들로 북적인다. 이곳 특히 영어회화 학원들은 건물밖에 대형 멀티비젼을 설치해 놓고 강의 내용 등을 홍보하는 등 매우 적극적이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학원가의 노상에는 각종 싸구려 먹거리가 가득하다. 면발류와 빵 등... 큰 부담 없이 즐길 만한 먹거리들이다.

 

영어, 사실 영어에 대한 열기는 이미 전 세계적 현상이었다. 멀리는 영국의 식민통치 시대부터이고 가까이는 미국과 더불어 그 폭발력을 극대화한 근 1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의 경험에 의하면 오늘날에도 후진국은 후진국대로 선진국은 선진국대로 여전히 영어 학습에 적극적이라는 것이다. 영어의 효용가치를 굳이 언급한다면 가난한 자에겐 생계와 직결되기 때문이고 부유한 자들에겐 지적 욕구와 신분 상승의 수단임을 들 수 있겠다.  

 

영어!! 그것은 누구에게든 특히 국제화 시대를 실감하고 세계인과의 교류를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분명히 필요한 필요악(必要惡)이다.   

 

나의 해외 배낭여행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현지의 극장가(劇場街) 탐방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남다른 취미도 있지만 영화 그 자체보다는 그들의 또 다른 문화의 이면(裏面)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가까운 극장가에서 성인 영화 한 편을 보려고 들어갔다. 공식 성인 영화관이 없는 사회에서 살다 보니 상대적으로 그것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큰 것 또한 사실이다.

 

나는 설마하고 들어갔다가 대형 스크린의 그림을 보고 설마가 아님을 확인한다. 내용이나 영상의 밀착도와 사실성에 있어 그렇다. 그러한 적나라한 성애 장면을 보면서 여기저기선 웃음과 탄성이 터져 나온다. 그러나 아주 자유롭고 개방적인 분위기이다. 언뜻 생각하면 이런 나라의 성문화와 성도덕관은 얼마나 타락했을까 하는 의문이 일기도 한다. 특히 청소년들이 대부분인 관객들을 보니 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한편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에겐 없는 문화이니까. 이 나라의 성범죄 율이 결코 우리보다 높지 않다는 사실에 있어서도 그렇다. 덮어두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고나 할까, 참 아이러니하다.

 

나는 용산사(龍山寺)를 둘러보고 다시 야시장의 보신 관광객들의 현장

을 보기로 했다. 용산사는 청조(靑朝) 중기(中期 1738년)에 건립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절로서 시내 중심가에 있다. 경건하고 정숙한 분위기의 우리 나라 사찰을 생각하고 갔다 간 어리둥절하기 십상이다.

 

그곳은 많은 노인들이 삼삼오오 앉아서 담소를 나누거나 장기 게임등을 즐긴다. 마치 시민 공원과 같은 분위기이다. 그런가 하면 한쪽의 불상 앞에선 남녀노소 참배객들이 정성껏 향을 피우며 열심히 기도하는 모습들이 인상적이다.

 

나는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통곡의 벽에서도, 모로코 카사불랑카의 모스코(사우디 아라비아 메카의 제 1의 모스코 사원 다음가는 사원 임)에서도 같은 모습을 보았다. 비록 신앙의 대상은 다를지언정 그들이 간구(懇求)하는 소망은 한결같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관념(觀念)의 산물(産物)로 볼 때 그렇다.

 

지금 이곳에선 생자라, 생살무사 그리고 뱀의 생피 등이 소위 정력제라 하여 무참히 살상되어 호색가내지 섹스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정신장애자들의 입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러한 행위들은 가장 비과학적일 뿐만 아니라 가장 잔인한 비인간적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국내는 물론 전 세계의 동물 애호가들과 환경보호 운동가들의 비난과 지탄을 받는 이유도 그래서이다.

 

그들의 비난 여론이 부당하고 설득력이 없다면, 즉 타 국민의 고유의

식생활 문화에 대한 간섭 행위로 비친다면 왜 우리 정부에서는 당당하게 대처하지 못하는가. 그리고 이 지구상의 200여 개국 가운데 우리의 입장을 지지하는 국가는 왜 없는가를 생각해 볼일이다. 그릇된 상식과 지식으로 시대의 변천과는 무관한 듯 여전히 외국의 관광지에서 목격되는 부끄러운 현장은 사라져야 할 것이다. 위대한 한국인의 자존심과 끈기 그리고 우월성을 이런 모습으로만 세계에 알려야 될까?

 

지금도 이러한 곳에 한국 관광객들이 그룹으로 몰려오고 있다. 상재(商才)를 타고 난 화교들의 눈엔 한국 관광객들이 인간으로 보일 리 없다. 돈을 몰고 오는 우매하고 귀여운 봉(奉)으로 보일 뿐이다. 그 상인들은 오늘도 그들의 봉, 주고객인 한국관광객들(실제로 나는 그곳에서 서양인은 물론 일본인 등 외국 관광객들은 보지 못했다.)을 기다리고 있다.

 

국가 이미지의 손상은 개인적인 자존심 문제로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더 큰 문제로 확대 재생산되어 국가 단위의 문화 경쟁력마저 약화시킨다. 결국 한국에 대한 총체적 이미지는 부정적인 면이 더 부각되기 마련이다. 오늘날 국제화 시대는 이미지 전쟁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한심하고도 살벌한 장소를 떠나면서 한바탕 쇼를 해야만 했다. 모든 상인들이 한국 관광객들을 보호(?)한답시고 사진 촬영을 엄격히 통제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서도 나는 그들의 감시를 피해 몰래 카메라를 갖다 댔다. 그들은 상점끼리 서로 마주보고 있기에 상호 감시를 하는 듯 했다. 그들의 번뜩이는 눈총들이 나에게 모아지는 것을 감지한 나는 그곳을 아슬아슬하게 빠져 나왔다. 무슨 영화 속의 첩보 작전과도 같았다. 그들에게 걸렸다 하면 아마 나를 자라나 뱀 다루듯 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대만을 떠나면서 대만의 국부(國父), 손문의 기념관에 새겨진 넉

자의 의미를 되새겼다.

 

『飾水思源』(물을 마실 때는 그 근원을 생각하고 마시도록 하라.)

 

▶謝謝.        <홍콩과 마카오 편 계속>     - 장 정 대 -         

 

▶Email: jackchang7@yahoo.com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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