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관동성당 자유게시판

[생각의 꺼리]영재교육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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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eogus1] 쪽지 캡슐

2001-09-04 ㅣ No.1616

천재는 타고나는 것? 만들어지는 것?   

 

제프리 클루거/앨리스 팍 (타임)

Sunday, Apr. 22, 2001

 

메사추세츠주 브루클린가에 사는 탐 마톤 과 데니 벤-아리는 아이들을 성공적으로 키우기 위한 남다른 전략을 갖고 있다. 다른 대부분의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두 딸들이 모짜르트나 마르타 그라함스와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을 싫어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단지 아이들이 자신들의 삶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이 전략의 핵심은 그들만의 특별한 주말에 있다. 주말 동안은 아이들이 아무것도 안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다.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다는 것은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4살, 7살 짜리 아이들이 엄마/아빠처럼 늦게 자고 싶어하면 그렇게 내버려두는 것이다. 다음날엔 아침식사가 기다리고 있고 빈둥거릴 수 있는 아침 시간이 있다. 야외 놀이나 박물관 구경을 위한 오후도 있다. 그저 맘가는 것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월요일은 빨리 찾아올 것이고, 아이들은 학교공부/숙제/발레/축구 등 일상의 위험한 경주로 되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그때가 올때까지 숨쉴 기회를 갖자는 것이다. 벤-아리는 "우리 아이들이 주말을 통해서 그냥 아이들 그 자체로 돌아가고 밖에 나가서 예전의 우리가 아이였을때 처럼 빈둥거릴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는 것이죠"라고 말했다.

 

아이가 진정한 의미에서 아이가 되는 것이 이상한 개념이 아닌 때가 있었다. 오랜동안, 사람들의 어린시절은 인생의 가장 달콤하고 따뜻한 그 무엇을 주는 시기였다. 하루에 6시간 학교에 가 있고, 취미 생활하고 운동도 하고, 나머지 시간은 그저 뛰어 노는 것이었다. 어쩌다, 남다른 재주라도 있게 되면, 그냥 좋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 재주 자체가 나중에 직장을 구하기 위한 요구사항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지난 수년 동안 모든 것이 변했다. 21세기가 가 밝아올 때, ’수상하고 불안한’ 변화가 미국의 아이들에게 덮쳐온 것이다. 놀랍게도 무정부주의의 원칙이 적용되오던 아이들을 위한 교육기관들이 천천히 어른들을 위한 도제식 학교처럼 바뀌고 있는 것이다. 정식 교육을 시작할려면 한참 멀은 아장 아장 걸어다닐 아이들이 탁아 학교에 맡겨지고 있다. 놀이를 배우거나 다른 아이들과 공유하는 법을 배우려고 학원에 다니던 아이들이, 이제는 읽기/쓰기 또는 외국어를 가르치기 위해 만들어진 플레쉬 카드, 교재용 씨디롬과 다른 도구들에 무자비하게 노출되어 있다. 학생들은 예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고 있다. 그러고도 모잘라서, 집에서는 더 많은 시간을 숙제하는데 진땀빼면서 보내야 하는 것이다. 이 시간들은 사실 밖에 나가서 인격형성에 도움이 되는 사회 활동 부페 줄에 서서 보내야 할 시간인 것이다. 예전에는 유년시절이라는 것을 가졌던 아이들이 지금은 커리큘럼을 가져야 하고, 젊은 혈기로 움직이던 아이들이 지금은 직장인에게나 어울릴 목적의식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조기 열풍 뒤에 있는 근본 이유는 부모들이다.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을 완벽하게 만들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아이들을 최대한 이상적인 수준에 가깝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점점 더 집착하고 있다. 누가 그들을 욕할 수 있을까? 베이비-붐에는 못미치지만 출생율이 아직까지는 별다른 변화가 없고 좋은 학교를 위한 경쟁은 점점 더 드세어져 가고 있지 않은가? 동시에 이 학교들의 입학정책도 바뀌어서 더이상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경쟁이 가열되면서 아이들은 그들자신을 특화하기 위해서 그 어느 때 보다도 더 노력해야 한다.

 

부모들은 보다 원초적이며 구태의연한 죄의식에 사로 잡혀 있다. 남자들이 아이들 양육에 책임을 예전 보다는 더 많이 지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아이를 돌보는 것은 아직은 많은 부분 엄마의 몫이다. 그러나 매달 지출에 걸맞게 돈을 벌려면 부/모 모두 일을 해야하는 시대인 만큼, 많은 엄마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만큼의 시간을 아이들과 보낼 수 없게 되고 있다. 1999년에 62%의 엄마들이 밖에서 일했다고 한다. 이 수치는 1985년에는 54% 였고 1975년에는 44%에 불과했었다. "부모들이 엄청난 죄책감을 느끼고 있어요." 라고 보스턴에 있는 소아과병원의 죠슈아 박사는 말했다. "부모들이 시간이 있을 때에는 아이들에게 무엇이 일어날지를 기다릴 수 있었죠, 하지만 부모들이 압박을 받게되면, 아이들에게 지금 당장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 것을 보아야 직성이 풀리죠.". UCLA 소아병리학 교수인 라쉘르 타일러가 지적했다.

 

이런 부모들의 불안한 심리 속으로, 노점상들, 장삿꾼들이 발을 들여놓았다. 근심많은 부모들이 아주 그럴듯한 제물인 것이다. 상점들에는 아이들의 두뇌활동을 자극하기 위해 고안된 새로운 제품들로 넘쳐나고 있다. 물론 그렇게 할 수 없는 부모들을 위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제품들의 명목일 것이다. 공간 추리 능력을 향상시킨다고 알려졌었던 ’유아용 모짜르트 테잎’들이 있고, 여러 언어에 쉽게 익숙해질 수 있도록 아이들의 두뇌를 훈련시켜 준다는 두개의 언어로 된 제품들도(bilinguial products) 있다.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게 음악을 더 잘 들려주기 위해 산모의 배에 대고 들려줄 수 있는 손잡이가 달린 스피커도 있다. 태아의 자라나는 뇌를 자극하고, 언젠가는 현실에서 맞부닥쳐야 할 일들을 미리 준비시킨다는 것이 큰 이유다.  이들의 주장은 인간의 두뇌는 매우 제한된 시간 동안에만 특정한 능력을 배울 수 있다라는 것이고, 이 제품들을 이용하지 않는 부모들은, 아이들을 위험 속에 내버려 둘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냥 내버려두면 아이들이 영원히 뒤처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게 사실일까? 평범한 아이를 남다른 아이로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그렇다손 치더라도 그렇게 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아이들이 실수도 하고 흉터도 만들고, ’몇명은 특출나다는 평을 못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도록 하는 것이 좋은 것일까? 아니면, 슈퍼키즈(super kids: 위와 같은 엄청난 능력을 가진 아이들)를 만들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것이 좋은 것일까? 분명히, 이것의 장점에 대해서 조용히 의문을 던지고는 있지만 많은 부모들이 그 열망에 사로 잡혀 있다. "부모들은 그들 자신에게서 자신감을 잃었어요. 설사 자신들이 올바르게 판단을 하더라도 심하게 흔들리는 것이죠" 라고 미국 소아과학회장이 말했다.

 

아이의 재능은 조기에 인위적으로 조정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넘쳐나는 이 현상은 사실상 1994년에 처음 생겨났다. 그 해에, 카네기 재단이 134 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를 펴냈다. 이는 미국 어린이들의 "조용한 위기"에 대해서 그리고 있다. 맞벌이 부모들의 잘못된 교육과 실패한 학교 시스템이 이 위기를 불렀다고 주장했다. 당시 이 보고서의 내용은 세상 부모들을 동요하기에 충분했다. 이 보고서의 페이지들 사이에 깊숙히 파묻혀 있었지만, 마음을 동요하는 두 개의  문단이 씌어 있었는데. 위기에 처해있는 것은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뿐 만 아니라 취학전 유아들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는 경고가 그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미숙한 두뇌는 형성 초기 단계의 영향에 지극히 민감하며, 옳은? 또는 나쁜? 자극은 나중에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특별한 주목을 받을일 없는 그저그런 연구였을텐데도, 이 두 문단 때문에 마치 수류탄처럼 폭발했던 것이다. 언론은 일제히, 무관심 속에 놓여있었던 우리의 죄없는 아이들에 대하여 경각심을 일으킬 만한 이야기들을 실었다. 백악관은 유년기 성장에 관한 컨퍼런스를 열기까지 했다. 부모들은 자신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가했던 손해를 원상복구하기에 늦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그 뉴스를 펼쳐들었다. "모든 부모들이 걱정하기 시작했죠.", 라고 멕도넬 파운데이션 이사장이 말했다. "최신 모짜르트 씨디가 없으면, 아이들이 예일대학 대신에 교도소 신세를 지게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들의 잘못을 보상하기 위해서, 부모들은 인증된 종류의 음악 뿐 만 아니라 많은 제품들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비영리 연구 기관인, "Zero to Three" (영삼?) 에 의해 수행된 연구에 의하면, 고등학교 이하의 교육을 받은 80%의 부모들이 아이들의 마음을 끌기 위해 플레쉬 카드, 텔레비젼, 컴퓨터 게임을 열심히 이용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동개발 전문가에 의하면, 이런 건조한 도구들은, 아이들과 대화하거나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과 같은 보다 사회적이고 감성적 활동보다 못하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보여진 것 중, 아이들의 지적 잠재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오직 한 가지는 부모와의 안전하면서도, 상호 신뢰할 수 있는 관계라는 것에 동의했다. 안아주고 마주보고 함께 놀아주는 시간이 결국 신뢰와 존중의 유대감을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성장 피라미드는 바로 여기에 기초를 두는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의 사회적이고도 정서적인 개발을 후퇴시켜왔고, 이것은 결국 아이들과 우리 사회에 커다란 해악을 주고 있습니다."라고 Tyler는 지적했다.

 

인위적인 방법으로 아이들의 아이큐를 올려보겠다는 것은, 결국 어른들의 조바심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고, 아이들은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될 것이다. 4살이나 5살 (한국나이로는 6살 7살) 때까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아이들의 두뇌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어른의 그것과 엄청나게 비슷한 양상을 보이기 시작할 수 있다고 한다.  인체가 화/짜증/두려움 등의 상태에 있을 때 만들어지고, 폭력적인 행동, 급한 행동을 유발하는 원인이기도 한 "아드레날린이나 코티솔"이 증가하게 된다고 한다. 신경이 날카로운 상태로 오랜동안 있게 되면, 아드레날린의 증가 상태 또한 오랫동안 지속되고, 이는 결국 아이들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배우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게 된다.

 

아이들에게도 어른들에게도 지나친 스트레스는 좋을 것이 없다. 장사꾼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아이의 두뇌가 빨리 변하는 것은 사실이다. 수동적으로 정보를 빨아들이는 것은 아니고, 두뇌는 태어나면서 부터 뉴런들로 이루어지는 복잡한 거미집들을 짜나가느라 바쁘다. 이 뉴런들은 두뇌가 점점 더 정교해지는 것을 돕는다. 이 초기의 엄청난 양의 연결 고리들이 만들어지려면, 두뇌의 위치에 따라, 1년에서 5년이 걸린다고 한다. 이후에는 많은 부분이 문을 닫거나 퇴화해 버린다. 두뇌는 어떤 부분을 지킬것인가 어떤 것을 새로이 필요한가, 어떤 것은 없어도 되는가를 결정한다. 이 기간동안, 아이들이 "바른 자극"을 받아서 그들의 두뇌가 올바른 결정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 제대로된 자극이라는 것이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그것과는 다른 것일 수도 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입학을 위해서 준비해야할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유치원 아동의 부모들은 통상적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들었다: 숫자, 문자, 색깔 모양(사각, 삼각)을 구분하는 능력. 반대로 선생들은 더 중요한 것은 사회성이라고 일축했다. 나눔, 그리고 다른 이들과 대화하는 법, 선생의 지시를 따르는 법등. 이런 겉보기에는 별로 화려해 보이지 않는 것들을 잘 알고 학교에 온 아이들은 누구나 결국 접해야하는 읽기 쓰기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것들을 마스터하는데 대체로 더 나은 위치에 있다고 한다. "지능 (intelligence)이라는 것은 감성적으로 결함이 없다는 것을 전제가 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죠 " 라고 아동 전문가 베리씨가 말했다. "감성지수라는 개념은 바로 여기에 토대를 두고 있죠."

 

아이들의 지적인 성장을 측정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을 수도 있다. 아이들의 두뇌가 신경 연결 조직을 만들어 나갈 때, 부모들은, 이른바, 시각/청각 도구들을 이용하여 뇌를 자극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두뇌를 강화할 수 있다 것에는 여전히 의심의 여지가 남아있다. 알란 울프 (소아과 전문의)는 "아이들의 성취 또는 능력에 가속을 더할 수 있다는 믿음은 사실상 신화에 불과해요. 아이들은 그 수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이미 프로그램되어서 나온 존재들이거든요. 그런데, 아이들을 자극하여 뇌세포를 더 개발할 수 있다는 생각은 과학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어요." 라고 반박했다.

 

가장 오해가 심한 것 중의 하나는 소위 모짜르트 효과라는 것에 있다. 여러해 동안 과학자들은 배경음악을 틀어주면 청취자들의 공간 인지 능력이 향상될 수 있다는 것을 밝혀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것이 문외한들에게 창의력을 키울 수도 있다는 결론을 내리도록 만들어 버렸다. 하버드대학은 작년에 Zero라는 프로젝트 결과를 발표했었다. 이 연구는 50년 동안 이 분야의 연구를 종합 분석했다는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학생들에게 실시한 실험에서 음악을 들은 학생들은 필답 공간 테스트에서 더 좋은 결과를 냈긴 했지만, 그 배경 음악의 효과는 단지 15 분 동안만 지속했을 뿐 그 이후에는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음악을 듣는 것이 두뇌 능력을 향상 시킨다든가 예술적인 능력을 향상시킨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고 한다. 확실한 것은 아기들이 어떤 도움을 얻을 수 있다는 것에는 전혀 근거가 없다고 한다.

 

두뇌 능력에 대한 많은 잘못된 이해는 아마도 1970년대에 있었던 일련의 연구에서 오인된 것일 수도 있다. 이 연구들에서는 ’미로와 놀이기구’를 가지고 놀 수 있는 쥐새끼들이 그렇지 않은 녀석들에 비해서 더 많은 신경 세포들을 형성할 수 있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비슷하게, 충분한 보살핌 없이 자라난 어린아이들이 가끔 인지능력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이른바 초기 단계에서 지속적인 자극(stimulation)이라는 형태로 행해지는 엄청난 관심이 아이들의 지적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 현재의 과학 문헌에 따르면, 아동기의 적합한 계발에 필요한 자극의 양과 형태는 이미 보통 아이의 평범한 삶속에 충분히 스며들어 있다고 한다. 다른 특별한 요행수가 필요 없다고 한다.

 

부모들은 다음과 같은 ’기회의 창문 효과’라는 이론에 더욱 더 현혹되기 쉬울 것이다. 이 이론의 기본적인 생각은, 두뇌의 각 부분들이 서로 다른 형태의 기능을 배울 수 있는 기간이 비교적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이론에 특별한 무게를 실어줄 수 있었던 것은, 이 이론에 신화적인 요소가 너무 많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보여 주기가 힘든 것 아닌가?) 아이들의 언어 교육을 따져보자.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오묘한 능력이 아마도 이것이 아닐까? 두뇌는 언어를 배우기 위해 준비가 더 잘된 시기 또는 덜된 시기를 가지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막 태어나서, 아이들은 어떤 언어라도 똑같은 난위도로 배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생후 6개월 때 까지는, 아이들은 가장 자주 들리는 언어에 집중하기 시작한다고 한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두뇌의 이런 유연성을 이용해서 다른 언어를 동시에 가르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것이 가능하려면, 아이가 달변이 될 때까지 각각의 언어를 똑같은 주기로 말할 때 만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니, 비디오 테입을 사고 두개 말을 하는 장난감 (bilinquial toys) 을 사준다고 이 언어 교육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확실한 것은 이런 식의 교육이 아이들이 학교에 갔을 때 실제로 배우는 것을 쉽게 해주리라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수학이나 음악과 같은 다른 능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이런 창문 효과가 존재한다는 증거가 사실상 전혀 없다. 아이들은 각각의 필요한 능력을 서로 다른 속도로 마스터 해나간다. 그래서 3살에 읽기를 할 수 있는 아이를 둔 부모는 적절한 시기에 문자와 단어들을 소개함으로써 배움이라는 바늘에 실을 완벽하게 꿰어 맞추었다고 결론 내릴 수도 있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그것은 단순히 행운에 불과하고, 특정한 능력에 일찍 빛을 발하는 아이를 둔 것일 뿐이다. "사람들은 이 ’중요한 시기’라는 개념을 잘못 받아들이고 모든 것에 다 끼워 맞추려하는 것 같아요."라고 스패로우 박사는 말했다.

 

 

그렇다면, 부모들이 두뇌 장난감들을 방바닥에 늘어 놓는다면, 아이들은 어떤 장난감을 고르는 것이 좋을까? 만약에 대인관계가 아이들이 학교에서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측정하는 중요한 척도라면, 부모 자신들이 최고의 선생일 것이다. 실험에 의하면 생후 2개월이 될 때까지, 아이들은 부모의 얼굴에 비쳐지는 복잡한 언어에 익숙해 진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들의 편안하다는 느낌은 바로 부모의 얼굴 표정에 전적으로 의지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얼굴을 생각해보세요. 눈가의 주름들은 많은 것들을 표현할 수 있잖아요. 그것에 의해서 자극을 받는 아이들의 두뇌를 생각해보세요."라고 스패로우는 말했다. 그는 최고의 비디오 게임이나 장난감이 이런 배움을 대체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아이들이 정말로 배고파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라고 덧 붙였다.

 

이것이 교육용 장난감들이 전혀 쓸모가 없다는 것을 의미할까? 아니다. 어른들이 그런 것 만큼 아이들도 그림에 끌린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을 인지하기 쉬운 울긋 불긋한 책들을 일찍 접하도록 해주는 것이 집중력, 어떤 의미를 파악해 내는 능력, 더 나아가서 어떤 형태의 배움을 개발하는 것을 도와줄 수 있다고 한다. 아이들도 어른들 만큼 음악을 들으면 편안한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아이가 정말로 ’작은 모짜르트’라면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서 음악을 들을 때 더 높은 집중력을 가질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그 선을 넘어가면, 이런 상품들이 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발달 정도를 제대로 파악해본 부모라면 이 상황을 더빨리 눈치챘을 것이다. "우리 아들이 아주 어렸을 때, 이 아이가 원했던 모든 것은 우리하고 노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그런 비싼 장난감들을 사주기 보다는 우리 자신이 그 놀이의 대상이 되어줬죠. 똑 같은 어린아이로써 말이에요", 4살된 아들을 둔 엄마인 쉐런이 말했다.

 

 

부모들이 지금 위험속에 내버려 두고 있는 것은 단순히 아이들의 학교 성적표나, 대학선택이 아니다. 아이들의 영혼이 위험에 처해있는 것이다. 최근, 작가 데이비드 브룩스는 학생들에 대해서 보다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프린스턴 대학 캠퍼스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거기서 배운 것을 아틀랜틱 메거진의 (the Atlantic magazine) 독자 기고란에 실었다. 그는 이 기고문에서, 학생들은 미국 교육 시스템에서 빈틈없이 길러진 규격화된 제품들 같다고 말했다. 이 학생들은 재능도 있고, 잘 훈육되었고, 성공하도록 잘 이끌어져 왔다고 서술했다. 하지만 브룩스는 그들이 이상하게도 맥빠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찾아냈다고 한다. 흔히 젊은이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들판의 불길’ 같은 에너지는 찾아 볼 수가 없고, 그렇다고 그들에게서 엄청난 ’도덕적인 정의감 (moral passion)’을 가졌다는 어떤 증거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고 한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일을 시도해서 때로는 실패할 수도 있고, 그래서 다른 일을 시도하고, 이런 과정을 통해서, 가슴 깊이 감동 받을 수 있는 그리고 자신들을 진실로 변화시킬 수 있는 일을 찾아내고, 결국엔 그것을 그들의 일생동안 할 수 있는 일이 되도록 하는, 이런 절차에 대한 믿음을 그들 사이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아이들이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주사위를 던지게 하는 것은 위험 천만한 게임이다. 이 위험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이유는 이 아이들 중 최소한 몇 명은 결국 이 주사위 게임에서 실패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주 : 이 주사위를 던지는 행위 자체가 흔히 우리가 말하는 어떤 시도라고 볼 수 없다. 그래서 앞에서 말한 실패는 아무런 시도도 없이 결정된, 한마디로 주사위 던지기로 얻어진 실패아닌 실패라고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부모가 옆에서 세심히 지켜보는 가운데 아이들이 더 많이 시도다운 시도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이 더 많은 기회를 가지면 가질 수록 결국엔 승자가 될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고, 그런 과정에서 얻어진 실패들은 사실상 그렇게 비싼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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