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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61.106.104.*]

2006-11-16 ㅣ No.4604

 

† 찬미예수님

 

  모처럼 이 곳에 다시 들어와보니 스팸메일이 26통이나 쌓여 있더군요. 가차없이 쓰레기통으로 직행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 시간은 잠시 형제님 덕에 주님 사랑을 복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원론적인 이야기로만 들리실 지 모르겠으나 '신앙의 위기'란 '위기겸 기회'란 것을 잘 이해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님께서 신자로서의 의무인 주일 미사를 궐하지 않으신다니 참으로 고무적인 미래가 예견됩니다.

미사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교회에서 완전한 기도라 지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것을 의무감이나 해치움으로 치루어야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 때는 알게 모르게 바라던 내 평화가 반감되는 경우가 많겠지요. 그래도 전 세계 곳곳에서 봉헌되고 있는 이 미사를 모델로, 아니면 준 성사생활을 지향하는 그것으로 성사생활을 향하여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이것 역시 원론적인 이야기로 치부되기 쉽상이겠으나 완전한 행복의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악함과 선함 그리고 그 가운데 평상심이란 것이 있습니다. 형제님은 아마도 이 세가지의 역동성이 있기에 장인정신의 달란트로서 신앙을 버리기조차 힘들 것입니다. 아니 하느님이 형제님에게 큰 몫을 주셨기에 특별히 어떻게 왜? 형제님으로 하여금 마음속의 검은 연기등을 바라보게 하시고 또 반성하게 하시며 더 나아가 성찰과 정개등의 기회를 주시는지 즐겨 헤아리게 될 것입니다.

 

가족을 선교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나 배우자의 선교는 나를 이기는 극기에 버금갈 정도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안에는 이 또한 2006년간 전승되어온 부부 30훈, 부부 10계명등 풍성한 공부자료들이 있고 또 주님께서 애타게 우리를 기다리시듯 그 우편물을 들고 우리를 애타게 기다리는 도구들이 많을 것입니다. 일단 형제님도 더 늦기전에 아내와 침묵보다 사랑의 대화로 계속하여 진일보 할 수 있도록 하는것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침묵이라는 속에 대화에는 부부간에도 생각의, 말의, 실천의 대화(역시 기도)도 있슴을 유념해 두시기 바랍니다.

 

아내가 "성당에 다니며 무엇을 배우냐며...창피하지도 않으냐." 반박하는 것은 때로는 무지의 소산으로 마치 신앙을 모르는 비 신자가 '너희 신자들은 어쩌고 저쩌고!~~'하는 것을 닮을 것이요, 또한 우리 평신자가 심심찬케 성직자에 대한 질시감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그 분들을 폄하하고픈 충동과도 유사할 것입니다.

 

따라서 형제님의 가능성으로 아내의 그 지탄들이 결국은 시시각각으로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주머니속 거울을 통하여 나를 돌아보게 만들어주시는, 결국은 모두를 조금씩 더 그의 안의 깊은 그분이신 주님의 말씀으로도 들을 수 있는 시간 문제 개념이니 너무 걱정 마십시오.

 

가족들을 같은 믿음 안으로 끌어 들이는 방법 역시 내 자신이 주님을 직접 알현하고, 또 주님을 닮은 겸손의 여정속에서는 그 아픔마저도 감사할 수 잇는 은총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남성속에 여심이 공존함의 은총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님의 달란트와 연관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여성들 속의 남심과도 마찬가지라 봅니다. 일단 목적성을 타고난 남심으로 관계성을 중시하는 여심의 대화법을 그려려니 하는 무한대 사고로 의탁하며 듣는 습성으로 치유받으십시오. 부부의 조화로 이루어 질 것입니다.

 

'나 때문에 하느님과 교회 식구들까지 욕을 먹게 만든 것 같았습니다.' <--- 이는 하느님을 위로해 드리는 매우 훌륭한 기도이며 완성형에 진입하는 기도에 가깝다고 봅니다.

'집사람이 나에게 갖고 있는 불만도 이해가 갑니다.' <--- 연이어 이런 기도도 허락하고 계는것 같습니다.

 

저는 유독 화를 잘 내고, 가족들을 따뜻하게 사랑해 주지 못한 면이 많습니다. <--- 반성으로 성찰과로 변모되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하십시오. 일부 어리석은 견신교인들처럼은 하지 마시고 다만 편하게 받아들이시란 이야기입니다.

 

역시 님 스스로의 말씀중 "이해심도 부족하고, 도무지 믿는사람으로 좋은 본보기로 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 입니다.'란 고백 또한 광의의 의미로 보면 우리 천주교인들의 공통된 겸손의 발로이기도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 절두산 순교성지에는 일년이 넘도록, 저 순교자현양회관을 신축 봉헌하는 와중에서 인근 주민들이 지하 납골당 개설 관계로 갈수록 농도가 지나친 표말들을 입구에 도배형으로 걸쳐놓고 있슴을 볼 수 있겠습니다.

 

'지하에서 사탄이 웃고 하나님이 개탄을 한다' 죽은 시체를 가지고 장사를 하는 이 나쁜 족속들아!!'하면서 근처의 사이비 개신교 목사까지 자신의 얄팍한 교회 존재를 광고하려는 저의속에서 목에 핏줄을 세우는 전형적 약장수 어조로 확성기에 입을 들이대고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사이비에게 속고 있는 주민들은 평일에 꾸르실료 회관 앞 순교자 현양탑의 광장에 모여들어 역시 확성기를 들이대고 농성하는 것도 모자라 지난 묵주성월부터는 아예 주일에도 마치 고요한 미사 시간대의 부주의한 우리 자신들의 영성체로등을 함부로 지나는 발걸음 소리만큼이나 시끄럽게 궐기를 하며 자신의 소신인지 그 무엇인지를 강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절두산 측의 입장, 더 나아가서는 우리 가톨릭 신자들의 대응 자세를 묵상할 필요가 있겠는데, 바로 형제님의 그것처럼 주님이 전해주시는 겸손의 힘으로 너와 나는 '도무지 믿는 사람으로서 좋은 본보기로 살지 못한다는 성찰도 겸할 수 있기에' 우리는 그러한 군중들에게도 끄덕없이 말과 행위뿐 아니라 때때로의 밀려오는 질시형의 생각조차도 먼저 주님께 다시 침묵으로 봉헌되기를 갈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에 이르러, 주임 신부님께서도 얼마나 화가 나셨으면 이제는 우리도 그냥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하시고는 절두산 십자가의 길을 돌며 신자들 모두가 묵주기도에 동참하기를 권고하기도 합니다. 인간적 노파심에 저 철딱서니 없는 망나니를 닮고파 하는 사람들이 신부님을 해꼬지 하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마저 안 드는 것은 아니겠으나 무엇보다도 내 자신의 성화부터가 급선무인 것입니다. 

 

'믿음생활을 계속하는 것이 합당한 지 갈등이 생긴다'는 고백도 은총으로 받아들이십시오. 믿는다는 죄로 인하여 일찌기 최양업 신부님의 아내께서는 어린 두아이를 고아로 남겨두며, 젖이 말라 굶어죽는 어린 아기를 감옥에서 바라보며 어찌 형제님처럼의 그 유혹에 휩쌓이지 않으셨겠습니끼? 그러나 이 어머니는 악인들의 '믿지 않는다는 한마디의 강요속에서 이 말만 하면 너를 다시 세상으로 보내주마'하는 그 것에 기도를 통하여 대처하시고 하느님께 두 자녀를 의탁하며 승리의 길을 선택하셔야 하셨습니다. 참고 묵상하시면 즣을듯합니다.

 

아내의 지적중 " 하느님이 당신에게 해준게 뭐냐"고 묻는 것도 역시 은총으로 듣도록 노력하십시오. 하느님은 성부모님이시기에 아직 그 자녀가 장성하지 못하였을 때 큰 것을 바라지 못하신 다는 것을 유념하시어 아내의 그 지적 또한 안의 해를 밝혀주는 거울의 외침으로 들으실 필요조차 다분할 것입니다.

 

'경제적능력 이나, 변하지 않는 나의 완악한 성격을 지적할때는 정말 힘들어 집니다.'의 고백 역시 제가 님과 비슷한 경험을 가졌었기에 제가 이 시간 승리감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낙천성을 추천해 두리고 싶습니다. 이것은 인성적인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님안의 깊은 님이신 주님의 신성을 합하시면 님 역시 신성과 인성이 하나되어 오신 예수님의 완전한 도구로 돌아섬은 바로 이순간 지향할 수 있는 은총 자체인 것입니다.

 

일단 용기 잃치 마시고 부부는 침묵보다 대화가 필요한 경우가 많으니 님도 예수님의 도구로 더욱 깊이 진화하고 싶으시면 기도생활+공부생활+봉사생활+성사생활+공동체생활의 즐김 자체가 이 순간이기도 함께 하심으로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영원한 기쁨으로 진화케 하여 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을 향한 ...저에 마음은 그리 쉽게 포기하긴 힘들것 같습니다.' <-- 이 말씀도 좋습니다. 죽어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생물학적으로도 태교 10개월이 길어야 7~80여년의 인생을 좌우하듯 모든 과학과 사랑을 포함한 주님의 법으로도 영원 앞의 찰나일 수 밖에 없는 인생이 자연스럽게 성모님 태중의 태교로부터 성모송을 삼세번 바치는 영육의 식사인 삼종 기도도 아내를 훌륭히 주님께 인도하는 지향으로 바치게 될 것입니다.

 

부연하여 아내에게 절대 강요는 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강요는 프로테스(항의하다)를 낳는 것이 필연이기도 합니다. 우리 가톨릭 신자가 프로테스탄트교로 머물어야 되겠습니까? 프로테스탄트교(개신교의 공식 명칭, 기독교라 함은 그리스도교란 뜻으로 개신교라 함은 잘못된 상식)에도 우리보다 훌륭한 동량들이 차고도 넘치는데 말입니다. 그것보다는 믿는 이의 좋은 표양이 매우 필요한 선교 방법임을 형제님은 알고 계시기에 장차 기도의 즐거움을 알아 기도 거리를 매양 메모하는 님을 만나게 될지도 모를일입니다. 아무튼 형제님 역시 완벽 주의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심 좋을 것 같습니다.

 

"너무 부족한 저이지만 그분께 많은 의지를 하고 있습니다." <--- 이것도 확대 발전 시켜보십시오. 지금 이 창이나 교회 안팎등의 여타 인터넷과 생활상에서의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있슴을 목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포도나무이신 주님보다 잔가지 해석에 물들어 있는 너와 나의 모습을 보고 실소를 머슴거나 자꾸 자꾸 생성되는 나의 질시감등을 만나게 될 지도 모를 일입니다. 보편 적으로 보면 그나마 침묵의 환경이 좋은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어떨지 모르겠으니 사람들 마음이 닫혀 있슴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너와 나의 닫힌 맘을 얼마나 학수고대하시며 열려지기를 기대하고 계실까? 하는 것도 추측 묵상할 수 있게 되어집니다. 왜냐면 님이 현재 참여하고 있는 환경에서 미사를 보는 입장이 아닌 참례하려는 그것처럼 회사에서는 객체인 부하의 맘으로 상사를 바라봄이 아닌 아름다운, 하느님의 도구되길 원하는 한 상사를 지정하여 실제 그분의 입장으로 참례하는 것도 좋은 준 성사생활로 가능하여 질 것이며, 부수적으로 매우 중요한 현재의 입지에서 진화하는 자신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위기가 곧 기회라는 은총이지요.

 

상사는 부하에게 '너 노래해, 노래 하십시오'그랬다간 강요하는 상사로 낙인 찍힐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노래 하실 수 있나요? 노래 가능하십니까?' 그랬다가는 객으로 머물기 좋아하는 부하는 '죄송합니다. 저 못합니다'라고 뭔가 참여보다는 관망에 물든 그것을 피력할 것입니다. 이에 유능한 상사는 '지금 어찌 어찌한 데 노래 하실 수 있는지요?'하는 등의 도토리 키재기형이겠으나 조금씩 더 발전된 청유형등을 보여주며 자신을 쇄신키도 할 것입니다. 주님은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발전성을 허락하시기도 하며 또한 그의 말과 행실만 봐도 생각을 비추어 주시며 영적인 기도의 역량도 부어주시기 시작하실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상기 다섯가지 기도 생활의 조화된 삶에 인색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주님좋코 나좋코'라는 위기(궤변이자 참 은총)론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일단 부부간에도 즐겨서 너살고 나죽자의 예수형으로서 너죽고 나죽자형의 부부싸움형을 탈피토록 노력하십시오.

 

"오늘도 기도를 해 봅니다. "주님~ 저를 올바르게 고쳐주시고 우리 가정을 평화롭게 하여 주소서" 의 고백은 전입가경의 선물입니다. 님의 단편적 호기심 충족형 질문이 아닌 성가정 지향의 뜻깊은 질문임을 발견할 수 있는 방편이기도 합니다<--- 네에, 축하드립니다. 저역시 뿌리 뽑기를 선호하니 님 덕에 이에 걸맞는 좋은 아침 묵상문을 이어 드리고 싶군요. 아내에게도 말없이 선물도 전해 주실 것을 권면하며 필타로록 하겠습니다.

 

하루를 맞을 때

 

주님, 보잘 것 없는 저에게 다시 하루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어제와는 다른 새 빛과 새 향기를 풍기는 부드러운 얼굴, 그윽한 미소, 산뜻한 말의 하루가 되게 하소서.

 

저로 하여금 용서의 하늘과 화해의 바다를 가로 지르게 하시어 주님이 바라시는 행복의 꽃을 피워바치게 하소서.

 

주님, 오늘 햇살을 받는 모든 것들이 새 숨결로 저에게 다가오게 하시고 저로 하여금 새 생명을 얻게 하시어 오늘 그 누구를 만나든 결코 비교하지 않는 상쾌한 눈빛으로 바라보게 하소서.

 

주님, 제가 오늘 아무리 바빠도 사는 일은 오직 사랑하는 일임을 잊지 않고 어두운 생각이 아니라 밝은 침묵의 사랑으로 자연과 이웃과 주님을 바라보게 하소서.

 

특히 저의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쉬이 비추어 낼 수 있도록 제 영혼을 맑게 씻어주시어 투명한 사랑의 기쁨을 나누게 하소서.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 속에서 단단한 평화의 하루를 저로하여금 쌓아가게하시어 영원한 삶에 이르는 진정한 승리자가 되게하소서. 아멘.

 

이 기도는 생활성서사에서 제공하는 '클래식선율과 함께하는 기도'라는 CD 3장 1세트로써 2만원 정도 할 것입니다. 남편이 미울 때, 아내가 미울 때, 시어머니가 미울 때, 화가 날 때등으 갖가지 66개의 기도가 클래식 선율과 함께 수녀님과 수도자인 듯한 분의 곱고 건강한 나레이션이 함께 하니 역시 300배 600배의 수확으로 이어지는 좋은 투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저에 믿음 생활을 어떻게 하여야 하며...가족간의 불신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도움을 바랍니다."라 끝맺음 하셨는데, 조금씩 더 주님께 봉헌하려는 그 의지로 주님께서 제공하시는 묵주기도, 성체조배, 미사, 영성체등의 성화방법과 보다 친숙해지기 위해서라도 체험으로 이어지는 참여 정신으로서 세사람중 두 사람이 걸려넘어지는 환경에의 가톨릭 교회 환경을 세사람중 한사람으로 남도록 지금 이순간 청원하고 계심을 믿으십시오.

 

하느님도 꼼쩍 못하시는 단 한가지 방법으로는 '저는 당신을 믿사오니 저로 하여금 당신 평화의 도구가 되게 하여 주소서'의 기도라 할 수 있겠습니다. 모쪼록 객꾼으로 머물면 이것 저것 딴지나 걸기 쉬운 것이 우리네 삶의 이치이니, 이 또한 우리의 오류들임을 깨달아 직접 이 순간속으로 침투 받으시어 세상을 지휘하기 위하여, 매 순간 순간들을 지휘하기 위하여, 주변을 변모시키는 크리스천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공부하고 그에 따른 살아있음을 알리는 고통들을 즐기는 것도 얼마나 보람된 일인가를 실감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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