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동(구 미아3동)성당 게시판

'떠남'과 '머무름'(디모테오와 디도 기념일 복음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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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지종 [sjjbernardo] 쪽지 캡슐

2000-01-26 ㅣ No.652

* 오늘 하루가 이미 다 지나갔습니다. 저의 게으름으로, 조금은 바쁘다는 핑계로 오늘 복음 묵상을 너무 늦게 올립니다. 죄송합니다.

 

 

 

루가 10,1-9 (일흔 두 제자의 파견)

 

  그 때에 주께서 달리 일흔 두 제자를 뽑아 앞으로 찾아가실 여러 마을과 고장으로 미리 둘씩 짝지어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청하여라. 떠나라. 이제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이 마치 어린 양을 이리 떼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구나. 다닐 때 돈주머니도 식량 자루도 신도 지니지 말 것이며 누구와 인사하는라고 가던 길을 머추지도 말라.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이 댁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인사하여라. 그 집에 평화를 바라는 사람이 살고 있으면 너희가 비는 평화가 그 사람에게 머무를 것이며 그렇지 못하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주인이 주는 음식을 먹고 마시면서 그 집에 머물러 있어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집 저집 옮겨다니지 말라. 어떤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환영하거든 주는 음식을 먹고 그 동네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 나라가 그들에게 다가왔다고 전하여라."

 

 

  오늘은 성 디모테오돠 디도 주교 기념일입니다. 디모테오와 디도는 바오로 사도의 동료이자 협력자들입니다. 이들은 바오로 사도로부터 안수를 받고 주교가 되어 초대 교회의 이방인 선교에 큰 몫을 담당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매일미사를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디모테오 전후서와 디도서를 읽고 묵상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제 복음에 관해서 같이 묵상해 보지요.(성 디모테오와 디도 주교 기념일에 '일흔 두 제자의 파견'에 관한 복음 말씀을 듣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계시겠지요?)

  예수님께서는 당신에 앞서 당신께서 가실 곳에 미리 일흔 두 제자를 미리 파견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무 것도 지니지 말고 길을 떠나라고, 그리고 누구와 인사하는라고 가던 길을 멈추지도 말고 계속 길을 걸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파견된 사람이 지녀야 할 '떠남'의 자세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예수님께서는 이집 저집 옮겨다니지 말고, 한 곳에 머물러 그곳에서 주는 음식을 먹으며 머물러, 평화를 빌어주고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파견된 사람이 지녀야 할 '머무름'의 자세입니다.

  '파견'이라는 말 자체에 이미 '떠남'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위해 누군가에게 나아가는 것이 바로 '파견'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참 평화를 이루기 위해, 자신의 편안한 좁은 울타리 안에 머물지 않고 세상 안으로 떠나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떠남'은 어딘가에 '머물기 위한' 떠남입니다. 다시 말해 '떠남' 안에는 '머무름'이 이미 담겨져 있습니다. 평화를 갈망하는 이들 안에, 하느님 나라를 간절히 원하는 이들 안에 머물기 위해서 떠나는 것이지요.

  '떠남' '머무름'

  우리 신앙인이 동시에 지녀야 할 삶의 자세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떠남'과 '머무름'의 기준이나 시기가 우리 마음대로, 우리의 편의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저의 작은 삶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왕십리에서 어렸을 때부터 자랐고 그곳에서 사제로 서품받았습니다. 왕십리는 저에게 각별한 곳이지요. 제가 부제품을 받고 나서 몇몇 후배들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제 떠날 날이 얼마남지 않았네요? 그런데 정말로 떠나야 하나요? 이곳에서 함께 주님의 일을 하면 왜 안되지요?" 어떤 후배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잘 아는 사람들이 많은 곳, 제가 자랐던 곳, 그러기에 주님의 복음을 나누기에 더욱 알맞은 곳이라고 생각했던 왕십리를 떠나야 했습니다. 이것이 단지 사제가 출신 본당에 부임하지 못한다는 법적인 규정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가끔씩 왕십리 후배들에게 연락이 옵니다. '언제쯤 한가해져요?' '한번 찾아갈께요?' 라고 말입니다. 여러분도 저와 같은 경우라면 마찬가지겠지만, 참으로 청춘을 함게 보냈던 후배들 만나고 싶습니다. 그런데 사양을 하고 있지요. 저는 왕십리를 떠나왔고, 이제는 미아리에 머무를 때이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저의 첫본당 미아리를 떠나겠지요. 그리고 어딘지 모를 다음 부임지에 이곳에서 정들었던 벗들이 똑같이 연락을 하겠지요. 그러면 저는 똑같이 이야기 할 것입니다. 새 부임지에 머무를 때라고 말입니다.

  인간적으로는 아쉬움이 남지만, 하느님의 일을 위해 한 생을 바쳐야 하는 사제이기 전에 신앙인으로서 가져야 할 자세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주님의 뜻에 따라 머물 때와 떠나갈 때를 잘 알고 이에 충실히 따르는 것이 신앙인의 참된 생활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기준이 아니라 주님이 기준이라는 것을 다시금 생각해 보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모레, 신학교 들어가기 전에 청년 활동을 함께 했던 왕십리 후배들이 온다고 합니다. 약 한두시간 정도 만날 수밖에 없기에(혼배 면담 때문에 조금은 바쁘거든요) 다음 기회를 보자고 했지만, 그래도 좋다고 오겠다는 후배들을 뿌리칠 수 없었습니다. 분명 아쉬움이 남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멀리 선배를 찾아 온 후배들에게 미안한 자리가 될 것도 분명하지요. 그래도 참으로 기쁜 자리가 될 것 같습니다.

  나도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왕십리를 떠나왔고, 그 후배들도 상당수는 주님의 부름심에 따라 왕십리를 떠났습니다. 그런데 왕십리를 떠난 사람들이 주님 안에서 미아리에서 함께 만나는 것이지요.

  바로 이것이 부르심받은 사람, 주님께서 파견하신 사람의 삶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아니라 '주님', '나의 편의'가 아니라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떠남'과 '머무름'에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가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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