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힘은 나눌수록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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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훈 [p0o9i8] 쪽지 캡슐

2003-06-25 ㅣ No.5009

 

 

불교를 철학이나 학문의대상으로 생각하고 분석 연구

하는 사람들은 결코 불교를 알 수 없다. 불교 공부를

강의실에서 시작할 수는 있지만 그 공부가 실행되고

실천되는 곳은 삶이라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지금 20대이고 세상의 많은 철학

서적과 문학작품을 읽어 사상의 깊이가 깊고 인간의

무수한 희로애락을 다양하게 경험한 사람이라고 하자.

그렇다고 당신에게 ’삶을 안다’ 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의 주름깊이만큼이나 아득한 절망의 나락에도 떨

어져 보고 산봉우리 같은 높은 기쁨도 체험해 본 80대

노인만이 알고 있는 삶과 20대인 당신이 아는 삶이 같

을 수 있을까?

삶은 오직 체험으로만 알 수 있다.

지구상에 아무리 많은 사람이 존재해도 그들 각자의 삶

은 다 다르고 고유하다.

그래서 삶은 기적이다.

불교의 진리는 삶속에서 실천하고 수행하면서 천천히

알아가는 ’무엇’이다.

더구나 그 진리는 몸으로 체득해야 한다.

살면서 이를 꾸준히 실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항시 편한 것만을 찾으려는 게으름이 이것을 막기 때문

이다. 게으름의 힘은 무척 세다.

게으름을 떨치기 위해서는 동지를 만드는 것이 도움이

된다. 가족들과도 모여 깨어있는 마음에 대해서 이야기

를 나누고, 직장에서도 뜻을 같이하는 사람과 함께 하면

수행은 한결 쉬워진다.

이렇듯 수행을 함께 할 수 있는 공동체를 우리는 승가

(僧伽)라고 부른다. 승가는 서로를 격려하기도 하지만

상황을 좀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한다.

불교에서는 그런 객관적인 눈을 ’승가의 눈’이라고 부른

다. 개인의 눈은 별처럼 아름답다.

그러나 승가의 눈은 상황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통찰력을 더하여 갖추고 있다.

왜냐하면 승가의 눈은 공동체에 속한 모든 사람들의 지성

과 집중력, 제혜가 합쳐진 눈이기 때문이다.

같은 직장에 있는 사람들이 함께 깨어있는 마음으로

숨쉬기 명상과 걷기 명상을 하면 서로에게 힘이 된다.

또는 ’일하지 않는 날’을 규칙적으로 가져도 많은 도움이

된다. 이 날은 오직 자신을 돌보는 날이다.

플럼빌리지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게르른 날’이 있다.

이 날은 어떤 일도 계획하지 않는다.

단지 문득 하고 싶어지는 일, 마음 내키는 일을 하면 된다.

다만 한 가지 꼭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날 하루는 100%

깨어있는 마음으로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아침을 먹을 때도, 설거지를 할 때도, 차를 마실 때도,

화장실에 갈 때도 늘 깨어있는 마음을 유지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그날이 온전히 재충전의 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하지 않는 날’도 대상이 직장인이라는 것만 다를 뿐,

플럼빌리지의 ’게으른 날’과 기본 취지는 같다.

이날 당신은 오로지 당신 행복만 생각하면서 지금 이곳에

존재하는 삶의 경이로움을 접하는 일에만 몰두해야 한다.

이날은 일체의 전화는 물론 핸드폰도 집에 두고 오거나 꺼

놓아야 한다. 물론 일에 대한 걱정을 완전히 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문득 일에 대한 걱정이 앞서면 당장 달려가 전화라도 해야

할 것같은 조급한 마음도 생길 테고, 핸드폰을 쓸 수 없다

는 사실에 안절부절못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날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이런 걱정으로 흘려보낼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 마음 한편에서는 그렇게 걱정해봤

자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무언가를 걱정하느라,

또는 자신의 걱정거리에 대해 이야기를 하느라 많은 시간

을 허비한다.

말은 하면 할수록 부풀어지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걱정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걱정이 커질수록 그것에 집착한다.

이런 악순환은 우리에게서 힘을 빼앗을 뿐이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일하지 않는 날’을 정하고 한번

실천해보라.

점차 당신은 걱정을 놓아버리고 지금 이 순간의 삶에

몰두하는 일에 익숙해질 것이다.

아직 이 모든 것이 준비되지 않았다면 우선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먼저 찾아라.

그리고 도움을 청하라.

아무리 똑똑하고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도 혼자서 사나운

말을 길들이거나, 달리는 기차를 세우는 건 힘에 부칠

수 밖에 없다.

습관의 힘은 당신보다 훨씬 더 강하기 때문이다.

혼자서는 할 수 없지만 여럿이서는 할 수 있다.

머뭇거리는 당신에게 진리의 길을 함께 할 공동체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힘은 나눌수록 커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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