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동성당 게시판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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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정 [consola] 쪽지 캡슐

2002-10-10 ㅣ No.8606

3일 계속해서 쉬고 오늘 출근하는 날이다.

3일을 쉰다고 했지만 정작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재밌게 놀지도 못하고, 어딜 다녀온 것도 아니고, 가운데 날은 그나마 출근해서, 여름내 나를 지겹게 했던 일을 마무리하느라 눈이 시뻘게지도록 모니터만 바라본 하루...

삶이 이렇게 권태롭다니.

 

가을이다. 가을이란 말 속에 들어있는 한 움큼의 아름다움과 서늘함과 아쉬움을 이야기하고 싶다.

내가 제일 찐하게 기억하는 가을은 바로 재작년 가을이다. 9월 초부더 10월 말까지 무슨 교육프로그램을 듣느라고 맨날 대학로에 갔던 기억이며, 자퇴하고 싶었던, 아니면 한 학기를 더 버텨서 퇴학을 당해야 겠다고 결심을 하기도 했던 시절이었다.

허구한날 자료찾거나, 설문지 부탁을 위해서 이리뛰고 저리뛰었던 기억들밖에 남아있지 않은 재작년 가을을 나는 말하고 있다. 그 해 가을 정신없이 걷고 뛰고 할때 까만 아스팔트 위에서 바람이 한 번 쉬익 불고 지나가면 흩어져 버리는 노란 은행나무잎들, 깜장과 노랑이 대비되면서, 바람부는대로 이리저리 몰려다니면서 나름의 무늬를 만들어주던 인상을 나는 추억하고 있는 것이다.

 

산에 가고 싶은 마음을 이렇게 나뭇잎 날라가는 것을 보면서 달랜다...

산에가도 이렇게 낙엽이 흩날리겠지...

속으로 중얼거리던 말들

 

무척이나 힘들었던 시절이었는데도, 지금 기억나는 건 아스팔트바닥에 흩날리는 은행잎 이파리들뿐이다.

영화 <오, 수정>에서 같은 사건을 놓고도 주인공들의 기억이 서로 다른것처럼, 혹은 <메멘토>에서 결국은 주인공이 사실이 아닌 것을 기억하여 행동을 전개해나가는 것처럼, 나의 이 추억도 어느정도는 비틀린 것이며,

먼 훗날에 기억할때는 지금 기억하고 있는 것과 다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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