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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가 된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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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1동성당 [suyu1] 쪽지 캡슐

2008-12-07 ㅣ No.10438

세계 제2차 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나치 정권은 유대인들을 멸종시킬 작정을 하였습니다. 아우슈비츠를 비롯해서 여러 곳에 집단 수용소를 만들고는 거기에다 유대인들을 붙잡아다 수용하여 놓고는 강제노동을 시켰습니다. 

혹독한 노동을 견디지 못하는 노약자들은 가차 없이 가스실로 보내어 죽였습니다. 그런데 수용소 생활이 너무 힘겹기에 스스로 포기하는 사람들이 꽤나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일부러 아픈척해서 끌려가 가스실로 보내져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한 노인이 이 자살증세를 보였습니다. 노동을 태만히 하고, 눈물을 질금질금 흘리고, 감시원의 말을 어겼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이 삼 일 뒤에는 어김없이 건강진단이라는 구실로 뽑혀나가 가스 처형실로 끌려가게 됩니다. 같은 막사에 사는 청년이 안타까워서 노인을 붙들고 하소연을 합니다. 

그는 젊고 예쁜 자기 부인이 나치들에게 능욕을 당하고 굶주림 끝에 가스처형실로 끌려가는 것을 보았으나, 나치와 투쟁의 기회를 얻고자 열심히 산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노인께서도 기운을 내라고 권고하였습니다. 그러나 노인은 아무 대꾸를 하지 않았습니다. 

청년은 내일 죽어도 끝까지 이 사악한 나치정권을 거부하고 전 세계에 이들의 잔악성을 고발할 준비를 해야지, 그렇게 자포자기해서는 패배나 다름이 없다고 대들었습니다. 그래도 노인은 무표정한 채로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자 청년은 나치정권을 피해서 미국으로 망명해있는 노인의 아들부부와 손자들을 거론하면서, 이들에게 왜 좌절을 주려하느냐고 윽박질렀습니다. 그랬더니 노인은 눈동자를 조금 움직였습니다. “그 애들도 나를 생각할까? 그래본들 이 무인도 같은 데서 홀로 죽은 내 소식이 어떻게 들어가겠나?” “어르신네, 여기서 누구든 살아남으면 반드시 유족에게 전하도록 약속하게 하시면 됩니다. 우선 저부터 약속합니다. 그리고 어르신네는 너무 이기적이십니다. 왜 우리들 생각은 안 해 주십니까?” 그러자 노인은 놀란 표정으로 청년을 쳐다보면서 “내가 뭘 어쨌다고 이기적인가?”하고 물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어르신네가 이러시니까 당장 저부터 죽고만 싶습니다. 그게 어찌 저뿐이겠습니까?” 노인은 자신을 둘러싼 이들의 처연한 표정을 돌아보면서 눈물 반웃음 반의 표정을 짓고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젊은이 고맙네. 자네 말이 맞네. 내 다시 시작해 볼게.” 


그 이후 노인은 눈에 띠게 달라졌습니다. 노인은 수용소 안의 청소도 누구보다도 먼저 나서고, 감시병들 앞에서도 명랑해졌습니다. 차림새도 깨끗해졌고 웃음과 흥얼거리는 소리가 입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수용소 분위기조차  달라졌습니다. 그런데 한 젊은 청년이 같은 막사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는 기침을 몹시 했습니다. 젊은 청년은 아직 건강했지만, 감시병들은 건강진단을 해주겠다면서 저녁에 작업을 마치면 트럭을 타라고 지시한 후 상의에 붙은 번호를 적어갔습니다.

 

그날 저녁이 되었습니다. 내막도 모르고 건강진단을 받게 됐다고 좋아하는 청년에게 노인이 다가서서 말을 걸었습니다. “자네 미안하지만 그 옷 좀 바꿔줄 수 없겠나? 자네보다는 내가 더 약해보이지? 자네 번호하고 내 번호하고 바꾸었다가 자네 번호를 부를 때 내가 나갈 테니까 자네는 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 덕분에 내가 건강진단 좀 받게 말이지.” 청년은 잔뜩 부은 얼굴로 투덜거리며 옆 사람들의 보았습니다. 

온 방안이 엄숙한 고요 속에 잠겨 있었고, 모두들 경건하게 그 노인을 바라보면서 감히 말릴 엄두를 못 내었습니다. 어떤 이는 눈물조차 글썽였습니다. 이 기묘한 분위기에 눌린 청년은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하고 옷을 바꿔 입었습니다. 곧 차가 와서 노인을 싣고 갔습니다. 차가 떠난 후 조용한 방에서 청년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였습니다. 뒤늦게야 사정을  알아차렸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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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인 삶이란 무조건 자기 욕심을 채우려는 형태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슬픔, 고통, 절망만을 붙잡고서 주위사람에게 자신의 슬픔과 고통, 절망을 떠 안겨주는 것도, 자포자기해서 자기 목숨을 끊은 것도 이기적인 삶이 될 수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일수록 이런 깨달음이 우리를 분발시켜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견디기 어려운 곤경 중에서도 활기차게 살면서 다른 이에게 힘을 주는 사람은 아름답고 청아한 노래로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사람과 같습니다. 이런 사람이 성자(聖者)가 아닐런지요.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삶이 참 팍팍해집니다.  당분간 상황이 나아지기 보다는 더 어려워진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어서 마음의 어두움이 더 짙어지고 무거움이 더해집니다. 

성자가 절실히 필요한 시간입니다. 하느님의 빛 안에서 우리 모두 성자가 될 수 있습니다.  대림절, 그 빛을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 손희송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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