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창동성당 게시판

5월3일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1.Nos Au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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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정 [wjyou57] 쪽지 캡슐

2003-05-03 ㅣ No.1139

 

축일 : 5월 3일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사도

Sts. Philppus et Jacobus, Ap.

 

전승에 따르면, 로마에 열두 사도 대성전을 봉헌할 때 제대 밑에 필립보 성인과 야고보 성인의 유해를 모셨다(565년 5월 1일?)고 한다.

이러한 전승 때문에 서방 교회는 두 사도의 축일을 함께 지내게 되었다.

Apostle St Philip-GRECO, El

1606 Oil on canvas, 97 x 77 cm Museo del Greco, Toledo

 

성 필립보 사도 St.Philip 80년경 이스라엘

 

필립보는 베드로와 안드레아와 마찬가지로 베싸이다에서 태어났고, 예수님을 만나 그분의 제자가 되기 전에는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다(요한 1,43-44 참조).

필립보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던 날, 예수님을 뵙게 해 달라고 청하는 몇몇 그리스 사람들을 위하여 중개를 맡는다(요한 12,20-22).

 

그리고 필립보는 무엇보다도 마지막 만찬에서 예수님께 "주님, 저희에게 아버지를 뵙게 하여 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하고 청한 것으로 유명하다.

예수님께서 필립보의 청에 이렇게 대답하셨다. "필립보야,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

예수님과 필립보의 이 대화는 오늘 교회가 바치는 기도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본기도, 복음 환호송, 영성체송, 영성체 후 기도).

 

그의 그리스식 이름과 그가 가졌던 이방인들과의 관계(요한 12,20-30)를 볼 때 헬레니즘화된 사회에 속해 있었음이 틀림없다.

갈릴레아의 겐네사렛 호숫가 부근 벳사이다 출신인 필립보는 사도들 명단에도 등재되었다(마태 10:3, 마르 3:18, 루가 6:14, 행전 1:13).

이외에 그가 언급된 곳은 요한 복음서이다.

그는 예수로부터 직접 제자로 간택되었고(요한 1:43~48), 나타나엘을 그리스도께 인도하였다.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중에도 그가 참석했고(요한 6:1~15), 예수를 찾아온 이방인들을 예수께 소개도 하였다(요한 12:21이하).

예수의 수난 직전에 그는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하고 간청도 하였다(요한 14:8이하).

 

4복음서중 필립보와 관련된 세 가지 사건은(요한 1,45; 6,5-7; 14,8) 여러가지로 구약의 사건을 연상케 해준다.

그는 사람의 아들인 그리스도 속에서 구약의 예언이 성취를 목격하고자하는 자신의 희망을 표현한다.

그는 빵과 고기의 기적(요한 6,1-15 : 부활 제2주간 금요일 참조)을 출애굽 때 광야에서의 사건(민수 11,21-23)을 통하여 우리가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또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소서"(요한 14,8) 하는 그의 소망은 "당신의 존엄하신 모습을 보여주십시오"(출애 33,18)하던 모세의 소망의 재현이다.

 

성 필립보 사도의 그 후의 생애와 행적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는 점이 극히 적다.복음을 전파하다가 순교를 당한 장소가 터어키라는 전설은 확실하지는 않다.

전설에 따르면 사도들이 각각 사방으로 전교를 떠났을 때, 그는 그리스를 무대로 설교하였고, 도미시안 황제의 크리스챤 박해 때에 히에라폴리스에서 십자가형으로 순교(약78년경?) 하였다고한다.

Apostle St James the Less-GRECO, El

1606 Oil on canvas, 97 x 77 cm Museo del Greco, Toledo

 

성 야고보 사도 알패오의 아들St.James the Less(St.Jacobus) 벳사이다. 약제사의 주보. 62년경

 

우리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를 요한의 형제 야고보와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오늘 축일을 지내는 야고보를 예루살렘교회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주님의 형제"와 같은 사람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알패오의 아들과 주님의 형제를 같은 인물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다.

우리는 야고보가 열두 사도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으로 만족하여야 할 것이다(마르 3,18).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뒤 야고보에게 나타나셨다(1고린 15,17)는 사실과,

야고보 사도가 후에 신약성서의 정경이 된 서간(야고보서) 하나를 남겼다는 사실뿐이다.

 

 

예수님의 부활의 목격자(1고린 15,7)라는 사실은 예루살렘 교회에서의 그의 위치를 뚜렷하게 해주었으며

베드로가 그에게 옥에서 풀려난 사실을 전파하게 한 일과(사도 12,17)

개종한 바오로가 그와 접촉한 일 등은 예루살렘 회의에서 그로 하여금 중요한 역할을 하게 한다(사도 15,13-29).

 

우리는 야고보에 대하여 그의 이름 외에 아는 것이 없다.

물론 예수님이 그를 새로운 이스라엘인 교회의 열두 기둥 가운데 하나로 뽑으셨다는 것은 알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사도들의 일대기를 읽고 그 축일을 지내는 것보다

많은 사람들을 하느님의 나라에 이끌기 위하여 그들이 순교하면서까지 전파한 하느님의 말씀에 감사하고 지금도 우리를 거룩한 성찬에 초대하고 있으며,

우리는 지금 사도들의 터전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겠다.

 

’야고보의 편지’에 나타난 가난한 자에 대한 찬양과 부자에 대한 무서운 경고의 메시지는

우리의 믿음이 능동적이어야 하며 정의로움이 없이는 결코 열매맺지 못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야고보  Jacobus (가톨릭대사전에서)

 

①열두 사도의 하나이며 알패오의 아들.

고대 전승은 작은 야고보와 동일 인물로 보는데 `작은’이란 신장이나 나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차야고보라 불러왔다.

전승은 나아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글레오파의 아내 마리아를 동일시한다. 그러므로 알패오와 글레오파는 동일 인물을 가리키는 두 개의 이름이며,

더구나 글레오파 의 아내 마리아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자매이므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주님의 형제뻘인 야고보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을 통하여 최근의 다수 학자들은 신약성서에서 사도들과 주님의 형제들이 구별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구별은 사도 1:14와 1고린 15:7에서도 드러난다.

주님의 동생 야고보는 예루살렘의 야고보와 같으며 바울로가 `야고보와 게파와 요한’을 교회의 기둥으로 열거한 것도 갈라 1:19에 비추어 이해할 수 있다.

정경인 야고보의 편지는 주님의 동생 야고보가 쓴 것이다. 예루살렘의 야고보는 62년 혹은 66년경에 순교하였다.

동방전례에는 예루살렘의 야고보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를 다른 인물로 보고 축일을 달리 지내나 로마 전례에는 양자를 동일인으로 보아 5월 1일을 축일로 지낸다.

 

②열두 사도의 하나이며 제베대오의 아들. 축일은 7월 25일.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구별하여 장야고보라 불러 왔으나, 성서에서 붙인 호칭은 아니다.

갈릴래아의 어부였으며 삯꾼을 고용할 정도로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살로메이며, 이들 형제가 `천둥의 아들’이라 불린 이유는 사마리아 동네의 냉대를 참지 못해 하던 과격 한 성격때문일 것이다.

44년 헤로대왕에 의하여 죽음으로써 사도들 중 첫 순교자가 되었다.

전승은 야고보의 스페인 여행시기를 예수님의 죽음이후, 야고보의 순교이전으로 잡고 있으나 이는 바울로의 말씀과 맞지 않는다.

스페인 콤포스텔라의 산티아고에 안치된 유해가 야고보의 것인지에 관하여 교황레오 13세가 칙사에서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다투어지고 있다.

회화에서 순례자의 종을 들고있는 모습이 많다.

 

 

★야고보의 편지 (가톨릭대사전에서)

 Epistola Catholica Beati Jacobi Apostoli

 Epistle of St. James

 

1. 문학적 성격 :

1장 1절의 인사말 외에는 편지다운 특징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 저서는 구체적 상황에 관한 언급없이 윤리 도덕적인 훈계를 별 순서 없이 늘어놓고 있다.

따라서 야고보서는 편지가 아니라 구약 성서의 지혜서들과 가까운 교훈집이다.

본서는 주제가 서로 다른 명제를 나열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서로 비슷한 내용의 단절어 를 연결하기도 하며, 또 흔히 한 주제에서 다음 주제로 넘어 갈 때 양쪽에 나오는 공통적인 낱말을 `연쇄어’로 삼아 문장을 연결하기도 한다. 그리고 짤막한 문장과 직설성, 많은 비유와 명령법은 이 저서가 정열적이며 분명한 결정과 행동을 요구하는 설교자의 작품임을 드러낸다.

 

2. 저자와 집필상황 :

본서의 필자는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신약성서에 나오는 야고보 가운데 이 편지의 저자는 누구일까?

인사말 가운데 사도라는 명칭이 없으니 예수와 동기간인 야고보가 본서를 집필 했을 가능성이 짙다.

그는 일찍이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로 등장했으며 유태인들의 율법에 대한 애착을 가진 동시에 이방인 신자들의 자유를 인정하였다.

이 사실 은 야고보서의 내용에 잘 들어맞는다. 그 분위기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팔레스티나의 유다주의를 지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본서를 가명작품으로 보는 학자도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세련된 그리스어.

②70인역의 그리스어 구약성서의 사용.

③오랜 신자생활을 하다가 권태에 빠진 상태를 전제하는 실천의 강조.

④갈라디아서나 사 도행전에 등장한 야고보와는 달리 본서에는 율법의 준수를 요구하지 않는점. 따라서 야고보서의 친저성에 관해 확실한 판단을 내릴수 없다.

야고보서는 2세기 말에 작성된 무라토리 경전목록에 없다. 3세기 초에 오리제네스가 처음으로 본서를 성서로서 언급한다.

그러나 4세기 말 이전까지는 본서를 정경으로 보지 않은 교부들이 많았다. 그러다가 16세 기에 이르러 마르틴 루터가 다시 본서를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그 까닭은 루터가 일방적으로 따른 바울로의 신학에 비해서 야고보서는 선행을 너무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개신교에서 본서를 경전목록에서 뺀 적은 없다.

본서의 수신인들은 팔레스티나 본토를 떠나서 사는 유대계 그리스인들이며 그 집필 연도는 예수의 동기인 야고보가 사형 받은 62년 이전이다.

그러나 이 편지를 가명작품으로 보는 학자들은 그 연대를 80년 이후로 내려잡는다.

 

3. 내용 :

본서의 윤리적 교훈들은 그 성격상 구약과 유태교 윤리관과의 지속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윤리관은 공동체의 질서와 개개인의 생활을 하느님의 말씀과 계명에 따라 규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형제애와 기도, 그리고 세말에 이루어질 하느님 심판에 대한 각오와 기대가 강조된다. 그리고 예언자들의 전통을 이어 야고보는 치부를 경계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편에 선다.이 점들은 모두 예수의 윤리적 교훈, 특히 산상설교의 내용과 잘 통한다.

 

야고보는 신앙의 실천을 강조한다. 이 점에 있어서는 바울로의 가르침에 반대되는 인상을 줄수 있다.

같은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근거로 해서 야고보는 인간의 의화가 행실이 없어 오직 신앙으로 말미암아 실현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기서 양자가 반박하려는 오류들이 다르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바울로는 유태인들을 상대로 인간이 율법준수로 하느님의 구원을 살수 없다는 진리를 증명하려고 한 반면에,

야고보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지 않는 신앙이 쓸데없는 신앙 또는 사이비 신앙이라는 사실을 설명한다.

여기서 야고보는 바울로를 직접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바울로의 본 의도를 잘못 알아듣고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그의 가르침을 왜곡하여

선행의 필요성을 아예 부정하기에 이른 사람들을 반대하는 것이다. 실상신앙의 실천을 요구하는 데 있어서는 야고보와 바울로는 완전히 일치 한다.

 

 

 

 

 

테르툴리아누스 사제의 저서 [이단자들에 대한 규정]에서

(Cap. 20, 1-9; 21,3; 22,8-10: CCL 1,201-204)

 

사도들의 복음 선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이 어떤 분이며 또 과거에 어떤 분이었는지를 알려 주셨고, 당신께서 실현하시고자 오신 성부의 뜻은 무엇이고 인간이 무엇이며 인간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셨습니다. 이것은 어떤 때 백성들 앞에서 드러나게 전해 주셨고 또 어떤 때에는 당신 제자들에게만 따로 전해 주셨습니다. 이 제자들 중에 열두 명의 으뜸들을 뽑으시어 민족들의 스승으로 삼으셨습니다.

 

부활하신 후 성부께로 돌아가실 때 제자 중 하나를 제외하고 나머지 열한 명의 제자들을 민족들에게 파견하시어 그들을 가르치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도록 하셨습니다. 사도(이 명칭은 "파견된 자"를 뜻합니다.)들은 즉시 주사위를 던져 다윗의 시편에 있는 예언의 귄위에 의거하여 열두 번째 사도로 유다 대신 마티아를 뽑았습니다. 그들은 약속에 따라 기적을 행하고 담대히 말할 힘을 주시겠다는 성령의 은총을 입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먼저 유다에서 선포했고, 그 다음 유다인들이 거부할 때 그 동일한 신앙의 가르침을 온 세계에 나아가 선포하여 교회를 세웠습니다.그들은 이런 식으로 도시마다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다른 교회들은 신앙의 새싹과 가르침의 씨앗을 받았고 또 끊임없이 받아 교회들이 되었습니다. 이로써 그 교회들은 사도들의 교회의 후예로서 사도적 교회라고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물들은 그들의 기원에 종속시켜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들 교회는 수적으로 많다 해도 그들이 유래한 시원적 사도 교회와 동일합니다. 따라서 모든 교회들이 하나의 교회를 이루므로 모두가 시원적이고 모두가 사도적입니다. 이 교회들이 서로 보여 주는 평화와 형제애와 환대가 이 일치를 표시해 줍니다.이와 같은 것들의 기초는 동일한 신비의 유일한 전승입니다.사도들이 가르친 것, 즉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계시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알리려면 사도들이 세운 이 교회의 신앙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사도들은 이 교회에서 생생한 목소리로 직접 복음을 선포하였으며, 훗날 편지를 통해서 그 신앙을 선포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어느날 "아직도 나는 할말이 많지만 지금은 너희가 그 말을 감당할 수가 없다."고 말씀하셨고, 이에 더하여 "그러나 진리의 성령의 오시면 너희를 이끌어 진리를 완전히 깨닫게 하여 주실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사도들이 진리의 영을 통하여 진리를 완전히 깨닫게 되리라는 약속을 받았기에 그들은 모르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사도행전의 성령 강림 기사가 증명해 주듯이 주님은 이 약속을 분명히 성취하셨습니다.

 

The Apostle James the Elder & The Apostle Philip-DURER, Albrecht

1516 Tempera on canvas, 45 x 38 cm, 46 x 37 cm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1.Canto Gregoriano-Nos Au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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