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음동성당 게시판

* 천 번 만 번 거절을 당해도(1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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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국길 [fcan] 쪽지 캡슐

2004-10-18 ㅣ No.3686

연중 제29주일 (2004-10-17)

독서 : 2디모 3,14-4,2 독서 : 출애 17,8-13 복음 : 루가 18,1-8

* 천 번 만 번 거절을 당해도 *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언제나 기도하고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고 비유로 말씀하셨다. “어떤 도시에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거들떠보지 않는 재판관이 있었다. 그 도시에는 어떤 과부가 있었는데 그 여자는 늘 그를 찾아가서 ‘저에게 억울한 일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십시오’ 하고 졸라댔다. 오랫동안 그 여자의 청을 들어주지 않던 재판관도 결국 ‘나는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거들떠보지 않는 사람이지만 이 과부가 너무도 성가시게 구니 그 소원대로 판결해 주어야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꾸만 찾아와서 못 견디게 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이 고약한 재판관의 말을 새겨들어라. 하느님께서 택하신 백성이 밤낮 부르짖는데도 올바르게 판결해 주지 않으시고 오랫동안 그대로 내버려두실 것 같으냐? 사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실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과연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루가 18,1-­8)

과부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상징입니다. 돈도 없고 권력도 없으니 공정한 판결을 얻어낼 가망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무기는 끈질김입니다. 그러나 결국 재판관은 ‘성가시게 계속 찾아와 괴롭게 졸라대는 것’에 지고 말았습니다.
참을성과 기도하는 사람의 끈기를 말씀해 주시는 비유입니다. 참고 기다리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 또 있을까 싶을 때가 많습니다. 복음에 나오는 재판관은 인정머리는 없었지만 간절히 청하는 여인의 끈질긴 청을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인은 하느님을 굳게 믿고 천 번 만 번 거절을 당해도 문을 두드려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요즘 저는 사소한 일로 마음이 상해 함께 일하는 어떤 분을 계속 피하고 있습니다. 일부러 가던 길을 되돌아간 적도 있습니다. 저에게 먼저 와서 사과하지 않는 한 절대로 아는 척도 하지 않으리라는 결심도 했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점점 더 불편해지기만 합니다. 내가 먼저 바꾸자는 내적 욕구를 계속해 느끼면서 온갖 애를 써보지만 실망만 할 뿐입니다. 의지가 전혀 작동이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나약한지 저도 몰랐습니다.
욥기를 읽으라는 권고를 듣고 성서를 펼칩니다.
“욥이 야훼께 대답하였다. ‘알았습니다. 당신께서는 못하실 일이 없으십니다. 계획하신 일은 무엇이든지 이루십니다. 부질없는 말로 당신의 뜻을 가리운 자, 그것은 바로 저였습니다. 이 머리로는 헤아릴 수 없는 신비한 일들을 영문도 모르면서 지껄였습니다.’ 당신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들어라, 내가 말하겠다. 내가 물을 터이니 알거든 대답하여라.’ 당신께서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소문으로 겨우 들었었는데 이제 저는 이 눈으로 당신을 뵈었습니다. 그리하여 제 말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티끌과 잿더미에 앉아 뉘우칩니다.”
오늘 독서에서 이집트 탈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저도 매일 노예생활에서 자유와 속박과 억압의 땅에서 약속된 땅을 향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이 길이 감격과 행복의 여정만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시련도 있고 시험에 들기도 합니다. 사막으로 가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당하던 시련을 저도 나름대로 겪으면서 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선희(서울대교구 대방동 천주교회)

-  봄비 속을 걷다 -

봄비 속을 걷다
아직 살아 있음을 확인한다
봄비는 가늘게 내리지만
한없이 깊이 적신다
죽은 라일락 뿌리를 일깨우고
죽은 자는 더이상 비에 젖지 않는다
허무한 존재로 인생을 마치는 것이
나는 두려웠다
봄비 속을 걷다
승려처럼 고개를 숙인 저 산과
언덕들
집으로 들어가는 달팽이의 뿔들
구름이 쉴새없이 움직인다는 것을
비로소 알고
여러 해만에 평온을 되찾다

- 류시화의 詩중에서 -


님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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