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동성당 게시판

해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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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아 [agatha2279] 쪽지 캡슐

2002-11-04 ㅣ No.3112

 

    해 거 리

   

                박 노 해

  

   그 해 가을이 다습게 익어가도

   우리집 감나무는 허전했다.

   이웃집엔 발갛게 익은 감들이

   가지가 휘어질 듯 탐스러운데

 

   학교에서 돌아온 허기진 나는

   밭일하는 어머님을 찾아가 징징거렸다.

   왜 우리 감나무만 감이 안 열린당가?

   응 해거리 하는 중이란다.

   감나무도 산 목숨이어서

   작년에 뿌리가 힘을 너무 많이 써부러서

   올해는 꽃도 열매도 피우지 않고

   사방 뿌리에 힘을 키우는 중이란다.

   해거리할 땐 위를 쳐다보지 말고

   발 아래를 지켜봐야 하는 법이란다.

 

   그 해 가을이 다 가도록 나는

   위를 쳐다보며 더는 징징대지 않았다.

   땅속의 뿌리가 들으라고 나무 밑에 엎드려서

   나무야 심내라 나무야 심내라

   땅심아 들어라 땅심아 들어라

   배고픈 만큼 소리치곤 했다.

 

   어머님은 가을걷이를 마치신 후

   감나무 주위를 파고 퇴비를 묻어주며 성호를 그으셨다.

 

   꽃과 열매를 보려거든 먼저

   허리 굽혀 땅심과 뿌리를 보살펴야 하는 거라며

 

   정직하게 해거리를 잘 사는게

   미래 희망을 키우는 유일한 길이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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