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동성당 게시판
해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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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거 리
박 노 해
그 해 가을이 다습게 익어가도 우리집 감나무는 허전했다. 이웃집엔 발갛게 익은 감들이 가지가 휘어질 듯 탐스러운데
학교에서 돌아온 허기진 나는 밭일하는 어머님을 찾아가 징징거렸다. 왜 우리 감나무만 감이 안 열린당가? 응 해거리 하는 중이란다. 감나무도 산 목숨이어서 작년에 뿌리가 힘을 너무 많이 써부러서 올해는 꽃도 열매도 피우지 않고 사방 뿌리에 힘을 키우는 중이란다. 해거리할 땐 위를 쳐다보지 말고 발 아래를 지켜봐야 하는 법이란다.
그 해 가을이 다 가도록 나는 위를 쳐다보며 더는 징징대지 않았다. 땅속의 뿌리가 들으라고 나무 밑에 엎드려서 나무야 심내라 나무야 심내라 땅심아 들어라 땅심아 들어라 배고픈 만큼 소리치곤 했다.
어머님은 가을걷이를 마치신 후 감나무 주위를 파고 퇴비를 묻어주며 성호를 그으셨다.
꽃과 열매를 보려거든 먼저 허리 굽혀 땅심과 뿌리를 보살펴야 하는 거라며
정직하게 해거리를 잘 사는게 미래 희망을 키우는 유일한 길이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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