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창동성당 게시판

1월20일 성 세바스띠아노 순교자 축일♬Angel-Ky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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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정 [wjyou57] 쪽지 캡슐

2003-01-20 ㅣ No.901

                St Sebastian Intercessor 1464-65.GOZZOLI

 

 

St Sebastian -GRECO, El

c.1580, Oil on canvas,192x148cm Sacristy of the Cathedral,Palencian

Spanish painter (b. 1541, Candia, d. 1614, Toledo)

 

축일 : 1월 20일

성 세바스띠아노

St.Sebastian 288년경 순교자

 

로마 제국의 3백년 박해시대에 가장 잔인하고 가혹하게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학대한 것은 디오클레시아노 황제 시대로,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과감하게 신앙을 선언하며 깨끗이 생명을 바친 순교자들이 상당한 수에 달했는데, 성 세바스티아노도 그러한 사람 중의 하나였다.

 

골 지방의 나르본느 태생인 성 세바스챤은 283년경에 로마에서 로마 군인이 되었고, 마르첼리아노와 마르쿠스를 격려하여, 죽음으로써 신앙을 지키도록 격려했던 열렬한 크리스챤이었다.

 

그는 수많은 개종자를 얻었는데, 그들 중에는 재판장인 니코스트라투스가 있었고, 그의 아내 조에도 포함되어 있다. 특히 조에는 벙어리였으나, 그의 기도로 완쾌되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간수 클라우디우스, 로마의 집정관 크로마시누스와 그의 아들 띠부르시우스등이다

 

그의 아버지는 프랑스 인이었고, 어머니는 이탈리아 인으로서 프랑스의 나르본 시(市)에서 태어나 젊어서 세례를 받았다. 장성한 후 그는 학대를 받고 있는 형제, 자매들에게 조금이라도 편의를 주려는 생각에서 일부러 군대에 입대해 잠시 로마 시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용감성이 뛰어나고 가끔 혁혁한 공훈을 세웠기 때문에, 나중에는 황제의 마음에 들게 되어 명예의 직분인 근위병(近衛兵)의 한 사람으로 뽑히게 되었다.

 

그는 점차 황제의 총애를 받게 되어 이를 잘 이용하면 어떠한 출세도 마음대로 할 수 있었지만, 지상의 영화는 허무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황제에게 충성을 바치는 것과 하느님께 신심을 가지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가지 않았다.

 

여가가 있는 대로 박해로 신음하는 동료들을 방문해 힘이 닿는 데까지 그들을 위로하고, 원조하고, 그들과 의논 상대자가 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다행히 그는 근위병이라 법정에나 감옥에나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었기때문에 동료들을 보살펴 주기에는 지극히 좋았다. 체포된 신자들은 그의 모습을 멀리서 보기만 해도 많은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

 

특히 그가 가끔 성합 속에 감추어 가지고 들어가서 그들에게 나누어 준 예수의 성체는 얼마나 그들의 신앙을 견고케 하고, 순교하는 데 용기를 북돋아 주었는지 모른다. 또 그가 카타콤바의 집회 예식에 참석했을 때의 그의 태도는 신자들의 모범이 되었다고 한다.

 

박해는 날로 치열해졌다. 세바스티아노가 동료 신자들을 잘 보호해 주는 것도 결국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조금씩 신변의 위험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형제들에게 힘을 쓰는 것은 바로 하느님께 봉사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위험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그들을 도왔다.

 

마침내 세바스티아노가 황제의 명을 거슬리는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황제는 이것을 듣고 격북해 즉시 그를 불러 "다년 간의 총애를 나에게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금하는 교를 믿는다는 것은 동물보다도 못한 배은 망덕하는 불충이다"하고 몹시 욕을 퍼부은 다음 빨리 그 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라고 명령했다.

 

세바스티아노는 그때 주 예수 그리스도나 거룩한 신앙을 거절함이 없이 다만 자신은 결코 불충의 신하가 아니라는 것과, 국가에 배반하는 자가 아니란 것을 조용히 변명했지만, 그것으로 황제는 불노를 풀지 않고 결국 아프리카의 누비아 사람에게 명령해 그를 활로 쏘아 죽이라고 했다.

 

미리 각오를 하고 있던 세바스티아노는 순교야말로 원하고 바라던 바라 아주 태연한 모습이었다. 그 여유있는 태도에 사형을 명령한 황제까지도 "훌륭한 용사다.죽이기에는 애석한 군인이다"하고 탄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처형 준비가 된 후 세바스티아노는 누비아 인의 비오듯이 쏟아지는 화살에 생명을 잃었다.

 

병졸들은 그가 죽은 줄로 생각하고 잘 살피지도 않고 그곳을 떠났다. 그날 밤중에 이레네라는 독실한 여교우가 그의 유해를 묻으려고 가서 보니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상대라 그녀는 정성껏 그를 간호했고 그 결과 그는 소생해 신자들의 즐거움이 되었다.

 

그는 회복되었으나, 순교의 영광을 얻지 못한 것을 매우 섭섭히 여겼다. 그리고 황제에게 다시 한번 더 설명하면 그리스도교의 입장을 이해해 주리라 생각하고서, 어떤 날 황제가 태양신상(太陽神像)의 전면의 계단을 오르려고 할 때 갑자기 나타나서 신앙의 이유로 무죄한 백성을 학대하고 죽인 비리(非理)를 조리있게 설명했다.

 

황제는 죽은 것으로 생각했던 세바스티아노를 눈앞에서 보고, 한때는 유령이 아닌가 하고 대단히 놀랐으나, 그 다음 순간 분노를 참지 못하고, "한시 바삐 저 놈을 원형극장(圓形劇場)에 끌고 가서 몽둥이로 때려 죽여라!"하고 경비 선 병정들에게 호령해 그대로 형벌은 집행되었다.

 

이와 같이 세바스티아노는 이번에는 그렇게도 바라고 바라던 순교의 영광을 획득했다. 때는 288년이었고 방수로(放水路)에 버린 그 유해는 신자들에게 발견되어 카타콤바에 정중히 매장되었다.

 

그 후 로마 제국에 종교의 자유가 이루어지자 그의 무덤 위에 한 성전이 건립되었다. 이것이 지금도 로마 시에 남아있는 성 세바스티아노 성당의 시초이다.

 

그의 영광스러운 순교는 세계 각국에 전파되어, 그 기념으로 이루어진 성전이나 그림이 적지 않다. 그가 나무에 결박되어 화살을 맞고 있는 그림 등은 아마 그리스도교 신자이면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그는 군인, 운동 선수 그리고 궁술가의 수호성인이자 전염병의 수호자로 공경을 받고 있다.

 

St Sebastian Tended by St Irene-BASSETTI,Marcanton

 

 

The Madonna between St John the Baptist and St Sebastian 1493.Florence PERUGINO,Pietro

 ♬Angel-Ky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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