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덕동성당 게시판

오늘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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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순 [won3d] 쪽지 캡슐

2001-03-09 ㅣ No.3644

3월 9일   사순 제 1 주간 금요일

복  음 : 마태 5, 20-26

 

  용서와 화해란 말은 곧 관계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원래의 모습대로 놓은 것을 말합니다. 대부분의 많은 신자들이 용서하고, 화해할 것이 있다면 화해를 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너무도 달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네 삶 가운데서 그렇게 쉽사리 일어나지 않습니다. 마음을 먹기는 하되 시간이 지나면 또 꼬이기 시작하고 아픕니다. 그러다 보니 이 부분에 대해서 회피하고, 포기하고, 사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상처와 용서’라는 소책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용서라는 말 앞에서 종교적 콤플렉스를 느낀다. 용서라는 말만 들으면 왠지 움츠러들고 자신이 없어진다, 마치 자신이 위선자 같고, 하느님 앞에서 죄송스러움을 느낀다. 사순절이나 대림시기에 판공성사를 받은 많은 신자들은 다음과 같은 생각에 시달린다. <나는 정말로 용서하였는가? 그런데 왜 내 마음은 여전히 아프고 섭섭한 것일까?>

 

 

  여기에 용서에 대한 종교적인 오해가 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대부분의 우리는 내개 상처를 준 사람을 진정으로 용서하였다면 더 이상 그 사건, 그 사람으로 인해서 아파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용서에 대한 오해하는 것입니다. 곧 우리가 <행위로서 용서한다는 것>과 <느낌의 차원에서 용서를 한다는 것>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용서한다는 것은 종교적인 선택이고 결심이지만 곧 종교적인 행위이지만 내가 느낌으로 상대를 용서한다는 것은 그와는 별개로 시간이 걸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마음을 먹고 결심을 하는 것과 그것을 실제로 삶 속에서 느끼는 것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앙 안에서 아무리 용서한다고 해도 잘못한 사람을 만나면 여전히 얼굴은 굳어지고 아픈 상처에서는 피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치유가 되기 전 그 시간동안 일어나는 미움과 증오의 감정으로 괴로울 때, 우리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마음의 소리를 듣는 일이라고 합니다. 곧 <이 상처를 치유 받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신자들이 지내고 있는 이 사순시기, 어쩌면 정신 없이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포기하고, 밀쳐낸 것들을 다시 들여다보게 하는 시기가 아닌가 합니다. 이것은 불가능하다. 해도 안 된다고 생각한 것들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시기가 아닌가 합니다. 많은 것들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끄집어내십시오. 그리고 그 관계를 회복해야겠다는 결심을 새롭게 하십시오. 여전히 아픔은 지속될 지는 모르겠지만 그 결심이 곧 그 아픔을 치유하는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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