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기동성당 게시판

두번째 백수의 사랑이야기...21-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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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현 [imjoseph] 쪽지 캡슐

2000-04-29 ㅣ No.1773

 

†. 찬미예수

 

안녕하세요? 제기동 식구들...

 

이 이야기도 다음이면 마지막이네요..

 

마지막 이야기때 이글의 출처 및 작가를 소개시켜 드리죠.

 

전 요즘 이 작가가 쓴 글을 읽는 것을

 

낛으로 삼고 있답니다.

 

할일 진짜 없죠?  근데 재밌는걸 어떻게 합니까?

 

재밌게 읽으시고,

 

담에 갈쳐 드리는 홈페이지에서

 

다른 이야기들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21편

 

백수아가씨: 오늘은 날씨가 맑은게 일찍 눈이 뜨졌다. 엄마가 아침부터 부산하다.

"엄마. 어디가?"

"약수물 받으러 간다."

"또 큰 물통이네. 나도 따라 갈까?"

"같이 갈 사람 있어."

"누구? 혹시 현재.."

실수 할뻔 했다.

"응? 뭐?"

"아니 혹시 그때 착한학생이라고 했던 사람하고 같이 가냐구?"

"그래. 우리집앞으로 오기로 했어."

"나도 따라 가야지."

"야이 지지배야  넌 왜 따라나와?"

"엄마는? 여기 물 다 받으면 얼마나 무거운데... 그 사람이 이걸 어떻게 혼자서

들고오냐?"

"나하고 같이 들고 온다니까?"

"엄마가? 가슴에 손을 얹고 양심에 물어보세요. 어머니..."

"그래? 그럼 작은 물통도 들고가자."

앗! 녀석이 벌써 와 있었구나. 반갑네. 녀석이 내 행동들을 잘 파악했나보다. 모른체 하는걸 보면. 물 받는데 시간이 꽤 걸리는걸. 우리 어머니 또 시작하셨다. 아마 저분은 우리 엄마와 초면이겠지.

"아 그래요. 우리 남편은 ****기획실장인데 아임에프인데도 잘 다니고 있어요.

그쪽 남편은 힘드시겠다."

...

후 저녀석도 우리 엄마 분위기를 파악했나보다. 저기서 담배피고 있는걸 보면, 그래 우리엄마 저러실땐 피해버리는게 낫지. 근데 아침부터 담배를 피냐? 힘들겠다. 같이 들어주고 싶은데, 그러면 우리 엄마께서 집에가 ’너 그사람하고 선볼래? 아예 시집을 가라. 내가 사위를 얻어준 꼴이 됐구나. 흑흑’ 분명히 이런식으로 일주일은 놀릴게 틀림없다.

"엄마. 가서 같이 좀 들어줘."

결국 녀석 혼자서 우리집까지 내내 그 큰 물통을 들고 올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들고온 작은 물통을 들고 녀석이 힘빠진 모습으로 안개속으로 사라져 간다.

’나중에 봐.’

"잘들어봐 지지배야."

"엄마가 힘좀 더 써!"

이무거운걸. 그 거리를. 그것도 혼자서? 현재 그녀석이 놀라웠다.

 

자취생: 방에 들어오니 나도 모르게 픽 쓰러졌다. 아직도 그 물통을 들었던 팔의 경련증세는 계속 되고 있다. ’노력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다.’ 언젠가부터 내 책상위에 붙여진 글귀에 눈이 갔다. 저 말은 누가 했을까? 저말 하신분! 너무 힘이 듭니다. 그래도 오늘 그녀와 만남의 약속이 잡혔다. 오늘도 내 손을 잡아줄까? 근데 이상하게 나한테 친한척 한단 말이야? 남자한테 적극적인 여자인가? 오늘은 날씨가 따뜻하다. 목도리는 담에 하고 가자.

 

백수아가씨: 오늘은 날씨가 따뜻하다. 언제 저 장갑을 껴보나? 조금 가벼운 차림으로 만화방앞에서 녀석을 기다렸다. 후 저기오는 녀석이 나를 보고 씩 웃는다. 참 머쩍은듯한 웃음이다.

"안녕하세요?"

"예."

"팔안아프세요?"

"뭐 그것 들었다고 팔까지 아플까..."

"엄마랑 둘이서 들어도 꽤 무겁든데요."

"괜찮아요. 어느 학원에 등록할건데요?"

"학교 뒤쪽에 있는 학원이요."

"예... 참 요즘은 면허증제도가 바꼈다면서요?"

"면허증 딴지 오래됐나 보다."

"하하. 벌써 적성검사까지 받았습니다."

"운전잘하세요?"

"베스트 드라이버라고나 할까?"

"쿠. 참 사진 먼저 찾으러 가야돼요."

 

자취생: 그녀는 캐주얼차림이나 정장차림이 다 잘 어울리는구나! 요즘들어 잘 보이기 위해 거짓말을 너무 자주하는거 같다. 아직도 팔의 경련증세가 일어나고 있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이번에도 차끌고 나가 긁었습니다. 앞 범퍼밑에 잘 보시면 쫙 긁어났을 겁니다.

그녀의 증명사진이 참 예쁘게도 나왔다. 제법 많은데 한장쯤 나 줬으면 좋겠다. 요즘은 스티커사진도 잘 나오던데... 스티커 사진도 한번쯤 같이 찍고 싶다. 그녀가 나한테 자기 증명사진을 보여주며 묻는다.

"잘 나온거 같아요?"

"예."

"단지 ’예’ 뿐이에요?"

"예."

"아저씨 저런 사진은 찍을려면 얼마에요?"

갑자기 사진값은 왜 물어보냐? 내 공책 반정도크기의 사진속에 열살박이 소년과 소녀가 이사진관 안쪽에 보이는 의자라 생각되는 그곳에 앉아 미소지으며 나무 장식된 틀에 걸려있다. 남매인거 같았다. 그녀는 그 사진을 보며 값을 물어본 것이다.

"만원"

"생각보다 비싸네."

"두장은 만오천원"

"가요."

그녀는 그 많던 증명사진 하나 나한테 주지 않았다. 나한테 친하게 대할때를 생각하면 줄것도 같았는데... 방학을 했다고 자동차학원이 붐볐다. 등록을 했다. ’이종 오토매틱’ 오토매틱?

"오토매틱은 또 뭐에요?"

"쿠. 스틱은 자신이 없어서요."

"요즘은 스틱따로 오토매틱 따로 봐요?"

"몰랐어요?"

세상 참 좋아졌다. 오토매틱이면 한손으로 코후비면서도 운전하겠다.

"예"

"그쪽은 뭐에요?"

"일종보통."

"진짜? 한번 보여줘봐요?" 그녀가 보여달라는데 할 수 없지.

"어머 사진이 실물보다 훨씬 잘나왔다!"

"젊었을때라 그렇습니다."

"아. 92년도 사진이구나." 이상하다? 보통 내 면허증을 보면 대게의 경우가 ’고향이 촌놈이네요? 아니면 깡촌에서 땄네요? 진주가 어디에요?’ 이런 비슷한 질문을 하는데... 아, 자기네 부모님들이 진주에서 살았다고 했지. 그럼 더 물어봐야 되잖아? 나한테 관심이 별로 없나보다. 그런데 요즘들어 참 친한척하는데. 오늘일을 봐도 그렇다. 여기와서 내가 한게 뭐 있나? 혹시 접수하는걸 몰라서 나보고 같이 가자고 한줄 알았는데, 자기가 다 알아서 했잖아. 난 자판기커피한잔 뽑아 먹은거 밖에는 한 일이 없다. 학교를 돌아서 집으로 오는데 스티커 사진찍는 곳을 보았다. 년말이라서 그런지 참 북적된다. 그곳을 부러운 눈길로 한동안 쳐다봤다.

"사진 찍는거 좋아해요?"

"아니 별로."

"난 참 좋아하는데."

"이쁘니까..."

"같이 사진 찍어 볼래요?"

"..."

"싫어요?"

"저야 좋죠."

아 그녀와 내가 사진을? 나도 다이어리나 가방에 신나게 붙이고 다녀야 겠다. 에게 왜 그냥 가는거야.? 사진 찍자고 하고선 그냥 가면 어떡합니까? 그녀가 나를 데리고 간건 아까 그 사진관이었다.

"저 사진크기로 흑백하고 칼라하고 두장이면 얼마에요?"

"삼만오천원"

"흑백이 더 비싸요?"

"비쌈."

주인아저씨 말 참 간단간단하게 했다. 그런데 사진찍을때는 졸라 시키는게 많았다.

 

백수아가씨: 증명사진이 참 잘 나왔다. 여긴 동네사진관이지만 상당히 사진이 잘나온다. 아저씨가 기술이 좋은가보다. 남매인듯한 꼬마둘이가 참 다정하게 의자에 앉아 있다. 나도 저만할때가 있었나싶다. 괜히 저런사진하나 갖고 싶었다. 녀석의 면허증을 보았다. 주소에는 분명 경남진주라고 적혀있다. 후후 6년전 사진이다. 지금의 녀석보다 애띠어보이는 얼굴이 천진난만하다. 그리고 촌스러워도 보인다. 일부러 학교를 돌아 먼길로 왔다. 스티커사진 찍는 곳 앞에서 녀석이 한동안 멈추었다. 녀석이 사진이 찍고 싶은가보다. 하지만 스티커사진은 너무 정이 없어 보이고 또한 너무 쉽게 빛이 바래버린다. 그래서 난 스티커사진은 잘 찍지 않는다. 그래 그 사진관의 아까 그사진처럼 녀석과 나란히 앉아 동심으로 돌아가 볼까나? 너 분명히 나하고 같이 사진 찍고 싶다고 했지?

"어이 남자분! 좀 웃어봐요."

"아. 예..."

"조금 더 밝게 웃어봐요. 그리고 두분 머리를 서로 모아보세요."

"이렇게요?"

"여자분 고개를 너무 옆으로 숙였어요. 남자분 웃으라니까."

"아. 예..."

"여자분은 웃음을 조금만 자제해 주세요. 에이 남자분 웃으라니까.자 찍습니다.

하나 둘 셋."

찰칵...

괜히 웃음이 나온다. 겉옷을 벗은 녀석스웨터가 또 늘어나 있었다. 에그 좀 웃어라. 한해가 가는 년말 오후는 겨울같지 않고 따뜻했다. 닫힌 만화방을 지나칠때까지 녀석은 또 머쩍해 하고 있었다.

"제가 계산 하는건데..."

"괜찮아요. 학원도 따라 가줬는데..."

"그래도..."

"그럼 내일 현재씨가 사진 찾아다 주면 되잖아요."

"그럴까요?"

"제 연락처 알아요?"

"모르는데요."

"적어요. ******** 제 삐삐번호에요."

"예. "

"그쪽은 안가르쳐줘요?"

"아예.. ********"

"참 컴퓨터 워드작성 잘해요?."

"예. 집에 컴이 있어요."

"알아요."

"예?"

"저번에 자취방에서 컴있는걸 봤어요. 문틈사이로 보이던데요."

"예..."

"부탁좀 할려구요."

"뭔데요?"

"과외 할려고 그러는데, 광고지 좀 만들어 주었음 해서요."

"예..."

"내용은 안 물어봐요?"

"참 뭐라 적을까요?"

"그냥 다른 내용은 현재씨가 알아서 적구요, 중학생 국어, 영어 가르칠거든요. 제 경력엔 **여대 국문과 졸이라 적으면 돼요. 그리고 백일장다수입선이라 적어놓고 논술도 잘 가르친다고 하면 좋구요."

"예. 그럼 제가 다 만들고 사진찾아서 삐삐 칠께요."

"그래요. 그럼"

"잘가세요."

만화방은 언제쯤 열려나?

 

22편

 

자취생: 요즘 일들이 꼭 꿈같다. 헤 그녀하고 나란히 앉아서 사진을 찍었다. 밤에 심심해서 그녀 삐삐번호를 쳐보았다. 내 전화번호는 남기지 않았다. 단지 남들이 잘 하는 1004라고만 쳤다. 이제 그녀는 나의 천사이기 때문이다. ~때르릉.

"여보시오."

"왜 삐삐쳤어요?"

"예?"

"나에요."

"어떻게 제가 친줄..."

"제 삐삐가 일주일만에 처음 울렸거든요."

"에..."

"제 광고문 만들었어요?"

"아직..."

"지금 무슨 일 하고 있었나요?"

"에.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두가지를 같이요?"

"두가지 다 씻는 거니까. 다하고 나면 손하고 발도 좀 깨끗해져요."

"하하. (혜지야...)엄마 때문에 끊어야 겠네요."

"예. 안녕히"

"... 알았어. 지금 밀어주러 갈께... 딸깍."

뭘 밀어주러 가는 거지? 거의 다 굳어진 머리를 다람쥐 챗바퀴굴리듯 굴려 그녀 과외의 광고문구를 생각해 냈다. 그리고 워드 작성도 했다. ’ 여러분은 노를 저어십시오. 전 돛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노력하는자만이 얻을수 있다. 중학생 국어. 영어 완벽 지도. 백일장만 나갔다하면 장원먹는 실력으로 논술 문장력도 향상시켜드립니다. **여대

국문과 최혜지’ 좀 유치한가? 그래. 요즘은 유치해야 살아남는다. 황수관 박사의 호기심천국에 나오는 그놈. 유아복입고 나와서 졸라 설치는 놈. 엄청 꼴보기 싫게 유치한데 일단 튀니까 살아남잖아. 오늘 아침은 참 상쾌하다. 이제 올해도 이틀 남았구나. 야 너무 멋진 사진이다. 나와 그녀가 참 잘 어울린다.

"참 잘어울리죠?"

"남자가 너무 딸리는거 같다."

"아저씨!"

"그래 잘 어울린다. 아주 오래된 친구처럼." 그래야지. 흑백사진은 꼭 추억속에

묻어진 해맑은 영상같다.

"아저씨. 액자는 얼마에요."

"오천원."

"그럼 네개 주세요."

"두개만 사. 한장은 앨범에 넣어놔."

"그럼 두개주세요."

"만원." 진짜 간단하게 말하네 이 아저씨. 그래 한장은 앨범에 꽂아 두자.

 

백수아가씨: 더운물에 샤워는 온 몸을 가뿐하게 한다. 특히 오늘같이 가슴이 포근한 날은 더욱더. 시원하다.

"바톤 터치다."

"그래 이제 엄마가 해."

방안에 들어왔더니 삐삐가 와 있었다. ’1004?’ 푸 그녀석이구나. 내 주위에 이제는 아무도 저런 번호는 치지 않는다. 전화나 해볼까? 마침 엄마가 욕실에 들어갔으니.

"샤워하면서 등 미는 사람은 엄마뿐일거야."

"잘밀어. 등안미면 그게 씻는거냐."

"차라리 물받고 목욕을 해요."

"그러면 너무 힘이 들어서. 좀 힘껏 밀어."

 

날이 밝았다. 이제 이틀뒤면 저 해는 영문도 모르고 1999란 이름으로 바뀌겠지. 녀석이 언제쯤 삐삐를 칠까? 기다려 진다.

"안녕하세요. 저에요."

"아 예. 사진 찾았어요. 광고지도 뽑아 놓았구요."

"그래요? 에. 어디서 볼까요?"

"만화방앞에서 보는게..."

"그래요 그럼. 30분쯤 뒤에 보도록 하죠."

"예."

 

자취생: 옷다 입고 머리도 감았고. 사진은 저 종이가방에 광고지와 함께 들어있다. 30분동안 뭐하지?

"안녕하세요."

"안녕."

"사진 찾았왔어요. 보실래요?"

"그래요. 줘 봐요."

"여기."

"후. 잘나왔네요. 액자에 끼웠네요? 흑백하고 칼라랑 하나씩."

"예. 아저씨가 한장은 앨범에 넣어두라고 해서요."

"그럼 제가 칼라액자를 가질께요."

"그러세요. 그럼"

"이 흑백사진은 유치원 앨범에 끼워놓아야 겠다. 현재씨는 어디다가 끼워놓을거에요?"

"에... 그럼 뭐 저도 유치원 앨범에 끼워놓죠 뭐."

"...유치원 어디 나왔어요?"

"에... 그냥 고향집 가까이 있는 유치원이에요."

"액자는 어디 놓아둘건데요?"

"당연히 눈에 가장 잘 띠는곳에요."

"후후. 그러세요."

우쒸 잘 보지도 않는 유치원 앨범에다가 사진을 끼워두면 어떻합니까? 당신의 기억이 많이 담겨진 사진첩에다 끼워두어야지요.

"여기 광고문..."

"후후. 이글 현재가 생각해 낸거에요?"

"예. 좀 유치하나요?"

"쿠, 조금. 그래도 좋네요."

"예. 여기 제법 많이 뽑아 왔어요."

"이거 붙이러 같이 가줄거죠?"

"예."

그럼 당연히 같이 가 줘야지. 그래서 여기 풀하고 유리테이프도 사왔는데.

"저 집앞에 하나 붙여요."

"저기 누구 아는 사람있어요?"

"내 날라차기 배우던 꼬마가 저 집 사는데 누나가 중학생이에요."

"푸. 그래요 그럼."

"저집에도 하나 붙여요."

"저기도?"

"저집에도 중학생 있어요. 옛날에 하숙하던 집이거든요."

"이집도."

"여기는 누군데요?"

"예전에 수학가르친놈이 있는데 그놈 동생이 이제 중삼이 될거에요."

"쿠. 아는 사람이 참 많네요."

"그냥 학교근처서 떠돌다 보니까."

그녀와 참 즐겁게 돌아다녔다. 집에 와서 액자를 내 책상위에 세워 놓았다. 제일 눈에 잘띠는 장소다.  인버터 스탠드 불빛에 작은 스크린에서 흑백영화가 비추어지고 있는거 같다. 칼라사진은 내 앨범 제일 앞에다 붙여놓았다. 붙어 있던 사진들 다 떼어버리고 말이다.

 

백수아가씨: 30분 동안 조금 꾸몄다. 사진이 과연 어떻게 나왔을까? 흑백사진속의 그의 하얗게 드러난 목이 유난히 길게 보인다. 흑백사진속의 두 남녀는 오래된 연인같이도 보인다. 어색하게 입만 웃고 있지만 녀석의 표정이 정겹다. 이녀석 액자사진을 자주 보겠지. 이 흑백사진을 자주 본다면 유치원 그때를 기억해 낼 수도 있을까? 내가 칼라액자를 가져야 겠다. 그렇게 힌트를 주었건만 나 어디 유치원 나왔는지 묻지를 않는다. 오늘 그냥 말해 버릴까도 생각했는데... 조금 더 친해지고 나서 말해야겠다.

내 광고문구는 좀 유치했지만 맞는 말 같다. 내가 잘 가르치면 뭐하냐. 자기가 열심히 해야지. 그리고 나 장원먹은적은 한번도 없는데... 상장 내놔 봐라 그러면 어떻하지?

만화방 앞부터 시작해서 광고문을 여기저기 눈에 띠는 곳에다 붙였다. 녀석이 중학생 있는집을 상당히 많이 알고 있었다. 도움이 될 것 같다. 액자는 내 책상 책꽂이 안쪽에다 넣어두었다. 그리고 책으로 가려놓았지. 아무래도 엄마 때문에 내 놓지는 못하겠다. 흑백사진은 유치원 앨범 그곳에 끼워 두었다. 흑백으로 보니까. 아까 칼라의 그것보다는 훨씬 닮아 보인다. 입만 웃는 어색한 표정이 너무 닮아 보였다. 그리고 긴것 같은 목선도...

 

자취생: 마지막 면접이 일월 오일로 잡혔다. 책을 좀 봐야겠다.

 

백수 아가씨: 일월 사일부터 바빠지겠다. 오늘 바로 연락이 왔다. 남자중학생 하나랑 여자 중학생 하나를 가르치게 됐다. 둘다 이제 중삼이 된다고 한다. 오전에는 자동차 학원가고, 월, 수, 금 오후는 얘들을 가르쳐야 한다.

 

(저 남자 중학생이랑 여자 중학생을 주인공으로 해 내 중학교때 짝사랑하던 여학생을 생각하며 어느 중학생의 풋사랑이란 제목으로 담에(한달쯤뒤나 될까? 궁지기신도 쓰야 하는데.. 공부는 언제 하지? 우리엄마 이 사실 알면 나 맞아 죽는데..) 작은 소설하나 쓰지요.)

 

23편

 

자취생: 십. 구...사. 삼. 이. 일. 야호. 새해가 밝았다. 새해에는 좀더 밝은 세상이 되자. 티비에는 종각앞모습이 방송되어지고 있다. 사람 엄청 많네. 저사람들 집에 갈때는 뭐 타고 가지?

’새끼들 다 똑같구만.’ 새해가 된 기분으로 동네나 한바퀴 돌려고 나왔더니만, 자정이 훨씬 지났는데도 꼬마들과 부근 자취생들이 어울려 나와 동네분위기가 꼭 초저녁같다.

그녀 집앞이나 한번 가볼까? 이 동네도 사람들이 많이 나와 있네. 앗. 그녀도 나와 있다. 도망가야겠다. 그녀 어머님도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저녁에 그때 받은 물통의 물을 다 먹었다. 잘못하면 새해 아침부터 초죽음이 될지도 모른다. 후후 새햅니다. 두분다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백수아가씨: 잘려고 했는데, 우리 엄마 또 시작이시다. 아빠는 잠 드셨다가 깨셨나보다. ’땡.

"아항. 이제 나의 힘들었던 40대는 갔구나. 할머니 소리 듣는 50살이 되버렸다. 서러운 내 인생아."

"헴 헴. 내가 있잖소. 저기 혜지도 있고, 혜철이도 한달만 있으면 제대요."

아무래도 엄마의 작전 같았다. 가엾은 우리 아빠 눈비비시며 차열쇠 찾으러 가셨다. 아버지가 차를 차고에서 빼는 동안 집앞에서 거의 보름달이 된 달을 보았다. 올해는 다시 웃을수 있는 한해가 되기를... 기어이 종각까지 아빠는 엄마를 태우시고 야간운전을 하시고 말았다. 잠이 쏟아지는 나까지 태우고 말이다. 그나저나 사람들 엄청 많다.

 

자취생: 새해 아침부터 굶을 수는 없었기에 즉석 떡꾹을 끓여 먹었다. 그런데로 먹을 만 하네. 하나 더 끓여 먹었다. 좀 무리를 했지만 배가 부르니 좋다. 새해니까 집에다 전화를 해야지.  어머니께서 객지에서 고생한다며 면접끝나면 내려오라고 하셨다. 집에 갔다온지 한달도 안됐는데... 어머니는 내가 아직도 어린애처럼 보이시나 보다.

혜지씨 한테도 음성으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남겨 주어야지.

 

백수아가씨: 오전에 삐삐소리 때문에 잠에서 깼다. 10시가 다되었다.

"후 녀석이네. 그래 너도 복 많이 받아라."

우리 부모님 새해가 떴는지. 안떴는지 궁금하지도 않으실까? 아직 한 밤중이다. 하기야 새벽에 종각앞에서 그렇게 날을 샜는데... 아침은 뭘 먹지? 남들은 새해가 되면 떡국을 끓여 먹기도 하는데...

"여보시오."

"저에요."

"아. 예. 새해 복 많이 받아요."

"예. 현재도 새해 복많이 받아요."

"그럼요."

"지금 뭐하세요?"

"책 좀 보고 있어요."

"혹시 아침 먹었나요?"

"예? 지금 시간이..."

"혹시 안먹었다면 새해고 해서..."

"새해고 해서요?"

"내가 잘아는 만두집이 있는데 그 집이 떡국도 참 잘하거든요."

"예. 새해니까 떡국 먹어야죠."

"내가 사드릴테니 같이 안갈래요?"

"지금요?"

"아니요. 한 삼십분쯤 뒤에요."

"어디서요?"

"우리는 만화방앞 아닌가요?"

"그래요."

엄마 아빠. 계속 곤히 주무세요. 소녀 아침먹고 오겠사옵니다.

 

자취생: 지금이나 삼십분 뒤나, 그게 그거지 뭐. 괜히 두개나 끓여 먹었다. 배부른데... 그래도 그녀가 사준다는데, 보던 책을 덮고 일어섰다.

"잘 아는 만두집이 여기서 멀어요?"

"아니에요. 조금만 걸어면 돼요."

혜지씨가 말한 만두집, 떡국 진짜 양많다. 이걸 어떻게 다 먹냐?

"양 많죠?"

"좀 되네요."

"저 이거 다 못먹거든요. 제꺼 조금 더 드릴께요."

"아..아니."

"자취하면 많이 못먹잖아요. 자.."

새해아침 첫날부터 배터지게 떡국을 먹었다. 아무래도 올해는 굶어죽는 운은 없나보다. ’으 천천히 가요. 혜지씨’

 

백수아가씨: 녀석의 떡국 먹는 모습이 어색하다. 맛있는데... 그래 그렇게 다 먹는거야. 내가 팔짱을 꼈을땐 참 빨리도 걷더니만, 오늘은 내 걸음에도 못맞추네. 어디 아픈가?

집에 돌아오니 부모님방은 여전히 한밤중이었다. 점심때가 다 되었는데, 딸이야 밥을 굶든 말든, 우리엄마 잘도 주무신다.

 

자취생: 드디어 오늘이 면접날이다. 그동안 이 면접에 대비해서 책도 보고 신문의 거의 안보던 사설도 읽어었다. 혜지씨도 안보고 말이다. 잘되야 될텐데... 면접 그것도 시험이라고 날씨가 꽤 춥다. 양복에도 털목도리가 참 잘어울리는구나.

 

백수아가씨: 후후. 오늘 아침도 자동차 학원을 가야지? 어제부터 과외도 시작했다. 여학생네 집에서 했는데, 남학생녀석이 꽤 쑥스러워 했다. 그래 그녀석 나이때가 소녀방이 어떻게 생겼나 가장 궁금할때지. 둘이 친하게 지낼수 있도록 내가 다리도 놓아주어야겠다. 아침날씨가 꽤 춥다. 녀석이 준 장갑을 끼고 나가야겠다. 참 부드러운 가죽느낌이다. 녀석 돈좀 썼겠는걸.

호. 아침에 녀석을 보았다. 며칠 연락도 안하더니만 어딜 가는거지? 양복을 입었네. 쿠. 아무리 내가 짜준 목도리지만 양복에다 털목도리를 하고 가다니...

"안녕?"

"예. 안녕하세요."

"어디 가요?"

"예?..아 회사 면접날이라.. 혜지씨는 어디가는데요?"

"자동차학원이요. 그때 같이 갔었잖아요. 어제부터 나갔어요."

"예. 할만하던가요?"

"그런데로."

쿠 목도리를 할려면 제대로나 하지.

"현재씨 이리와봐요."

 

자취생: 목도리의 따뜻한 느낌으로 밖을 나왔다. 혜지씨를 그녀의 골목의 끝자락에서 만났다. 그녀가 내가 준 장갑을 끼고 있다. 하하 잘 어울린다.

"현재씨 이리와봐요."

"예? 왜요."

그녀가 장갑을 벗어 자기 호주머니에 넣더니 내 목도리를 잡았다. 뽀뽀라도 해줄려나? 남들이 보면 어쩔려구?

"목도리는 이렇게 매는게 아니에요."

그녀가 목도리를 풀더니 다시 매어준다.

"훨씬 낫죠?"

"예... "

"그럼 면접 잘보고 나중에 봐요."

"예. 잘가요."

그녀가 다시 장갑을 끼고선 학원쪽으로 걸어간다. 헤... 너무 사랑스럽다.

면접은 오전 오후로 나눠 오전은 개인면접이고 오후는 그룹토의였다. 면접실 안에는 50대의 중후한 아저씨 한분과 30대중반의 아저씨가 앉아 있었다. 50대 아저씨는 낯이 익다.

"**번 이현재입니다."

"그래 목도리는 풀게."

"예."

"자네 이력서를 보기 전에 몇 가지 질문을 하겠네."

"예."

"요즘 정부에서는 21세기 지식산업에 중점적으로 투자를 하는 경향이 있네. 그래서 지금 수출산업의 기반이 되는 철강산업이나 중화학분야는 등한시 되는 문제점이 야기되고 있네. 이에 대해서 자네의 의견은?"

"예. 21세기에는 소규묘 자본으로 많은 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는 지식산업이 각광을 받을 것은 틀림없습니다. 당연히 투자를 해야겠지요. 하지만 탄탄한 기초위에서 아름다운 조형물이 빛을 바라듯 산업의 기초가 되는 철강 산업같은 것을 등한시하는 문제는 잘못된거라 생각합니다. 정부나 기업에서 지금 돈이 안된다고 소홀히 한다면 지식산업 또한 발전시킬 수 없을 겁니다. 그리고 고용창출면에서도 꼭 기초산업에 투자를 해야된다고 봅니다."

"그런가? 그럼 요즘의 구조조정문제를 현재 사회로 나오는 대학생들의 관점에서 말해본다면?"

"현재 구조조정은 서구의 일방적인 가치관을 동양의 문화적 이해 없이 강요하는데 대해 문제점이 야기되고 있다고 봅니다. 물론 우리나라 대기업중심의 경제구조는 조정을 해야합니다만 그보다는 Social development을 통한 사회 전반적인 문제를 먼저 조정해야 된다고 생각됩니다. 대비책이 없었던 지금 사회준비생들은 너무나 사회진출이 좌절되어 있습니다. 대학자체의 구조조정이 먼저 이루어진상태서 준비가 있었더라면 요즘 같이 우리세대가 lost generation.이 되지는

않았을겁니다. 사회에서 필요할때 많은 과를 만들어 놓고 지금 필요없다고 우리를 실업자로 내몰리게 하는 것은 기성세대들에 많은 잘못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너무나 희망이 없어진 상태서 사회서 도태되지나 않을까 염려됩니다."

"그래. 양대리 이학생 이력서 좀 줘봐요."

"여깄습니다."

"어라? 진주사람이네."

"예."

"나도 진주사람인데, 고등학교는 어디 나왔나?"

"진주 고등학교 나왔는데요."

"이런, 여기서 고교 후배를 만나네."

"예? 선배님이시군요. 저희 아버지도 진주 고등학교 나오셨읍니다"

"그래? 몇회신가?"

"33회이십니다. "

"아. 내 선배님이시구나. 난 35회네."

"예..전 62횝니다."

"최실장님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자네는 가만 있어봐. 그래 부친은 지금 어디 사시는가."

"진주 상대동에 사십니다."

"야. 나도 한때 그 동네서 살았네. 동문에다 동향에다 가까운 동네서 산사람이라니 반갑네. 그리고 보니 자네 낯이 익구만."

"예 저도 첨에 그렇게 느꼈습니다."

"혹시 자네 어디서 나보지 않았나?"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요."

"그 목도리도 낯이 익구만."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어디서 봤지? 학연, 지연은 반드시 뿌리뽑혀져야 한다. 그래도 느낌이 좋다. 그래 오늘 혜지씨가 목도리를 매만져줄때부터 기분이 좋더니만... 요즘 들어서는 대학원을 다니면서 계속 이동네 사는것도 나쁘지 않다고 봐. 그래도 합격하면 좋지.

 

계속(좀 유치해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이거 써먹을려고 신문사설 진짜로

봤읍니다. 뉴스위크도 봤읍니다. 흑흑. 그리고 최실장 써먹을려고 실장이라는

단어를 앞에 두번이나 언급했었읍니다.)

 

24편

 

백수아가씨: 이남자 진짜 틱틱거리네. 넌 처음부터 잘했냐?

"아가씨. 액셀레이터하고 브레이크밖에 없는데 그게 헷갈려요?"

그래 헷갈린다.

"얘. 넌 자음이 앞에 붙었는지 중간에 붙었는지 그것도 구분못하니? 어떻게 두음법칙하고 자음동화가 헷갈리니?"

남자애는 잘아는데, 여자애는 좀 문제가 있다.  그래도 기가 죽어 있는건 남학생녀석이니. 남자녀석이 이 여자애를 좋아하나? 서먹서먹하네.

"니네들 만난것도 인연인데. 요번 주말에 영화나 보여줄까?"

여자애는 무척이나

좋아하는데, 남자녀석은 또 반응이 시큰둥하다.  수줍어하는 게 현재녀석 만화방에서 처음 볼때 모습하고 흡사하다. 여자애는 집에 대학생오빠들이 하숙을 해서 그런지 남자애한테 별로 신경을 안써는데, 남자애는 저애가 상당히 신경이 쓰이나보다. 그러고보니 이집이 현재가 하숙했었다는 그집이네. 녀석 어제 면접은 잘 보았을래나? 어제 전화도 못해주고 미안한데. 얘들과 함께 영화나 보여줘야지.

 

자취생: 내 자취방안이 깨끗하다. 책상위의 사진 때문에 방청소를 깨끗이 했다.

어 전화가 오네.

"여보시오."

"예 접니다. 혜지."

"아 예. 안녕하세요."

"어제 면접은 잘 보셨나요? "

"그런데로."

"어느 회산데요?"

"그냥 대기업은 아니고 조금 큰 중소기업이에요."

"잘되길 빌어드릴께."

"과외는 시작했어요?"

"그럼요. 붙인 다음날 바로 연락이 왔던걸요. 월. 수. 금. 저녁먹고나서 하지요."

"잘됐네요."

"참 이번 주말 시간 있으세요."

"아. 예..."

집에 내려갈려고 했었는데...

"그럼 영화보러가요."

"예. 무슨영화 좋아하시는데요?"

"근데 우리둘만은 아니에요. 같이 갈 사람이 둘이 더 있어요."

"아 그래요. 누구 혜지씨 친구분들?"

"아니에요. 어쩌면 현재도 아는사람."

"무슨영환데요. 제가 예약해 놓을께요."

"아니에요. 내가 예약해놓을께요. ’아름다운 시절’ 아직 못보셨죠?"

"예."

"그럼 예약하고 다시 연락드릴께요."

"예."

누구하고 같이 간다는거야. 집에는 다음주 월요일이나 돼야 내려가야겠군. 혜지씨 주위에 내가 아는 사람이라곤 만화방 아저씨뿐이었는데, 돌아왔나? 두명이라고 했으니 혹시 혜지씨 부모님은 아닐까? 혹시 날 부모님한테 소개시킬려고?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되었는데... 하하하.

 

백수아가씨: 오늘도 얘들을 열심히 가르친것 같다. 뿌듯하다.

"니네들 내일 영화보러 갈 수 있지? 내가 표를 끊어 났거든."

"그럼요. 선생님. "

"너, 선생님이라 부르지 말고 그냥 언니라 그러라 했잖아. 내가 무슨 선생님이냐? 철민이 너도 누나라고 불러."

"예."

"내일 한시에 현주네 집앞에서 보자."

"우리집 앞에서요? 그럴께요."

녀석이 잘 살고 있는지 모르겠네. 녀석은 내가 연락안하면 도통 연락을 할 줄

모르니... 내일 영화표 때문에 전화해봐야 겠다.

 

자취생: 내 책상은 수면제고 내 의자는 마법이 걸렸나봐. 앉기만 하면 30분을 못버티냐. 누워서 책봐도 한시간은 가는데... 이마가 아프다. 전화가 안왔더라면 또 새벽에 추워서 깼겠지.

"여보시오."

"접니다. 최."

"에이. 영애누나 따라하지 마요."

"그럼 저에요 혜지."

"예. 과외 끝났나보네요."

"예. 현재는 뭐하고 있었나요."

"공부." 이정도 거짓말은 괜찮지 뭐.

"정말? 내일 영화표 예매했거든요."

"예."

"내일 2시 40분 단*사에요. "

"그럼 1시 반쯤에 만화방앞에서 보면 되겠다."

"안돼요. 같이 갈 사람이 있어서."

"그럼?"

"현재씨는 제가 예매표를 줄테니까. 먼저가서 좌석표로 바꿔놔요."

"그러죠 뭐."

"여기 공중전화거든요. 지금 나오실래요. 만화방옆에 있는 수퍼 알죠?"

"예."

다행히 누워자지 않아서 머리모양이 괜찮겠지?

 

백수아가씨: "아줌마. 따뜻한 캔커피 있죠. 두개만 주세요."

날씨가 참 춥다. 만화방은 여전히 불빛이 세어 나오지 않고 있다. 이십일도 더

지났는데, 저기서 녀석이 목도리를 목에다 미이라처럼 감고 양말도 신지 않은 발을 까만구두에 의지한채 바람을 가르며 달려오고 있다. 숨가플텐데...

"안녕하세요. 춥죠?"

그의 입에선 나보다 더 많고 짙은 입김이 연신 내뿜어지고 있다.

"공부하긴 했나봐요?"

"예?"

"이마가 아직도 참 빨갛게 물들어 있네요."

"하하. 표나요?"

"예 나 엎드려 잤습니다.라고 크게 써놓았네요. 이거 드세요."

"에... 앗 뜨거!"

"조심하지..."

"내일 누구하고 같이 가는데요. "

"내일 보면 되잖아요. 여기 예매권."

"예. 춥죠? 들어가세요."

"예. 그럼 내일봐요."

 

자취생: 내가 이런 실수를 하다니. 가문의 수치다. 방에 들어와 거울을 보니 이마 정 중앙이 뭐에 맞은거처럼 벌겋다. 내가 엎드려 잔걸 눈치채다니 전에부터 느꼈지만 똑똑한 여자다.

 

백수아가씨: "안녕. 철민이 넌 별로 가고 싶지 않던 표정이더니, 쫙 빼입고 어머

무스까지 발랐구나?"

내 짐작이 맞는거 같다. 이 녀석은 이 집 딸에게 상당히 관심을 가지고 있다.

"선생님 아니 언니 안녕?"

현주를 보더니 철민이 녀석이 상당히 머쩍한 표정이다. 자기한테는 인사 안해주니까 말이다.

 

자취생: 어이 추워라. 예매권도 바꿔 놓았고, 언제쯤 그녀가 나타날까? 두시가 이제 막 지났다.

"아저씨. 저 불좀 빌립시다."

"아 예. 여기" 이녀석 재수없게 아저씨라네. 대가리 피도 안마른 녀석이 벌써부터 담배질이라니. 불꺼낸 김에 나도 한대 펴야겠다. 뽀꼼뽀꼼..

앗 혜지씨가 저기 온다. 근데 옆에 있는 두 꼬마들은 뭐야? 둘다 낯이 익다.

"여깁니다. 혜지씨."

"응. 안녕하세요. 춥죠?"

"얘들은?"

"아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

"야. 현주야. 나다. 철민이 녀석도 많이 컸구나. 형은 잘있냐?"

"어머. 305호 아저씨네! 야 반갑다."

"예. 형은 올해 대학 들어갈 거에요."

"호호. 다 아는 사람들인가봐?"

"그때 광고문 붙일때 제가 말했었잖아요."

그나저나 이놈들 제법 컸네. 잘봐더라. 니네 선생님이 내 히히 애인이다.

"선생님 아니 언니 애인이 이 아저씨에요?"

"응...? 응..."

그녀가 애인이냐는 질문에 부정적인 답을 하지 않았다. 신난다. 그건 그렇고 혜지씨는 언닌데, 난 아저씨냐?

"언니가 너무 아깝다."

이런! 내가 너한테 그렇게 잘해주었건만... 극장안으로 들어갔다.  좌석 위치를 확인했다.

"이런 개같은 경우가!"

옆에서 사람들이 좀 쳐다봤다. 두자리씩 두자리씩 앞뒤로 대각선이다. 서로 눈치를 살폈다. 난 당연히 혜지씨하고 나란히 앉아서 보면 좋겠지만 . 저 미성년자 남녀 둘이를 같이 앉혀 놓을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남자끼리 앉기도 싫었다. 최종 결론을 본게 나하고 이 현주라는 애하고 앞에서 보고, 혜지씨하고 철민이는 뒷좌석에서 보기로 했다. 상영관에 들어가기 앞서 철민이 녀석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좀 아프게... 배아프고 부러워서... ’너 딴짓 하면 죽어!’  녀석도 못마땅한 눈치다. 쪼끄만한게 눈을 크게 떠고 나와 현주를 번갈아보며 혜지씨 손에 이끌려 갔다. 손좀 놓고 가지... 야. 팔장 빼. 하여튼 요즘 애들은 우리때와 다르단 말씀이야. 내가 니 애인이냐? 현주가 내 옆에서 참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듯 웃고 있었다.

 

25편

 

백수아가씨: 현재녀석 우리집 근방의 많은 동네서 자기존재를 과시했나보다. 저녀석에 대한 정보를 이 둘을 통하여 얻을 수도 있겠다. 풋 녀석이 내 애인이라구? 그래 부정하고 싶진 않지만 아직은 아니야. 저녀석은 어릴적 내 기억을 아직도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데 뭘. 기껏 예매표 끊어서 주었더니 좌석표 받아 놓은게 이 모양이냐? 후후. 내가 팔장꼇을땐 그렇게 빼더니 현주가 팔장끼니 가만히 있네. 그래 니네 둘끼리 봐라.

"가자. 철민아."

너도 떠니? 손잡았다고...

현재녀석 돈좀 썼다. 큼지막한 슈프림피자에 샐러드에 음료수에... 철민이는 무엇에 골이 났을까? 오랜지 주스를 하나 더 시키더니 냉큼 들이킨다. 내 짐작이 맞대니까! 현주가 아까부터 현재한테 친한척이다.

 

자취생: 너 팔 안뺄래? 얘가 아까부터 나한테 친하척이지? 이제 중삼되는게 벌써 이성에 관심을 가지다니... 내가 너만 할때는 말이다. 음. 나도 관심을 가졌었구나. 미안하다. 내가 하숙할 때 얘한테 좀 잘해준건 사실이지만, 아저씨라고 수줍어하고 그랬는데... 아무래도 이것들이 지금 사랑싸움한다고 날 이용해 먹는거 같단 말씀이야.

흑흑 이 나이 먹도록 들러리나 서야 하다니. 혜지씨 자리 바꿉시다.. 차라리 내가 철민이랑 있는게 낫을거 같아요. 아니면 얘둘을 같이 앉히던지.

"형! 나 오렌지 주스하나 더 먹어도 돼죠?"

잠깐만 있어봐. 4000원? 야 여기 콜라 남았잖아! 나 혜지씨한테 선물한 것 때문에 이번달 재정상태가 엉망이란 말이다. 안돼. 결국 시켜버렸다.

오늘 혜지씨 만난것에 기뻤지만 토끼같은 녀석들 둘 때문에 내돈 사만 오천원이 날라갔다. 혜지씨 때문에 집에 내려가기 싫었지만 월요일은 집에 내려가야겠다. 이제 차비빼면 몇천원도 안남았다. 띠띠뚜띠띠

"안녕하세요. 혜지네 삐~입니다. 띠"

"접니다. 이.  집에는 잘들어 갔지요? 좋은밤 좋은꿈 꾸십시오. 전화기에 대고

말할려니까. 쪽팔립니다. "

 

백수아가씨: 일요일 아침이 되어서야, 녀석의 삐삐음성에 대한 전화를 할 수 있었다. 내방에도 전화기를 설치하던지 해야지. 우리엄마 무슨 할말이 그렇게 많으실까? 그러면서 전화비 많이 나오면 꼭 나를 의심해요.

"여보시오"

"저에요. 최."

"아 예. 안녕하세요."

"쪽팔렸어요?"

"뭐가요?  아... 그냥 할말이 안떠오르길래..."

"오늘은 뭐 할건데요?"

"에. 내일 집에 내려갈 준비해야죠."

"예? 집에 내려가요? 저번에 갔었잖아요."

"새해가 됐으니까..."

"언제 올라올건데요?"

"일주일은 걸리겠죠."

"그렇게 오래 있을거에요."

"예?"

"그렇게 오래 있을거냐구요."

"그럼 4일만 있다가 올라올께요."

 

자취생: 하하. 그녀가 내가 좋은가보다. 4일만 있다가 오랜다. 그래도 친구녀석들한테 이 사진을 일일이 자랑할 려면 4일정도는 걸릴테고 부모님하고 또 이틀정도는 있어주어야하면 육일인데. 복사해서 전단지 뿌릴까?

"여보시오."

"또 접니다. 최"

"안녕하세요."

"호호 아까 안녕했잖아요."

"그럼 무슨일?" 제발 약수통 얘기만 아니기를...

"점심 아직 안드셨죠?"

"예. 아직"

"우리 라면 끓여 먹을래요?"

"그래요 그럼."

"그럼 내가 라면 사서 그리로 갈께요."

"그래요 그럼. 예?!"

"왜요?"

"제방에 온단 말입니까?"

"싫어요?"

"아니 그건 아니지만..."

"그럼 지금 갈께요."

"여보세요? "

"예?"

"저에게 시간을 주십시오. 한시간 정도만"

"왜요?"

"치워야 할것 아닙니까?"

"호호. 알았어요. 치."

"그럼. 한시간뒤에.."

"그래요. 한시간뒤에 갈께요."

"여보세요? 전 신라면입니다."

우쒸. *됐다. 일단 문을 다열고, 저 옷들 박스에다 밟아서 넣고, 책상위에는 어려운 책을 펴놓자. 쓸구 닦구. 힘들군. 설거지는 제때 할걸.

 

백수아가씨: 헤. 내가 좀 밝혔나? 뭐 어때서. 혜철이 방은 내가 청소도 하고 그러는데... 남자방이라고 다를건 뭐 있냐?

"야 방깨끗하다."

"헤헤 혜지씨 덕분이죠."

"컴퓨터가 멋지네요. 하얀게...우리집 혜철이꺼도 하얀건데..컴퓨터가 참 크네요.."

"하하. 그건 모니턴데요. 참 동생분, 내 후배더군요."

"예. 책은 온통 모르는 책뿐이다."

"전공책이 많다 보니까..."

"소설같은건 안봐요?"

"최근에 본건, 그 뭐시더라? 제 이름하고 비슷한 놈이 쓴 궁지기신을 봤지요."

"아! 이현철이 쓴거 말이군요. 재미없죠?"

"예. 그사람 책내고 망해가지고 도망다닌다고 하더군요."

"쿠. 여기 라면사온거."

 

자취생: 나야 라면끓이는건 수준에 올라있지.

"맛있어요?"

"나도 빨리 배워야 할텐데..."

"담에 기회되면 아주 실습을 하죠."

"그래. 그래야 겠다."

내방에서 그녀가 라면먹는 이런일이 존재하다니... 어머니 장가가고 싶습니다. 혜지씨 당신은 이방에 최초로 들어온 여잡니다. 헤헤.

 

백수아가씨: 진짜 라면은 잘 끓인단 말씀이야. 배부르고 등따시니 잠이온다. 여기서 한잠 자고 갈까? 어머 내가 무슨생각을... 녀석이 너무 편하다보니까... 편하면 사랑하는 감정이 안생긴다고 하던데... 근데 녀석이 자꾸보고 싶은거 보면 그건 아닌거 같다. 녀석이 존댓말을 계속 쓰니까 나도 자꾸 써야 되잖아. 씨 유치원 동긴데...

"현재군?"

"예?"

"커피"

"아..예. 있어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푸..뭐야. 그 한마디에 알아서 커피끓이러 가다니...

 

자취생: 커피까지! 하하하. 오늘 자취방 너 호강한다.  분위기 좋다. 바깥의 찬공기를 홀로 두고 오후의 기분좋은 햇살이 내창을 뚫고 들어와 커피향내와 함께 포근하다.

"현재씨."

"예."

"나 사진 한장만 줄래?"

"무슨 사진이요? 제 사진?"

"응. 조금 오래된 어릴적 사진."

"그건 지금 없는데요."

"그럼 집에 내려가서 꼭 한장만 들고와요."

"하하 그러죠 뭐."

"현재야?"

잉. 커피먹고 나서부터 말이 상당히 낮아 졌다. 이제는 그냥 현재야네.

"예?"

"아직 나 모르겠지?"

또 뜬금없이 자기 모르겠냐고 물어본다. 뭘 모르겠냐는 거지?

 

백수아가씨: 커피향내와 오후의 차분한 느낌속에 그의 공간에 와 있다는 느낌이

또 옛 추억을 떠 올리게 했다. 내가 그의 기억을 잃어버렸을 때와 다시 그의 기억을 찾았을때 그 사이의 이녀석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궁금하다. 그의 모습을 상상하니 자연스럽게 반말이 나올수 있었다.

"잘 내려갔다 와요."

"예. 갔다와서 연락할게요."

"그래요. 라면 잘먹었어요."

"하하 뭘요."

"빨리 올라오세요. 그럼 나 이만 가볼께요."

"예 안녕히 가세요."

저녁은 노을과 함께 골목에 큰 그림자를 드리우고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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