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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 중계동 성당 6. : 새로 태어남 : 성서공부와 매일복음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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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락희 [rakhi] 쪽지 캡슐

2005-05-13 ㅣ No.5396

 

나의 사랑 중계동 성당 6. : 새로 태어남 : 성서공부와 매일복음필사


우리 가족은 웬만해선

큰소리가 나지 않는 그런 집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화목하다는 말로 표현하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화목을 가장한 무관심이 아니었나 싶다.


성서공부를 시작하면서,

이상하게도 집에서 가족간에 소리가 나기 시작했는데,

(물론 내 목소리도 결코 작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다툼이었다.


나의 중심은 가족이었고,

이런 상황들은 나를 온통 흔들어 놓았다.

그동안 쌓였던 각자의 생각들은

처음이 힘들었지,

계속 거침없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것들은

나에게 너무나 큰 상처들이었다.

때로 감당하기 힘들었다.

내가 노력해도 할 수 없는 일이 있었던 것이다.

자포자기 상태가 되었다.


성서공부를 시작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전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선뜻 시작할 수가 없었다.

결혼 전에 창세기를 시작한 적이 있었는데,

마치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그때의 부담감이 성서공부를 늦추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는 꼭 해야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일년 동안, 정말로 열심히 공부하리라’

마음을 먹고 시작했는데,

정작 시작한 성서공부는,

적고 또 적고, 계속해서 적기만 했다.

‘이게 뭐냐?’

성서 말씀과 그 배경과 고증. 그 명확함을 기대했던 나는

‘봉사자의 공책을 그대로 베껴 쓰는

이런 모임에서 과연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

하는 회의가 왔다.


그러나 첫 묵상나누기 시간에,

내 생각은 180도 바뀌었다.

먼저 봉사자님의 내어 놓기 쉽지 않았을 체험을 듣고 나서,

열 명이 넘는 그룹원들의 나눔이 솔직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같은 성당을 다녀도 대부분은 처음 보는 자매들로,

다른 자리였다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비로소 나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내가 내어 놓을 나의 상처에 대해서...



그 다음 시간부터는

봉사자가 읽어 주는 말들을,

적고 또 적는 시간에도

성서는 지식으로, 지혜로, 그리고 말씀으로 내게 다가왔다.

이렇게 성서공부는 나의 어떤 것보다

가장 중요한 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뜻하지 않게 취직을 하게 되었다.

마침 생각은 하고 있었던 터였지만,

결정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막내가 아직 어려서도 그랬고,

이제 겨우 성서에 맛을 보기 시작한 것도 큰 이유였다.

그러나 저녁 시간으로 옮겨서 할 수 있었다.

‘뜻이 있는 곳엔 길이 있다’


이런 나를 주위에서는

‘열심이다’ 라고들 했지만

성서공부 모임이 없이는 견디기 힘든 일이 정말 많았다.

하지만, 공부가 깊어질수록, 가정에서 풀어야할 일들은

더 복잡하게 엉키고 있었다.

혼자서는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

그랬다. 나는 아주 절박했다.


그해에 주임신부님의 권고로 복음필사를 시작했다.

(숙제에는 거의 목숨을 건다)

나는 매일 복음을 쓰면서,

나의 하루하루를 적어갔다.

처음에는 숙제였는데, 언제부터인가 일상이 되었다.


필요에 의해서 가까워진 성서는

그동안 내가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보게 하였다.



나는 숱한 주님을 만났다.

주님을 만나는 방법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정신을 바짝 차리기만 하면 말이다.

이런 걸 아마, ‘깨어 있다’라고 하는 것 같다.


새로 직장을 얻게 된 것도,

내가 결정한 것을 빼면, 한 일이 없다.


또, 우연히 아이들의 글쓰기 지도를 한 것도,

나는 결정만 했을 뿐이다.

오히려 계획을 했을 때는

셋째를 주시면서 까지 나를 막으시더니 말이다.


그리고, 호되게 사춘기를 보내는 아들 녀석도,

내게는 그냥 외면할 수 없는,

나의 예수님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왜 그 순간에는 알아보지 못하는 걸까?

엠마오의 제자들처럼 말이다.


가장 만나기 쉬운 곳은

뭐니뭐니 해도 성당이었고, 미사시간이었다.

워낙 말씀이 좋으신, 주임신부님은

나를 위해서만 강론을 하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 생각의 문제점을 짚어 주셨다.

개인적으로 오래오래,

상처투성이의 영혼들에게

치유와 위로가 되어주시길 바란다.


나처럼 내적 고요가 어려운 사람에게

성서공부와 복음쓰기는 그자체가 훌륭한 기도였다.


차츰 나의 중심이 가족에서 하느님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유아세례이후,

주일학교를 다녔고,

학생회도 참석했으며,

주일학교 교사도 하였고,

혼배미사로 결혼도 하였으며,

아이들을 낳아 하느님의 자녀로 만들었고,

네 차례의 반장도 하였건만,

이 모든 것을 내가 한 줄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20대에서 그쳐버린,

장차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은 응답을 받았다고 여기고 있다.


지금은 단지 그 과정에 불과하겠지?

주님은 나를 쓰시기 위해서,

이사도 계획하셨을 것이다.

나는 투정하지 말고 감사하며

이 선물을 받아야 할 거다.(다음 글로 마칩니다)

 

내게 새로운 눈을 주신 은인들께 감사드립니다.

가장 필요한 때와 장소에 그분들의 목소리로 찾아오신 주님은 찬미 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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