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동성당 게시판

초기 이민자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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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준태 [pete3200] 쪽지 캡슐

2002-06-16 ㅣ No.1737

   Friday April 13, 2001

 

 봄을 실어 나르는 남풍은 철없이 몰아치며 키 큰 정원수와 길가 버드나무 가지를 마구 뒤흔들고 있습니다. 며칠 전부터 파릇하니 싹을 틔우던 잔디들도 온 땅을 이내 녹색으로 물들이려는 듯 무서운 기세로 물감을 번지우고 있네요. 여기다가 나뭇잎들만 피우면 그야말로 낙원세계에서나 봄직한 이국의 풍경이 이곳 풍치에 생소한 이국민들을 황홀경에 빠뜨리는 계절이 되겠지요.

 겨우내 무겁게 내리 누르던 하늘이 4월도 초순이 지나면서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를 선보이며 사람들을 죽이고 말더니, 오늘이 몇 번째인가? 깨끗한 날씨가 얄미울 정도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Good Friday-Roma Catholic의 부활시기 성주간聖週間 성 금요일, 거리의 상가는 모두 철시하고 외국계 이민자들만이 가게를 지키고 앉아 문화의 혼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백인들은 일년에 두 번 성당과 교회에 가는 명절중 하나인 부활절 휴가기간입니다.

멜은 잘 받아보셨나요. 글로는 분위기 전달이 다 되지 않아 쓰면서도 답답했습니다. 이곳의 풍경이 궁금하시죠? 보아서는 모르고 맛을 봐야 간을 알게 됩니다. 기회는 많지 않고 시간은 다시 오지 않습니다. 젊음은 용기를 가질 수 있는 좋은 시기이죠. 한번 겪어보고 돌아가 준비해서 다시 오는 사람도 있죠. 다음은 이곳 주간지에 실린 르포기사를 간추린 것입니다.

 

캐나다의 한국인, 한국인 사회 - 주간 NEXT KOREA 2001. 4. 15

영어에 울고 교육에 웃고

영어에 서툰 교민 최모씨의 자동차가 어느 날 냉각수 과열로 고장이 났다. 몇 달 전에도 똑같은 고장으로 차를 산 딜러의 직영 정비공장에서 다른 차를 렌트 서비스 받아 탄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그 공장을 찾았으나 담당직원은 차는 고쳐주지만 렌트비는 부담할 수 없다고 잘라 따지고 말했다. 따져야 할 텐데 영어가 문제였다. ’보증수리기간에 같은 고장이다. 왜 서비스 내용이 다른가? 두 번이나 고장이 났으니 더 큰 책임을 져라’ 손짓 발짓 다 해보았지만 직원은 끝내 거절이었다. 분을 삭이고 근처의 렌터카를 찾아 자기 부담으로 집에 올 수밖에 없었다. 렌터카 직원이 동행한 딸과의 대화도중 한국인이냐고 물어왔다. 초등학교 때 이민온 1.5세 한국인인 렌터카 여직원이 자초지종을 듣고 즉각 유창하고 매서운 말투로 정비공장에 항의전화를 대신하여 렌트비의 절반을 서비스 받았다. 처음에 수리 담당직원은 중국계였고 두 번째 수리 때는 백인이었다. 만약 자신이 백인이거나 영어가 유창했다면 그 직원이 그렇게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캐나다 드림을 향해 한국인들이 대거 몰려오고 있다. 영어도 제대로 못하면서 뿌리 박고 살

결심을 하는 이들이 왜 이처럼 늘어날까? 무엇보다도 캐나다가 살 만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캐나다는 살기 좋은 나라이다. 그러나 아무나 이민가도 살기 좋은 나라는 아니다. 동포사회의 몇 가지를 이해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민자가 가장먼저 느끼는 불편은 언어장벽이다. 이민 온 지 10년 넘어서도 이 나라 말 영어, 불어가 안 되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다. 물건 사기, 길 묻기 등 생활 필수 대화나 자기 비즈니스 분야의 의사소통만 해도 영어 잘 하는 사람 축에 든다. 그러나 인생, 사랑, 예술, 문화, 종교, 스포츠 등을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면 언어장벽의 해방은 말하기 어렵다. 이민1세로 동포사회에서 잘하는 편에 속해도 백인 주류사회에 진입이 어려운 이유는 인종차별 탓도 있겠으나 주류사회 구성원과의 자유로운 교감을 이룰 정도의 영어가 안되기 때문이 타당한 것이다. 토론토나 밴쿠버처럼 동포가 많은 도시에는 한국어로 생활필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소가 많다. 의사, 한의사, 변호사에서부터 이,미용실, 식품점, 가전품점, 표구점까지... 이렇듯 미국 대도시뿐 아니라 여기서도 동포들이 영어한마디 못하고도 살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큰 고통이 감춰져 있다. 자녀의 진학을 위한 교사와의 상담, 외국인 전문의 진찰, 잘못된 전기료 고지서, 행정 통고문... 살다가 어쩔 수 없이 부닥쳐야 하는 갖가지 장벽 앞에 영어는 심한 좌절감을 느끼게 한다. 그렇다고 매번 유료 통역서비스를 받을 수도 없고. 각종 우편물과 현지 신문은 듣기 말하기와 함께 독해력도 큰 문제다. 이처럼 말이 안되니 일상생활이 불편하고 생업선택에 제약을 받고, 더 큰 문제는 영어권 사회와 접촉을 기피하고 지적 소외감과 무력감, 그로 인한 긴장감, 낭패감과 생활이 움츠러들기도 하고... 물론 캐나다에 입국하고 후에 영어실력을 보충하고 정부는 그런 프로그램을 무료로 제공하고 하지만 기회를 살리지 못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있다.

 

동포 직업 1위 식품잡화점

토론토가 소재한 온타리오주와 벤쿠버 일원의 동포업체 매매가격은 10만 달러 내외가 일반적. 이 정도의 소형 비즈니스로 부부가 함께 뛰면 한달 3천, 4천달러는 번다. 부부의 인건비는 따로 치지 않고...4인 가족이 넉넉하진 않으나 그런대로 살 수 있다. 두 사람 합해 월 500시간 노동하고 시간당 6-8달러를 번 셈이다. 밴쿠버시 시간당 최저임금 8달러에 비하면 높은 수익이 아니다. 하찮은 비즈니스라도 열심히 노력하는 동포들의 정착속도는 빠르고 자녀들의 가치관도 안정된 경우가 많다. 영어가 모자라도 진취적 기상으로 극복한 사례다. 웃지 못할 이런 얘기도 있다. ’뉴욕에서 청과물 가게를 차린 박씨는 영어를 못했기 때문에 3년에  100만 달러를 벌었다. 그는 오로지 생큐와 아이 앰 소리만 했다. 불평하던 고객들이 나중엔 얼굴을 펴고 단골이 늘었다. 만약 그가 영어 좀 안다고 따지고 대들기 일쑤였다면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곳에서 소형 비즈니스 업주도 얕보지 않는다. 여러 형태의 직업별 존경도 조사에서도 소기업 오너가 우월하다. 정치인, 공무원, 변호사, 언론인 등은 그 반대다. 거만한 고객으로 인해 스트레스 받는 점포주가 이곳에선 드물다. 돈을 갖고 온 동포중엔 노는 사람도 많다. 큰 비즈니스는 위험 부담이 따르고 소형 자영업은 성에 차지 않고 골프나 교회일에 매달리고 한국에 자주 드나든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한국에서 임대소득이나 이자를 얻는 동포도 많다. 초기 1960,70년대 이민자 중 당대에 의사, 교수, 판사 등 엘리트층, 또는 소형 비즈니스를 넘어 기업을 일군 사람도 상당하다. 이들은 30세 이전에 이민와 대학이나 대학원에 다니며 주류사회 진입에 힘을 쓴 결과다. 지금도 젊은 나이에 오자마자 공부에만 매달리는 사람이 있다. 평생 대학에 남거나 학위 취득 후 주류사회의 일원으로 진입이 목표다.  미국과 비슷한 교육수준에 학비는 훨씬 싼 것이 캐나다의 매력 중 하나다.

 

자녀교육의 고려 사항

자녀교육을 생각해 온 사람이 많다. 입시지옥에서 해방, 인성위주의 교육, 저절로 얻는 영어교육, 사교육비 부담이 없고 고교까지 공교육은 무료... 한국 이민자들이 기대하는 교육환경이다. 대체로 맞다. 화가 치밀 정도로 부러운 대목이다.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우선 영어에 대한 기대다. 초등생이나 중 1~2년생의 경우에 이 말은 맞다. 그러나 그 이후에 와서 대학진학을 목표하는 학생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예외없이 언언장벽의 홍역을 겪는다. 어른들은 말이 안 통하면 피해서 갈 수도 잇지만 학생들은 그것이 안된다. 이 과정을 이겨내고 고교를 마쳐도 대학입학이 만만찮다. 고교내신성적 위주로 진학하기에 관문이 험하지는 않으나 이 나라에서 일정기간 약 5년 내외 교육 미이수자는 일정의 토플점수를 요구한다. 토플을 위해 사교육을 찾기도 하고 일반과목도 대상이 된다. 교사는 백인과 한국 이 민자 등. 토플 기준으로 입학해서도 첫 학기 수강전에 작문 테스트로 수강을 제한하는 대학이 대부분이다. 이를 통과하고도 현지인 학생 이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졸업도 못하고 중도탈락하기 일쑤다. 반대로 어린 나이에 이민와 영어는 능숙하나 한국어가 퇴보하게 되면 사회에 나가도 한국어권이건 영어권이건 별의미가 없다. 결국 이 시대엔 2개 국어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영어 한국어 모두 공부

언어와 문화, 동질성identity 등 한국 캐나다 양쪽의 장점이 몸에 밴 사회인으로 2세를 길러내야 성공한 자녀이민이라 할 수 있다. 몸은 한국인이요 가치관, 사고방식이 서양인인 자녀를 이곳에선 겉은 노랗고 속은 흰 ’바나나’로 부른다. 이민은 일단 익숙한 것들을 단절케 한다. 영어를 잘 한다해도 모국어만큼 편할 수는 없고 한국의 삶의 방법을 포기하고 새 문화에 적응해야 하고 좋은 사람들을 멀리하고 새 사람을 사귀는 것 자체가 상실이다. 동포사회가 상실의 충격을 완화시켜주긴 하지만 한국사회 같을 수는 없다. 동포사회내 자원이 많더라도 그 속에 안주한다면 그것은 캐나다 내 동포사회로 이민온 꼴이 된다. 토론토 밴쿠버의 동포사회는 인구가 각각 5만 3만쯤 되는 지방 소도시다.

 

와야 할 오지 말아야 할 사람

이민은 많은 것을 주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빼앗아간다. 개인적 여건과 품성에 따라 좋은 선택도 불행의 씨앗도 될 수 있다. 앞에 쓴 어려움들과 충격을 극복하는 사람이 자질을 갖춘 사람이다. 많은 이민자가 한국으로 되돌아간다. 정부자료에 의하면 1996년에 3073명이 와서 368명은 돌아갔다. 1997년에는 3918명이 오고 316명이 갔다. 영주권을 반납하고 주민등록을 복원한 사람들만의 수치다. 이외에 자녀만 남겨놓고 부부가 혹은 그 한쪽만 돌아간 사람도 많다. 자녀는 공짜교육을 받고 부모는 다른 나라에서 경제활동, 납세하는 것을 이 나라에서 좋아할 리 없어 이민자가 이곳에 거주하지 않는 것을 당국이 규제방안을 찾고 있을 정도다. 이런 사례는 홍콩, 대만, 본토 등 중국계가 훨씬 더 많다. 캐나다에 대해 너무 모르고 오는 사람도 많다. 과거에 영국의 식민지였고 수도는 오타와, 불어권인 쿼벡 문제가 시끄럽다는 정도가 기본지식의 다 인양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이나 동포사회에서 캐나다에 관한 연구가 축적되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 하겠다. 동포사회에 관한 천박한 조언만 기억하는 이들도 있다. 동포간에 사기를 조심하라, 가서 처음 한두 해는 노는 것이 좋다, 김치냄새 때문에 손님이 끊어진다, 사람들이 툭하면 시비 걸고 소송이니 조심하라 등이 그것이다. 부분적인 것을 전체로 인식하는 이런 말은 나쁜 선입감과 편견만을 갖게 한다.

 

한국인 얼마나 사나.

캐나다의 한국계 동포는 미국에 비해 훨씬 적다. 미국내 영주권 시민권자는 150만 명 가량이고 캐나다는 10만이 조금 넘는다. 1990년 이후 해마다 미국행이 1만명 안팎, 캐나다는 5000명 안팎. 그러나 IMF 이후 캐나다행이 급증해 1999년에는 미국행을 앞질렀다. 미국의 이민 문호는 좁다. 연고자의 초청으로 10년 가까이 기다리거나 거액의 투자, 특별한 직능으로 고용초청 받는 경우 등으로 제한된다. 캐나다는 연고자가 없거나 적은 돈으로도 받아준다. 5만 명 가량이 가장 큰 도시 온태리오Ontario 주 광역 토론토, 토론토 및 그 인접 도시에, 3만 명 가량이 세 번째로 큰 도시인 British Columbia 주 밴쿠버와 인근에, 이밖에 앨버타 주 캘거리, 에드먼튼, 쿼벡 주 몬트리얼 등등에 각각 2000~4000명 정도가 살고 있다. 동포수의 집계가 실제로 어렵기에 한국내 외교부, 이곳 한국공관, 교민회 어느 곳에도 믿을 만한 통계가 없다. 국내에서 이민 출국 신고만으로도 모른다. 여기 왔다가 제3국으로 가는 사람, 제3국에 있다가 오는 사람, 2,3세 후손의 출산, 이민왔다가 되돌아가는 역이민자, 유학와서 눌러 앉는 사람, 불법체류자 등 복잡하다. 유색인종의 이민이 급증해 1990년대 이후 이민자의 인종구성은 백인이 30% 아시아인이 5~60%.

 

캐나다 이민 매년 20만

인구의 노령화 현상, 고급두뇌의 미국 유출 등의 필요성으로 캐나다의 이민 영입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낯선 인구의 증가를 꺼리는 사회적 저항도 만만찮아 무작정 늘릴 수도 없다. 한국인 이민자의 수가 매년 10위안에 든 적이 없었으나 1998년 8위, 1999년에는 중국, 인도, 파키스탄, 필리핀에 이어 5위, 2000년에는 7602명이 왔다. 이민자의 유형은 크게 기술이민, 투자이민, 기타 초청이민과 난민 등으로 나눈다. 1999년 한국 신규 이민자 가족 포함 7212명 중 기술인이 54% 3901명, 투자이민 37% 2700명, 기타 8.5% 611명으로 집계됐다. 투자 즉 경제이민 부문에서 1999년 이곳 총 이민자 13,010명 중 한국이 201%로 1위, 대만, 중국, 홍콩, 이란이 그 뒤를 따른다. 좁은 땅에 인구 많은 한국에서 이루기 힘든 꿈을 캐나다에서 실현한다면 좋은 일이다. 오지의 천연자원 개발, 관광개발, 농업진흥 등이 좋은 예이다, 아직까지 한국인의 두각은 부족하지만 2세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고 한국에서 새 이민자들이 오면 빛을 내리라 기대해 본다. 기본적인 영어나 프랑스어 실력을 갖추고 젊고 진취적인 기상을 지닌 사람들이 많이 온다면 본인의 삶도 풍성해지고 캐나다의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 한국으로서는 우수인력이 빠져나가는 손실도 있겠으나 인구 압력이 줄고 해외 교두보가 마련된다는 점에서 이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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