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통찰력과 자비심은 상대를 끌어안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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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훈 [p0o9i8] 쪽지 캡슐

2003-06-14 ㅣ No.4979

 

통찰력과 자비심은 상대를 끌어안는 힘이다

 

미국 산타나 고등학교에서 1학년 학생이 총을 난사해

15명이 다치고 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람들은 크게 놀랐다.

총기 소유를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청소년 범

죄의 심각성에 대해 진지한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진심으로 소년의 처지를 걱정하고 이해하려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 학생의 부모는 오래 전에 이혼했다고 한다.

부모의 이혼을 감당하기에 그의 나이는 너무 어렸다.

어린아이에게 어머니와 아버지는 세상 전부다.

그런데 이혼이라는 복병으로 아이는 그 전부를 잃은

것이다. 아이에게 이혼은 아마도 세상이 무너지는

사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부모는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이혼한 부모들이 대개 그러하듯, 자기 고통을 달래는

일에 바빠 아이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지 못한 것이

다. 아픈 마음을 드러내기에는 너무나 어리고 미숙한

나이의 아이가 곁에 있는데도 말이다.

게다가 그는 아버지를 따라 이사를 해야 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또 하나 알아두어야 할 사실

이 있다. 아이에게 이사는 마치 잘 자라고 있던 나무

를 뿌리째 뽑아 낯선 땅에 옮겨 심는 것과 같다.

소년은 자신을 이해하는 친구들과 학교를 비롯해 자신

의 것이라 할 수 있는 많은 것들과 이별해야 했다.

다른 도시로 옮겼을 때, 소년은 자신의 방을 이전 방

과 아주 똑같이 꾸몄다고 한다.

뿌리가 뽑히고 길을 잃은 아이가 자신의 영혼을 보호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 전학간 낯선 학교에서 소년은 아이들의

놀림이라는 또 다른 벽에 부딪혔다.

이렇게 힘들게 환경에 적응할 무렵, 소년의 아버지는

더 좋은 직업을 얻었다며 또 다른 도시로 떠나자고

했다. 소년의 세계는 다시 한번 무너졌다.

새 학교에서의 놀림은 더욱 심했다.

어느 날, 그는 목청껏 소리 질렀다.

"그만해 이놈들아! 다시 한번 날 놀리는 놈은 총으로

쏴버릴 테다!"

아마도 그것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가 알고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 소년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수많은 사상자를 냈으니 그를 범죄자로 몰아 감옥에

가두어야 할까?

하루에도 수만 명의 아이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비행청소년이 된다.

그게 모두 아이들 탓일까?

소년은 오랫동안 도움의 손길을 기다렸을 것이다.

무조건족인 처벌은 그를 변화시킬 수 없다.

자비심이 없이 가해지는 처벌은 폭력을 없애기 위해

행사하는 또 다른 폭력에 불과하다.

마음껏 해를 입혀도 되는 존재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그 누구도 함부로 벌해서는 안 된다.

단순한 처벌은 상태를 더욱 나빠지게 할 뿐이다.

폭력을 표방하는 단체나 국가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폭력을 행사하는 이유는 그들이 지금까지 많은

고통을 받은 탓에 테러 말고는 더 좋은 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테러 외에 다른 대안을 찾았다면 그들은 테러라는 무서

운 방법을 포기했을 것이다.

테러 같은 커다란 폭력 행위는 사실 절망의 외침이다.

그들은 폭력을 통해 우리에게 자신들의 말을 들어줄 것

을, 또는 자신의 처지를 봐줄 것을 필사적으로 외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들을 도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에게 폭력이나 테러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대안을 제안해야 한다.

그들을 단지 범죄자나 적으로만 대한다면 절대 도울 수

없다.

그들은 처벌 대상이 아니라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들이다.

모든 폭력은 정의롭지 못하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테러가 염려된다고 미리

군사적 행동을 취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그것은 증오와 폭력의 불에 다시 증오와 폭력의 석유를

뿌리는 것과 같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진정 자국민을 지키고 싶다면

그는 이라크와 아프카니스탄 국민들을 잘 보살펴줘야

한다. 만약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한다면 이라크는 가만

히 당하고만 있겠는가?

안전이란 결코 혼자서 지킬 수 있는 게 아니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나 아프카니스탄 지도자에게 이렇

게 말해야 한다.

"미국은 당신들 나라의 안전을 돕고 싶습니다."

그러면 그들 지도자들은 말할 것이다.

"감사합니다. 미국이 우리의 안전을 위해 노력해준다면,

우리 역시 미국의 안전을 돕고자 노력하겠습니다."

모든 국가는 서로 연결되어 존재하는 것이기에 이렇게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만일 어떤 국가 혹은 어떤 사람에게 나쁜 점만 발견했

다면 그것은 수행이 부족한 당신의 잘못이다.

세상에 나쁘기만 한 존재는 없다.

모든 존재는 좋은 점과 나븐 점을 고루 갖추고 있다.

어떤 사람에게서 잘못된 점만 발견한다면 그건 당신의

인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이러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타인

뿐만 아니라 자신도 제대로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다.

커다란 증오심에 어떻게 자비심이라는 물 한 방울을 부

을 수 있을까? 자비심은 슈퍼에 가도 살 수 없다.

자비심은 우리들 각자의 가슴속에서 싹트는 씨앗으로

수행을 통해서만 잎을 틔운다.

깊이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에게는 적이 없다.

그는 모든 존재의 장단점이 어울려 조화를 이룬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누구도 미워하지 않는다.

잠시 적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다면, 결국 그들은

도움이 필요한 형제자매들이라는 뜻이다.

남들을 적으로 대하면 분열만 심화될 뿐이다.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자비심이 필요하다.

동시에 비폭력적인 대화와 교류는 매우 중요하다.

사람 사이에 애정 어린 말과 경청하는 자세는 자비심과

통찰력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상대방은 자신이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깊이

느낄 수 있다.

자비심은 이해로 이루어져 있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면 대화의 통로가 열려있어야 한다.

사랑과 평화를 실천하는 사람은 남을 비난하지 않는다.

네가 먼저 사과하면 나도 사과하겠다는 옹졸한 말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평화는 언제나 나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부정적인 말이나 행동을 자주하는 이유는

이런 힘이 부족해서다.

우리에게는 자비심과 통찰력이라는, 상대를 끌어안는

힘이 필요하다. 이 힘을 이용해 분열을 조장하는 말과

행동을 멈추도록 해야 한다. 좀더 많은 형화를 가져올

수 있는 방식으로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대학이 있지만 평화를 가르치는 대학

은 많지 않다. 우리에게는 평화대학이 필요하다.

나는 열 여섯 살에 스님이 된 이후로 지금까지 평화를

위한 수행을 계속해왔다.

나는 이곳 플럼빌리지를 평화대학이라고 부른다.

여기에서 공부하는 지식은 축적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 계신 스님과 수행자들이 배우는 것은 깊은 이해다.

’깊이 들여다보기’와 ’받아들이기’의 과정과 방법을

닦는 것이다.

평화는 지성이 아니라 가슴이다.

평화는 우리의 폐와 내장에 들어있다.

그래서 평화대학 플럼빌리지에서는 사람들이 진정한 평화

를 이룰 수 있도록 평화롭게 숨쉬기, 걷기, 깊이 듣기와

사랑으로 말하기를 가르친다.

이들은 매일매일 이를 닦고 세수를 하듯이 이런 수행을

되풀이한다.

그러므로 당신이 삶과 세상을 좀더 뜻깊은 것으로 만들

고자 한다면, 하루하루 매 순간 깊이 살아가는 수행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면 자신과 세상의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저절로

알게된다.

누군가를 미워하기 전에 먼저 듣고 받아들여야 함도 자연

스럽게 알게 된다.

우리는 모두 지구의 일부다.

한 몸을 이루는 세포처럼 우리 모두는 연결된 존재다.

서로를 끌어안아라.

이것이 폭력으로부터 나와 세상을 보호하고 평화를 구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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