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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맞이 고백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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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백 [sblee2] 쪽지 캡슐

2005-03-28 ㅣ No.4268

 

[ 부활절 맞이 고백성사 ]

† 찬미예수님!

   봄을 알리는 입춘과 우수와 개구리가 깊은 겨울잠에서 깬다는 경칩을 뒤로 하고 화신(花信)이 먼나먼 남쪽에서 봄내음과 함께 우리의 주변으로 서서히 다가오는 가운데 우리는 참회와 보속의 시기인 사순절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사순시기는 하느님의 말씀에 스스로 잘못을 겸허하게 반성하는 회개와, 다시 하느님께로 삶의 방향을 향하고자 하는 다짐의 시기입니다. 회개는 반성의 토대위에 기도와 단식과 자선이라는 3위 1체의 삶이 생활속에 투영되는 것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사순시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을 고대하는 대림시기와 함께 교우들의 영성생활에 가장 큰 의미를 지니는 전례시기이며 부활의 희망을 간직하고 이 세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고대하는 희망의 시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중요한 시기에 현대2차(705세대) 3차(92세대) 4차(202세대)와 성원아파트단지(194세대) 등 1200세대에 거주하는 입주자(세입자) 중 그 10%에 해당하는 120여세대의 형제․자매교우들을 대신하는 목자(?)로서, 머슴으로서의 막중한 책임을 짊어지고 있어 참으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모두가” 반드시 “누군가”는 하리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막상 아무도 맡지 않으려는 자리가 구역장 자리가 아닐까요?


저는 본당에서나 구역의 심부름꾼은 ① 신앙(기도)생활에 충실한 가운데 ② 희생과 봉사정신이 투철하며 나아가 조금은 거창한 표현같지만 ③ 인품과 덕망을 갖춘 교우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평소의 소신이었지요. 저는 위의 세가지 자질 중 어느 자질(?)도 갖춘 것이 없는 초보교우(?)임을 솔직히 시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먼 옛날 4개월반 동안의 예비자 교육을 마치고 최익철 베네딕도 신부님의 집전하에 제헌절날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미사는 일요일날 한번 성당에 가서 지나간 주간의 생활을 반성하고 다가오는 한주간을 준비하면 된다는 나름대로의 신앙철학(?)을 견지하며 일요일날 겨우 미사참석하는 수준의 신자였습니다. (예비자 교육때 저를 가르친 백수녀님에 의하면 이런 교우를 발바닥 신자라고 하심)


오늘 저는 2002년 12월 3일 예수님의 모후이신 마리아(His mother Mary)를 사령관으로 모신 사병으로 입대하여 약 1년반이 지난 2003년 7월 10일 소속 은총의 모후 Pr.에서 경리장교(회계)로 발탁된 화려한(?)한 경력에 비해 저의 초라한(?) 신앙생활의 한 단면을 솔직히 고백하고자 합니다.


영세받은지 어언 만18년(1987년 7월 17일)이 되었고 LM군대에 입대한지 2년 4개월이 되었으면서도 마리아 사령관님의 지시사항 1호인 로사리오 기도를 아직도 더듬거리는가 하면 매일 2회 묵주기도를 바치기는커녕 1주일 내내 단 한차례도 바치지 않는 경우가 그동안 대부분이었던 것이 나의 신앙생활의 전부였습니다.


은총의 모후 Pr. 주회(週會)때 환갑을 넘긴 군단장님께서 장교․사병으로부터 묵주기도 회수를 보고 받으실 때면 입단후 두세차례를 빼고는 “못했습니다”하거나 아니면 저를 건너뛰어 다른 장병들이 보고하는 것이 관례가 되자 언젠가 군단장님으로부터 경리장교(회계)라는 사람이 묵주기도도 안바치면 어떻게 하느냐는 질책을 두차례 받았으면서도 끄떡(?)도 하지 않는 저였지만 군단장님께서 저를 강제전역시키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현재로서는 저만한 경리장교감을 구하기 어려운 처지여서 경리장교직에서 해임시켜 약사발(?탈단)을 권유할 수도 없어 스스로 잘못을 깨우칠 때까지 내버려 두시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딱한(?) 현실에서 저는 LM 군대만큼 편하고 좋은 군대는 이 세상에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하면서 마리아(Mary) 사령관님의 한없는 자애로움과 은총의 모후 Pr. 군단장님의 너그러우심에 그저 머리숙여 감사할 따름입니다.


또한 고백할 죄가 많은 데도 제때에 하지 않고 이를 한데모아 1년에 불가피하게 해야하는 고백성사 시기에 한두차례 밝히는 명백한 죄사실(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음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람)에 대해 신부님들은 대체로 사도신경 또는 주님의 기도 1번에 묵주기도 5단이라는 관대한 보속판결(?)을 내려주시지요. 그러면 저는 판결문(?)이 없고 사후확인(?) 절차가 없다는 이유(?)로 판결불복 절차도 취하지 않고 “고백했으면 됐지, 사도신경(또는 주님의 기도1번)은 몰라도 묵주기도 1단도 아니고 그것도 5단씩(?)이나…”하는 마음으로 묵주기도는 그냥 지나치기도 한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음을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정도되면 대죄인 중에 대죄인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또한 저는 지난해 11월 남성구역 모임에서 저의 자질(?) 때문에 본인의 적극적인 고사에도 불구하고 참석교우들의 비밀투표에서 현대구역장으로 강제(?) 선출되어 올해 1월부터 구역장(목자)으로서의 정식 활동을 시작하고 있습니다만 가끔 교우들과 회식하는 기회가 오면 식전 기도는 잘하는데 식사후 기도문을 잘몰라 참석 교우들의 양해를 구하고 3년여간이나 초대구역장으로 봉사한 전임구역장(현재 현대 교우회장으로 제가 위촉)에게 요청하여 ‘식사후 기도’를 부탁(?)하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식사후 기도’를 모면할 요량으로 요즈음 정치권의 역할분담 시대에 걸맞게 구역장(목자)은 ‘식사전 기도’를 하고, ‘식사후 기도’는 참석자중 신앙(기도)생활을 잘하는 교우가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제의를 교우들께 몇차례 하였으나 구역장의 통치권(?)의 취약 탓(?)인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교우들과의 회식자리에서 ‘식사후 기도’를 잘 모른다니까 일부 자매님이 모르면 읽어 외워서 해야지 매번 남이 해주는 게 어디있느냐는 핀잔(꾸중)을 듣고 나서야 대세의 흐름과 자존심의 상처(?)를 깨닫게 되었지요.


할 수 없이 ‘기도서’에서 평소 알고자했던 ‘삼종기도문’과 함께 ‘식사후 기도문’을 찾아서 2005년 1월 11일자로 자필로 종이에 써서 코팅처리를 하여 8cm x 12cm 크기로 만들어 수첩에 넣고 다니다가 교우들과의 회(주)식때 어느 교우가 “이제 끝내시죠?”하고 제의하면 재빨리 기도문을 수첩에서 꺼내 컨닝(cheating)하며 ‘식사후 기도’를 무난히 해내는 순발력(?)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식사후 기도문’ 중에 “세상을 떠난 모든이…”의 기도문의 경우는 식사시 술을 먹지 않은 상태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하는게 도리라고 스스로 유권해석(?)을 내리고는 즉석에서 다른 기도말로 슬쩍 대체했더니 교우들로부터 지적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 후 본당 사목위원회 기획위원장 형제로부터 왜 세상 떠난 이들을 위한 기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설명을 들은 다음부터는 빠짐없이 하고 있지요. 이런 저의 시행착오와 나라책임자(CEO)의 시행착오는 규모나 사안의 중대성 차이는 있지만 막상막하가 아닌가하고 조심스레 말씀드립니다.


‘대학(大學)’에 심부재언(心不在焉)이면 시이불견(視而不見)하고 청이불문(聽而不聞)하며 식이부지기미(食而不知其味)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음에 없으면 즉 관심이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저의 두뇌 컴퓨터가 평소 구역내 전통문화놀이(go&stop) 기회에 가끔 언급한 대로 286 수준이라서 그런지 관심이 없어서 그런지 잘 모르겠으나 그동안 그랬다손치더라도 구역교우들이 잘알고 계시는 바와 같이 요즈음 저는 합당한(?) 구역장이 되기 위하여 불철주야, 노심초사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마지막으로 고백하고자 합니다.

인도에서 살아있는 성녀로 추앙받았던 마더 데레사(1910-1997) 수녀님은 자신을 몽당연필에 비유했습니다. 이유는 하느님께서는 그 연필을 자를 수도 있고 깎아 쓸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느님께서 몽당연필을 이용해 언제 어디서 무언가 쓰고 싶으면 쓰시고 그리고 싶으면 그리실 거라는 거지요. 멋진 글을 읽거나 감동적인 글을 읽을 때 우리는 미술도구나 연필을 칭찬하지 않고 그것을 사용해서 작품을 만든 사람을 칭찬하고 감탄도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우리나라가 아닌 현대구역에서 데레사 수녀님처럼 가능하다면 구역교우들을 위한 몽당연필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음을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상과 같은 저의 죄사실(고백)에서 보셨듯이 저의 이러한 야생마 같은 기질을 버리고 목자(木子?)로서, 몽당연필로서 맡은바 직무를 성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또한 신앙(기도)생활도 충실히 하는 한편 현재의 현대실업대표(현대아파트에 사는 실업자 대표)직은 사임할 수 있는 기회가 오도록 묵주기도를 열심히(?) 바쳐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교우여러분께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마태복음 25. 31-46참조)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시면서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저를 위하여 기도드려줄 것을 당부드리고 “다시는 나와 같이 불행한(?) LM 군인”이 우리 본당 내에서는 나타나지 않기를 기원하면서 저의 공개고백(성사)를 대신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현대구역가족(식구)여러분! 사랑해요♡☺!


2005년 3월 27일


                                                부활절을 보내며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현대구역장   이 신 백 (요한/목자/몽당)



주) 李信白이라는 이름의 뜻: 목자(木子)가 신앙(믿음/信)을 말씀드리다(白)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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