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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28일 성 베드로 샤넬 사제 순교자 축일♬Kyrie-Moz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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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정 [wjyou57] 쪽지 캡슐

2003-04-27 ㅣ No.1126

축일 : 4월 28일

성 베드로 샤넬 사제 순교자

St. Pedro M.Chanel (1803-1841년)

 

 

1803년 프랑스 벨리 근교 클뤼네에서 출생한 성인은 청년 시절을 목동으로 지내다가 크라스의 주임 사제 밑에서 공부를 배웠고,1827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크로제에서 젊은 사제로서 그는 ’고약한’구역을 본당을 맡았으며 그곳 병자들에게 대단한 열성을 보임으로써 그 본당에 생기를 되찾아 주었다.

선교사 되기를 원한 그는 1831년 28세에 마리아회에 입회했다.

 

그는 순명 정신으로 신학교에서 5년 동안이나 학생들을 가르치고 난 후,

1836년  선교에 대한 열망으로 일곱 명의 마리아회 회원들의 장상으로서 자기가 감목 대리구를 맡게 된 서대양주로 갔다.

선교사들을 데리고 간 주교 는 베드로와 수사 한 사람을 뉴헤브리디스에 있는 푸투나 섬에 남겨 두고 6개월 이내에 되돌아온다는 약속을 했다.

그러나 이 기간은 5년간이나 계속되었다.

 

그 동안에 그는 낯설은 언어와 씨름하여 결국 익히게 되었고 고래잡이,장사꾼,적대적인 원주민과 신앙을 증오하는풍토 속에서 어려운 생활에 적응해 나가고 있었다.

별로 드러나지 않은 성공과 극도의 궁핍 가운데서도 그는 부드럽고 위엄 있는 마음 자세를 견지하며 끝없는 인내와 용기를 잃지 않았다.

몇몇 원주민이 세례를 받았고 그보다 많은 사람들이 교육을 받았다. 추장의 아들이 세레를 받겠다고 청했을 때 추장의 박해는 절정에 이르렀다.

 

샤넬 신부는 그의 오두막집에 갇히게 되었고 심한 매로 그의 몸은 토막토막 잘려졌다.

그가 죽은 지 2년 안에 온 섬사람들이 가톨릭 신자가 되었으며 아직도 계속 믿음을 간직하고 있다.

베드로 샤넬 신부는  오세아니아의 첫 순교자이며 그곳의 수호 성인이다. 또한 마리스타의 첫 순교자이다.

대단한 적응력이 요구되면서도 겉으로는 별로 성공할 기미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일을 고독한 가운데 수행해야 하는 사람은

누구나 베드로 샤넬에게서 비숫한 정신을 발견할 것이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고통을 당하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같기 때문에 고통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흔히 우리가 직면하게 되는 적대감은 우리 자신의 이기심이나 무모함의 결과일 때가 많다. 우리가 위협한 사람들에 의해서 박해를 받았다면 그것은 순교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순교란 그리스도처럼 하느님 사랑에 대한 단순한 증거가 되는 것이고 이미 그곳에 있는 선이나 악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드러나게 된다

1889년 11월 17일에 시복되었고, 1954년 6월 12일 비오 12세에 의하여 시성되었다.

 

 "하나의 결론 때문에 순교자가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하나의 견해 때문에 순교자가 되는 사람도 없으며, 순교자를 만드는 것은 오직 신앙이다."

(뉴만 추기경, ’연석 회의에서의 연설’에서)

 

 

 

 

성 베드로 사제 순교자에 대한 찬사에서

 

순교자들의 피는 그리스도인의 씨앗이다

 

베드로는 마리아회에 입회하여 수도 생활을 시작하자마자 자신의 요청에 따라 오세아니아주로 파견되어 아직 그리스도의 이름이 전파되지 않은 태평양의 푸투나섬에 발을 디뎠다.

그 곳에서 그를 어디에나 동행했던 수사는 그의 선교 생활을 이렇게 묘사한다.

 

"베드로는 태양열로 살갗이 그을고 때로는 배고픔으로 시달리면서 전교 후 집으로 돌아 올때 땀으로 범벅되어 피곤에 눌려 있었지만,

언제나 활기로 차 있었고 흡사 휴식에서 돌아오는 것처럼 정신적으로 생기 있고 쾌활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한 번만이 아니라 거의 매일같이 그러했습니다.

그는 푸투나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거절하지 않았고 자신을 박해하는 사람들조차 언제나 이해해 주었습니다.

비록 그들의 행동이 거칠고 위협적이라도 그들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모든 이에게 비할 수 없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푸투나 주민들이 그를 보고 "큰 마음을 지닌 사람"이라고 부른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는 동료 수사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이 어려운 선교직에서는 우리가 성인이 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꾸준히 전파했으나 수고에 비해 매우 적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래도 굽히지 않고 선교 사업에 용감히 달려들어 주민들의 영적이고 현실적인 필요에 봉사하였다.

 

언제나 그리스도의 모범과 "한 사람은 심고 다른 사람은 거둔다."라는 주님의 말씀에 의탁하여, 깊은 신심으로 사랑했던 천주의 모친의 도움을 쉬지 않고 구했다.

그의 그리스도교 신앙의 선포는 푸투나 추장들이 주민들을 자기 지배하에 두려고 장려하고 있던 악령들에 대한 예배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 때문에 추장들은 베드로가 뿌린 그리스도교 신앙의 씨앗들을 그를 죽임으로 해서 없애 버리려고 하여 그를 처참하게 살해했다.

 

그러나 순교하기 전날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죽어도 상관 없습니다. 이 섬에 그리스도의 신앙은 너무도 견고히 뿌리를 박았기에 내가 죽는다 해서 제거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순교자의 피는 무엇보다 먼저 푸투나 주민 가운데서 열매를 맺었다.

즉, 그들은 모두 몇 년 지나지 않아 그리스도의 신앙을 받아들였고 오세아니아주의 다른 섬들도 그 수확을 함께 나누었다.

이제는 베드로를 그들의 첫 순교자로 여기고 그의 전구를 비는 그리스도교 교회들이 번창하고 있다.

 

 

 

 

 

 

♬Kyrie-Mozart MissaK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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