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음동성당 게시판

*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1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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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국길 [fcan] 쪽지 캡슐

2004-10-13 ㅣ No.3669

연중 제28주간 화요일 (2004-10-12)

독서 : 사하 5,1-6 복음 : 루가 11,37-41

* 기적의 값 *

그때에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어느 바리사이파 사람의 저녁 초대를 받아 그 집에 들어가 식탁에 앉으셨다. 그런데 예수께서 손 씻는 의식을 치르지 않고 음식을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 바리사이파 사람은 깜짝 놀랐다. 그래서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닦아놓지만 속에는 착취와 사악이 가득차 있다. 이 어리석은 사람들아, 겉을 만드신 분이 속도 만드신 것을 모르느냐? 그릇 속에 담긴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다 깨끗해질 것이다.”
(루가 11,37-­41)

사람들과 관계를 갖다 보면 가끔 상처를 받습니다. 소중한 사람들 때문일 땐 더 그렇습니다.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겉과 속이 달라 실망하는 경우엔 훨씬 큰 아픔으로 남습니다.
나무도 겉과 속이 다른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외풍을 견뎌야 하는 거친 겉껍질이 그 속과 다른 것은 당연하겠지만 같은 줄기의 속도 안쪽과 바깥쪽이 다르다고 하네요. 이를 심재(心材)와 변재(邊材)라고 부른답니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는 주목은 줄기가 붉어 주목(朱木)인데, 그 속은 더욱 붉다고 합니다. 또 황벽나무는 황경피라는 생약명을 가지고 있는데 나무 겉은 연한 잿빛이지만 속껍질은 진한 노란색이어서 약이나 염료로 이용합니다.
가장 심한 경우는 감나무입니다. 심재 부분이 아주 검은색이 납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먹감나무라고도 한다네요. 전통공예에서 장을 짤 때 까만 무늬는 바로 이 부분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나무와 사람의 ‘속 다르고 겉 다르기’가 차이가 나는 것은 나무의 다른 속은 언제나 예측할 수 있는 그 나무의 특징이 되는 동시에 굳고 단단하여 가치를 높여가는 반면, 사람의 이런 모습은 불신과 상처를 준다는 점입니다.
상처를 받아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는 말을 하고 싶을 때 이 이야기를 기억하곤 합니다. 내가 마음에 담아야 할 것은 나를 옭아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선희(서울대교구 대방동 천주교회)

- 겨울날의 동화 -

1969년 겨울, 일월 십일 아침, 여덟시가 조금 지날
무렵이었다.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그리고
마당 가득 눈이 내렸다
내가 아직 이불 속에 있는데
엄마가 나를 소리쳐 불렀다
눈이 이렇게 많이 왔는데 넌 아직도
잠만 자고 있니! 나는 눈을 부비며 마당으로 나왔다
난 이제 열 살이었다 버릇 없는 새들이 담장 위에서
내가 늦잠을 잔 걸 갖고 입방아를 찧어댔다.
외박 전문가인 지빠귀새는 내 눈길을 피하려고
일부러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눈은 이미 그쳤지만
신발과 지붕들이 눈에 덮여 있었다

나는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를 걸어 집 뒤의
언덕으로 올라갔다 그곳에
붉은 열매들이 있었다
가시나무에 매달린 붉은 열매들
그때 내 발자국소리를 듣고
가시나무에 앉은 텃새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 순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그때 난 갑자기
어떤 걸 알아 버렸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것이 내 생각 속으로 들어왔다 내 삶을
지배하게 될 어떤 것이, 작은 붉은 열매와도 같은
어떤 것이 나를, 내 생각을 사로잡아 버렸다

그후로 오랫동안
나는 겨울의 마른 열매들처럼
바람 하나에도 부스럭거려야 했다

언덕 위에서는 멀리
저수지가 보였다 저수지는 얼고 그 위에
하얗게 눈이 덮여 있었다
그때 누군가 소리쳤다
저 붉은 잎들 좀 봐, 바람에 날려가는! 저수지 위에 흩날리는
붉은 잎들! 흰 눈과 함께 붉은 잎들이
어디론가 날려가고 있었다 그것들은 그 해 겨울의
마지막 남은 나뭇잎들이었다

- 류시화의 詩중에서 -

님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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