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음동성당 게시판

끝없는 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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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학남 [obbji] 쪽지 캡슐

2004-10-13 ㅣ No.3674

 

     40여년 전 초등학교 시절, 
     동급생 중에 동희라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녀는우리집에서 가까운 곳에 살았고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남동생 둘을 돌보아야 했다.  
     아버지는 생선장사를 하지만
     장사가 잘 되지 않아 어렵게 지냈다.

     늘 차림새가 초라하고 더러워 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탓도 있었겠지만, 
     어린 동생들 돌보며 집안 살림까지 하려니 오죽 했을까.

     그런 동희가 6학년이 되었을 때, 
     내 옆 자리에 앉게 되었다.  

     더욱이 운 나쁘게도 
     그녀보다 약간 더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과 
     좀 더 부유하게 사는 아이들이 
     그녀의 주위를 둘러싸는 형태가 되었다. 
     동희도 공부를 잘했다.

      건방지고 입이 거친 나는 앞장서서
      그녀를 못살게 굴었다.

     "더러워... 좀 더 떨어져 앉아!"
     "이 옮기지 마, 더럽게!"

     다른 악동들도 덩달아 놀려댔다.

     "생선비린내 심하니까, 아무도 얘 옆에는 가지마!!"
     "야!!  넌 늘 같은 옷만 입냐?"
     "머리 좀 감아라. 이 떨어지겠다."

     동희는 얼굴을 붉히면서도 
     이를 꽉 다물고 눈물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동희의 훌륭한 점은 담임에게
     한번도 고자질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비겁한 우리들은 동희가 고자질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입에도 담지 못할 욕설을 하며 매일 놀려댔다.

     그런 어느날, 한자시험을 보게 되었다.
     아무리 해도 생각이 안나는 두 문제를 놓고 고민하던 중 
     동희의 답안지를 슬쩍 넘겨보니 맞는 답이 적혀있어
     비겁하지만 그대로 베껴 썼다.

     다음 날, 선생님이 답안지를 돌려주며
     나를 칭찬 해 주셨다. 

     "잘 했다. 만점 받은 아이는 너 혼자야"

     좀 꺼림직 했지만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정작 동희의 답안지를 보고 깜짝 놀랬다. 
     동희는 한 문제를 틀려 98점을 받은 것이었다.  
     내가 컨닝을 하지 않았다면 
     동희가 최고 득점자가 되었을것이다.

     동희는 "역시 대단하구나. 축하해"라며
     미소를 지으며 축하해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라는 놈은 "문제가 쉬웠거든"
     이라며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참으로 어리석고 역겨웠던 나는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동희에게 사과해야 된다고 생각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런 동희에게 더 참담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업이 끝난 다음 동희의 답안지를 본 악동들이

     "너 친구 것을 보고 베꼈지? 네가 어떻게 98점을 받냐?"
     며 입을 모아 공격했다.  
     그때만큼은 아무리 못된 나도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그 악동들이 계속 동희를 비난하는
     것을 듣고 있는 사이에 나도 모르게
     동희에게 너무나 심한 말을 하고 말았다.

     "너, 내 답안지보고 베꼈지. 틀림없어.
     더럽고 아주 뻔뻔 스럽군"

     "난 절대로 베끼지 않았어! 
     입고있는 옷이나 머리는 더러워도, 
     마음만은 깨끗하다고!!!!"
     동희는 책상에 엎드려 울음을 터뜨렸다.

     "나를 얼마나 더 괴롭혀야겠니?얼마나..."
     동희는 울면서 창고쪽으로 달려갔다.

     나는 동희의 뒤를 쫓아가 무릎을 꿇고 
     빌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지만, 용기가 없었다.

     나는 졸업식이 있을 때까지도 동희에게 사과하지 못했다.  
     그리고 졸업식 날 저녁
     집에 돌아와 '졸업문집'을 꺼내 읽던 나는
     베개를 온통 눈물로 적시고 말았다.
     동희가 쓴 글의 마지막 두 줄이 
     나의 가슴을 후벼파고 있었다.

     '내가 지금 가장 원하는 것은 엄마가 아니라, 
     진정한 친구입니다. 그리고 깨끗한 옷입니다.'


     현재 나는 여학생이 훨씬 많은 대학교단에 강의를 하고 있다. 
     기회 있을 때마다 후회와 반성의 마음으로 
     초등학교시절의 '못된 짓'을 들려주곤 한다. 

     그 때마다 두 가지 곤란한 일이 있는데,   
     하나는 내가 말하며 눈물을 흘리고 만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듣는 학생들도 엉엉 울어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졸업후의 동희소식은 아직까지 듣지 못했다.
     마음이 강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여성이니
     틀림없이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줄 믿는다.  
     좋은 가족과 친구들에 둘러싸여 
     잘 지내고 있을 것이다.

     그때 그 '졸업문집'을 못 보았다면
     현재의 나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내가 지금 가장 원하는 것은 엄마가 아니라,
     진정한 친구입니다. 그리고 깨끗한 옷입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후회와 참회의 심정으로 
     용서를 빌고 또 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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