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음동성당 게시판

* 구원의 도착증(1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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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국길 [fcan] 쪽지 캡슐

2004-10-16 ㅣ No.3683

연중 제28주간 토요일 (2004-10-16)

독서 : 에페 1,15-23 복음 : 루가 12,8-12

* 구원 도착증 *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하겠다.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사람의 아들을 거역하여 말하는 사람은 용서를 받을 수 있어도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은 용서를 받지 못한다. 너희는 회당이나 관리나 권력자들 앞에 끌려갈 때에 무슨 말로 어떻게 항변할까 걱정하지 말라. 성령께서 너희가 해야 할 말을 바로 그 자리에서 일러주실 것이다.”
(루가 12,8­-12)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를 소홀히 하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주님으로부터 파견받은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은 먼저 주님 앞에서 기도하고, 부탁받은 일이 진정으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인지 아닌지를 분별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주님의 뜻이 기도 안에서 드러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요즈음 부쩍 이런 생각이 듭니다. 주님께서 가르치는 대로 삶에서 요구되는 것을 실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삶을 주관하시도록 허락하는 것이 우선되지 않으면 하느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한다고 하면서 사실은 나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지요. 하느님 뜻에 따라 ‘파견받은 자’가 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봉사활동을 하면서 어떤 요구가 들어왔을 때 거절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헨리 나웬은 어떤 요구이든지 즉각 반응하지 말라고 합니다. 정신없이 복음전파와 봉사활동에만 몰두하지 말라고. 그 까닭은 ‘구원 도착증(倒錯症)에 걸린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구세주 콤플렉스에 걸린 사람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입니다. 이러한 병(?)에 걸린 사람은 모임이란 모임에는 다 나가 한 말씀하고, 필요로 하면 즉시 뛰어갑니다. 아무리 몸이 피곤해도, 아무리 정신이 지쳐 있다 하더라도 그렇지요. 언뜻 보면 그는 파견받은 자로서의 본분을 다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구원 도착증’이란 병을 앓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의미입니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조차도 온 세상을 다 구원해야 한다는 강박감을 갖고 모든 자리, 모든 모임에 참석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팔레스티나에서만 활동하셨습니다. 온 세상의 구원은 성령께서 제자들을 이끌고 이루시도록 남겨놓으셨습니다. 그런데 구원 도착증에 걸린 사람은 모든 구원사업을 자신이 하지 않으면 안 되기나 하듯이 뛰어다닙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지 않고 뛰어다니기에 분주함 속에 복음정신은 숨막혀 죽어버리고 남은 것은 사업가 정신뿐인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께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활동하기보다는 일 중심, 이해 중심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우리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 두시는 분께 나를 맡기며 신앙의 연륜을 쌓아가고 싶습니다.

이선희(서울대교구 대방동 천주교회)

- 슬픔에게 안부를 묻다 -

너였구나
나무 뒤에 숨어 있던 것이
인기척에 부스럭거려서
여우처럼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이

슬픔 너였구나
나는 이 길을 조용히 지나가려 했었다

날이 저물기 전에
서둘러 이 겨울숲을 떠나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만 너를 깨우고 말았구나
내가 탄 말도 놀라서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숲 사이 작은 강물도 울음을 죽이고
잎들은 낮은 곳으로 모인다

여기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또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한때 이곳에 울려퍼지던 메아리의 주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무들 사이를 오가는 흰새의 날개들 같던
그 눈부심은
박수치며 날아오르던 그 세월들은

너였구나
이 길 처음부터 나를 따라오던 것이
서리 묻은 나뭇가지를 흔들어
까마귀처럼 놀라게 하는 것이

너였구나
나는 그냥 지나가려 했었다
서둘러 말을 이 겨울숲과 작별하려 했었다
그런데 그만 너에게 들키고 말았구나
슬픔 너였구나

- 류시화의 詩중에서 -


님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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