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의 작은터

[음반소개]들국화에게 헌정을..(퍼온글)

인쇄

조진형 [solo0001] 쪽지 캡슐

2001-03-10 ㅣ No.8215

열심히 공부하세’나 ‘아 대한민국’이 TV에서 울려퍼지던 85년 전후입니다. 앨범마다 소위 ‘건전가요’가 한곡씩 실리던 시절이기도 합니다. 검은 바탕색에 전인권·최성원·허성욱·조덕환의 사진이 4각 균할분등된 앨범이 발매됩니다. 마치 비틀스의 마지막 공식앨범 ‘렛 잇 비(Let It Be)’를 겨냥한 듯한. 우리는 그 앨범을 들국화의 1집, 혹은 한국 록 음악사 최고 명반이라 부릅니다.

 

이전 음악과는 달리 들국화는 젊은 세대만의 감수성에 직접 다가갔습니다. “세상을 너무나 모르지만” “울며 웃으며 찾아헤멘 모든 꿈”을 ‘그것만이 내 세상’이라고 단언하고,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행진’하자고 호소합니다. 물론 이들의 선언과 호소는 다분히 관념적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하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가는 새떼를 보며 날아갔으면 하지만 각각 자기 자리에 주저앉아야(황지우)” 했던 5공화국 시절의 젊은이들을 들국화는 단숨에 사로잡습니다.

 

멤버 모두가 곡을 쓰고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비틀스’식 그룹 개념 역시 당시로서는 낯설고 새롭기만 했습니다. 지금이야 HOT와 god도 보여주지만 전인권의 폭발적인 모습과 최성원의 속삭이는 듯한 부드러움의 대비는 들국화의 매력을 더해주었죠. 라디오 방송에 출연, “아무도 우리를 불러주지 않기 때문에 TV에 나가지 못한다”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수백차례의 공연을 벌이며 86년 4만여명의 관객을 불러들인 들국화는 매일매일 한국 록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었습니다.

 

전인권의 수차례 대마초 파동과 허성욱의 사망이 지나 어느덧 15년이 흘렀습니다. 신중현과 산울림에 이어 후배 음악인들이 그 뜻을 기려 헌정(獻呈)해야할 대상은 마땅히 들국화였을 지도 모릅니다. 신중현이 한국 록음악을 만들고, 산울림이 사이키델릭·프로그레시브 등 다채로운 색깔을 입혔다면, 다음은 젊은이들에게 록 정신을 주입했던 들국화의 차례이었겠죠.

 

윤도현밴드의 ‘행진’에서 이은미의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헌정 앨범은 들국화 1집의 순서를 그대로 따라갑니다. 트리뷰트 앨범의 가치가 바치는 대상에게 사랑과 존경을 표하고 그 정신을 기리는데 있다면 당연한 순서일 수 있겠습니다.

 

권인하·박효신이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신구(新舊)의 조화를 보여줍니다. 선배의 정직한 절창과 후배의 맛스러운 목소리가 전인권의 솔로를 멋진 2중주로 새롭게 바꿔놓았습니다. 이승환은 어린이합창단과 오케스트라를 동원, ‘사랑일 뿐이야’를 예쁘게 해석했습니다. 전인권의 전성기 시절 목소리는 혼자 감당하기는 너무 버거웠던 것일까요. 오직 ‘맨발의 디바’ 이은미만이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에 정면도전, 폭발력을 과시합니다.

 

크라잉넛·언니네이발관·렐리쉬의 ’세계로 가는 기차’‘솔직할 수 있도록’ ‘너는’ 세 곡은 해석이 독특한 만큼 듣는 재미를 더합니다. 크라잉넛은 역시나 신나는 록앤롤로 마구 불러제끼고, 언니네이발관은 몽환적인 맛을 살짝 입힙니다.

 

윤도현밴드나 델리 스파이스는 ‘행진’과 ‘내가 찾는 아이’를 최대한 원곡과 흡사한 느낌을 주게끔 부르고 연주합니다. 헌정앨범에는 재해석이라는 의미가 분명 들어있지만 그것이 ‘멋대로’가 아닌 것도 분명하지요. 큰 욕심을 내지 않았다는 점에 아쉬움을 느끼는 이들도 있지만, 저는 ‘정직한 젊은이’ 윤도현이 부르는 ‘행진’이 맘에 쏙 들었습니다.

 

트리뷰트 앨범은 90년대 팝음악계의 두드러진 특징입니다. 나쁘게 보면 ‘하늘 아래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없는’ 음악계가 과거의 것들을 다시 써먹는다, 팔아먹는다라고도 볼 수 있겠죠.

 

하지만 레코드 판매나 콘서트보다 TV·라디오와 같은 방송매체 출연에 의존하고, 방송에 소개되는 대중음악은 10대가 즐기는 댄스음악 편향인 한국. 다른 세대에게 어필할 수 있는 음악이나 다른 장르의 음악은 설령 소개된다 할지라도 그야말로 구색맞추기에 지나지 않는 이 땅. 인기가수 탈세사건이나 가수 매니저와 방송국 PD 사이의 비리가 주기적으로 등장하는 나라. 최소한 이 땅에서는 상업성이라기보다 ‘한국 록 음악사 바로 세우기’의 일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너리즘에 바졌던 80년대 가요계에 자유롭고 원색적인 자신만의 음악을 토해낸 언더의 선봉자(강헌)” 들국화의 정신을 후배들이 되새기는 모습은 아름답게만 보입니다.

 

신중현·산울림·들국화. 한국 록 음악의 종적(縱的) 계보를 세우는 작업이 한창입니다. 이 ‘명예의 전당’에 오를 다음 타자는 누구일까요. 전인권·최성욱·주찬권의 노래부르는 얼굴이 담긴 ‘A Tribute to 들국화’의 표지 그림을 보며 마음 속에 다음 후보를 천천히 그려봅니다.

디지틀 조선일보/김성현 드림 danpa@chosun.com

 

 

 

 



24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