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의 작은터

아름다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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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동 [nuri] 쪽지 캡슐

2001-03-12 ㅣ No.8224

아름다운 사람

 

 

 

지난해 세모, 세미나에 참석 차 서울엘 갔습니다.

광화문 근처 어느 빌딩이었는데 회의 도중 나는 슬그머니 자리를 빠져 나왔습니다.

여독 때문인지 골치가 아파 오더군요. 주머니를 뒤져 커피를 뽑았습니다.

습관처럼 창 밖을 내다보았지요. 정오를 넘어서고 있는 거리엔 자선 냄비가 놓여져 있고 구세군의 종소리는 하얀 눈발들 사이를 시나브로 날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잿빛 옷의 스님 한 분이 나타나더니 몇 미터쯤 떨어진 곳에 자리를 깔고 바리때를 올려 놓았습니다. 그러더니 목탁을 꺼내어 염불을 시작하는 게 아니겠어요. 구세군의 종소리와 스님의 목탁 소리. 사람들은 스스로도 그다지 조화롭지 못하면서도 타인의 부조화엔 어김없이 질타를 보내곤 하죠.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방관자이던 걸음들까지 그 앞을 머뭇거리며 구경을 했습니다. 다가가 보지 않아도 그들이 흘리는 야릇한 미소가 보였습니다.

 

 

땅거미가 어둑할 무렵 세미나는 끝이 났고 모처럼의 해후인지라 삼삼오오 짝을 지어 가며 회포를 풀었습니다. 그러다가 눈길이 창 밖으로 갔습니다. 구세군의 자선 냄비는 여전히 사랑을 호소하고 있었으나 스님은 자리를 거두어 귀가 채비를 하던 참이었습니다. 나는 우리나라 종교 인구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많을까를 생각하며 속으로 자선냄비와 바리때의 무게를 저울질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자리 정돈을 마친 스님이 성큼성큼 자선냄비로 다가가더니 바리때의 돈을 하나도 남김없이 부어 주는 게 아니겠습니까.

 

 

나는 보았습니다.

총총히 돌아서는 젊은 스님의 뒷모습에서 우리들의 희망을 본 것입니다.

 

 

 

좋은생각 2월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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