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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아탑]시(문익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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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호 [jhp94] 쪽지 캡슐

1999-10-25 ㅣ No.1580

하느님의 바보들이여

 

지은이 : 문익환

 

 

  어떤 일이 있어도 늙어서는 안 됩니다.

  언제까지라도 젊어야 합니다.

  싱싱하게 젊으면서도 깊어야 합니다.

  바다만큼 되기야 어찌 바라겠습니까마는

  두세 키 정도 우물은 되어야 합니다.

  어찌 사람뿐이겠습니까.

  마소의 타는 목까지 축여주는 시원한 물이

  흥건히 솟아나는 우물은 되어야 합니다.

  높은 하늘이야 쳐다보면서

  마음은 넓은 벌판이어야 합니다.

  탁 트인 지평선으로 가슴 열리는

  벌판은 못 돼도 널찍한 뜨락쯤은 되어야 합니다.

  오가는 길손들 지친 몸 쉬어 갈

  나무 그늘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덥썩 잡아주는 손과 손의 따뜻한

  온기야 하느님의 뛰는 가슴이지요

  물을 떠다 발을 씻어주는

  마음이야 하느님의 눈물이지요.

  냉수 한 그릇에 오가는 인정이야

  살맛 없는 세상 맛내는 양념이지요.

  이러나 저러나 좀 바보스러워야 합니다.

  받는 것보다야 주는 일이 즐거우려면

  좀 바보스러워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바보스런 하느님의 바보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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