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게시판

[상아탑]시(최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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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호 [jhp94] 쪽지 캡슐

1999-10-25 ㅣ No.1582

사는 이유

 

지은이 : 최영미

 

 

      투명한 것은 날 취하게 한다

      시가 그렇고

      술이 그렇고

      아가의 뒤뚱한 걸음마가

      어제 만난 그의 지친 얼굴이

      안부없는 사랑이 그렇고

      지하철을 접수한 여중생들의 깔깔 웃음이

      생각나면 구길수 있는 흰 종이가

      창밖의 비가 그렇고

      빗소리를 죽이는 강아지의 컹컹거림이

      매일 되풀이 되는 어머니의 넋두리가 그렇다.

 

 

      누군가와 싸울때마다 난 투명해진다

      치열하게

      비어가며

      투명해진다

      아직 건재하다는 증명

      아직 진통할 수 있다는 증명

      아직 살아 있다는 무엇

 

 

      투명한 것끼리 투명하게 싸운 날은

      아무리 마셔도 술이

      오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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