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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고 선수들의 슬픈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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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린 [dlchang] 쪽지 캡슐

2006-06-15 ㅣ No.5276

 토고선수들의 슬픈 눈빛

▲ 박은주 엔터테인먼트부장
패자의 눈빛이 늘 슬퍼 보이는 건 아니다. 그러나 13일 밤, 어떤 사람들은 토고 선수들의 눈빛이 너무 슬퍼 보였다고, 이기고도 미안하다고 말했다. 월드컵 원정 경기 사상 처음으로 우리나라가 1승을 기록했다는 그 의미 있는 밤, 적어도 어떤 사람들은 ‘슬픈 눈빛’의 그들을 보았고, 슬퍼졌다.

우리는 토고를 지구상에 존재하는, 피와 살이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라가 아니라 그저 무찔러야 할 상대로 처음 인식했다. 어쩔 수 없는 ‘게임의 법칙’이다. 그러나 그 법칙에도 일정한 예의가 있어야 한다면, 세계의 언론들은 그걸 잠깐 상실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토고 선수들이 돈 문제로 불화를 일으키기 시작했을 때, 우리 언론을 포함한 대다수 서방언론은 돈 때문에 훈련을 거부하고, 견디다 못한 감독이 뛰쳐 나가고, 감독 없다고 나이트클럽에나 놀러 다니는 무지한 사람들로 그들을 표현했다. 물론 완전히 잘못되거나 거짓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토고 선수들의 요구의 이면을 보는 데는 소홀했다. 그들이 요구한 1억9000만원이 결코 적은 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다른 나라 선수들이 받는 월드컵 참가수당에 비교하면 많은 것도 아니다. 문제는 4000만달러가 넘는 베컴의 이적료는 ‘몸값’으로 표현되는데 반해, 토고 축구선수들의 ‘출전비’ 요구는 욕심으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지단이나 호나우두가 “몸값 제대로 계산해달라”며 보이콧 움직임을 보였더라면, 스포츠 산업의 규모와 그들의 요구를 조목조목 따지며 과잉여부를 분석했을 것이다. 일방적으로 ‘콩가루’를 운운하지는 않았을 게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분쟁을 “돈 맛을 안, 없는 것들의 철부지 같은 행동” “돈에만 홀려 스포츠맨 정신을 팔아버린 선수들”로 맘 편하게 생각해왔다. 토고 선수들의 보이콧 위협은 한 선수가 부족(部族)을 책임져야 하는 토고 원주민 사회 특유의 생계방식과 관련된 문제이며, 토고축구협회가 FIFA에서 받을 돈을 선수들에게 제대로만 쓴다면 결코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거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그러나 온 국민이 토고를 우스운 나라로 아는 게 ‘대세’인 흐름을 돌려놓지는 못했다. 백색인의 동양인 모멸에 칼날처럼 반응하는 우리는, 그 칼날을 돌려 우리보다 못사는 다른 유색인종에 대해 더욱 못되게 굴어왔다.

마음이 아팠던 풍경 또 하나는 경기장에 모인 응원객의 숫자다. 압도적인 한국 응원단의 숫자에 비해 토고 응원단은 ‘한 줌’도 안 되었다. 불법체류자를 우려한 토고의 전(前) 통치국가이며, 현재 원조국인 독일은 2000여 명의 토고 응원단 대부분에게 비자를 내주지 않았다고 한다. 토고는 542만9000명(2003년) 인구 중 도시 거주자는 20%에도 미치지 못하고, 대다수는 농업에 종사한다. 독일이 요구한 ‘통장 잔고 증명’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게 토고인들의 주장이다.

우리가 축구에서 뭔가 얻을 게 있다면, 그건 반드시 통쾌한 승리감만은 아닐 것이다. 승리를 확인하는 건 종료휘슬이 울려야 가능하지만, 90분간 사람들이 열광하는 건 정치고 경제고 편견이고 다 벗어던지고 몸으로 뛰는 선수들과 관중의 ‘하나됨’이다. 월드컵이 ‘돈에 찌든 공 잔치’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올림픽을 능가하는 인기를 누리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어젯밤 우리는 조롱당했던 토고 선수들이 그저 ‘축구 선수’로 90분간 열심히 뛰는 것을 보았다. 이제 그들의 슬픈 눈빛에 격려의 박수를 보낼 시간이다.

박은주 · 엔터테인먼트부장 zeen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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