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덕동성당 게시판

바다가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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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현 [VeNiVeDiVeCi] 쪽지 캡슐

1999-07-20 ㅣ No.652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바보같이 순수한, 그러나 불굴의 의지를 지닌 파도를 만난다.

 

저 수평선 너머로부터 먼 여정을 달려와

끊임없이 백사장을 오르고 또 오르는 파도.

 

결국에는 하나도 남지 않고 모두가 부서지지만

그는 조금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오른다.

 

다시 한번. 다시 한번.

 

맑고 밝은 날도, 비가 오는 날도,

눈이 오거나 풍랑이 이는 날도 파도는 쉴 줄을 모른다.

 

오히려 자신을 채찍질하는 바람이 더 세어질수록

파도는 자기의 힘을 배가시켜 오르고 또 오른다.

 

그래서 파도

어리석어 보이지만 실로 두려울만한 힘을 지녔던 돌격대, 가미가제를 떠올리게 한다.

 

부서지고 또 부서져도 결코 그치지 않는

그 순수한 도.전.정.신.

 

 

 

 

바보가 착한 것은 아니지만,

 

착한 것이 바보인 이 세상.

 

속이는 자는 능력이 있고,

 

속는 자는 죄인이 되어버린다.

 

 

민첩한 재치와 번뜩이는 기지, 또는 동정도 분노도 일소해 버릴 수 있는 빈정거림과 익살.

 

이러한 것들이 우리 시대에 요구되는 '인격'의 요소가 아닌지.

 

..남을 웃길 수는 있어도 울릴 만한 감동을 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이 세상 좌절하지 않고 살기 위해선..   더 영악해져야 할거다.

 

더 무정해지고, 더 각박해지고,

 

어린 날 꿈은 한바탕 웃음으로 잊어버리고..

 

내가 먼저 상처받기 두려우니 먼저 상처를 주고,

 

시대적 요구에 적절히 부응하기 위해 적당한 타협도 하고,

 

남들의 비웃음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 내가 먼저 '순수'라는 단어를 비웃어주고...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우직한 파도 앞에 서면 그런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워질거다.

 

 

이제껏 바닷가 여러 번 가 봤지만

 

백사장으로 달려오는 파도들 중에

 

잔머리 굴리는 녀석은 한 번도 본적 없다.

 

 

 

순수한 도.전.정.신 이 어느새 사라지고

 

마음 가득 안일한 세상물로 물들었을 때

 

바다에 그 마음을 씻고 싶다.

 

끊임없이 살아 요동치는 그 파도에 몸을 던지고 싶다.

 

 

 

아우.. 바다 가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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