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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그 기다림의 미학 - 더 이상 기다리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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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1동성당 [suyu1] 쪽지 캡슐

2008-11-29 ㅣ No.10399

[기획] 대림, 그 기다림의 미학 - 더 이상 기다리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기다리지 않으면 오지 않는다

 


 
▲ 대림시기가 지나면 우리는 또다시 '성탄'이 찾아올 것임을 안다.
하지만 어떻게 아기 예수를 기다리느냐에 따라 내 마음의 예수는 찾아올수도, 찾아오지 않을수도 있다.
 
 
내가 원하는 '무엇'을 만나기 위해서는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기다림은 아름답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기다리려고 하지 않는다. 바쁜 일상 속에서 편한 것만을 지향하며 '기다림'을 원하지 않는다. 기다리는 시간이 짧아진 만큼, 소중함도 작아져버렸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을 맞아 더 이상 기다리지 않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떠올리고 기다림의 아름다움을 돌아본다.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아 그리운 만큼, 아기 예수 또한 우리는 과연 얼마나 절실하게 기다렸는지 반성한다. 기다리든, 기다리지 않던 우리에게 '4주'라는 대림의 시간은 주어졌다.

가마솥 → 전기밥솥

가마솥에 밥을 지으면 밥맛은 다르다. 장작불이 타들어가며 구수한 밥 냄새를 일으켰던 솥 안에는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밥이 지어지길 갈망하는 '기다림'이 있었다. 이제 우리에게는 버튼만 누르면 어떤 밥이든 뚝딱 지어내는 전기밥솥이 있다. 편하게 밥을 먹으면서도 그 시절의 밥맛을 떠올릴 수 없는 것은 '기다림'이라는 재료가 빠졌기 때문일 것이다.

삐삐 → 휴대폰

'만남'을 위해 사서함에 목소리를 남기고, '486(사랑해)'이라는 번호를 남기면서 우리는 설레었다. 재빠른 연락이 오지 않아 애를 태우고, 엇나가는 만남이었을지라도, 기다리던 사람의 전화를 받았을 때 우리는 행복했다. '기다림'은 그토록 달콤하다.

전화번호를 누르면 바로 상대방의 목소리를 듣는 휴대폰에는 '설렘'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전화보다도 문자메시지를 선호하는지도 모른다.

편지 → 이메일, 메신저

밤을 꼬박 새며 부모님께, 혹은 군대 간 남자친구에게, 사랑하는 이들에게 편지를 써본 적이 있는가. 침을 묻혀 우표를 붙이고 우체통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답장에 대한 '기다림'이 있었기에 가벼웠다. 답장이라도 오는 날에는 오랜 '기다림'을 뒤로 하고 하루 종일 즐겁다. 기다리던 합격통지서 또한 그렇다.

이메일과 메신저, 인터넷을 통해 알아보는 요즘, 우리에게 '기다림'이 가져다주는 의미는 사라져간다.

필름카메라 → 디지털카메라

추억을 담은 필름은 현상되는 시간을 기다려야 했기에 기대가 됐다. 사진이 현상되면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진을 나누어보며 키득거리기도 했다. 나의 모습을 볼 수 없어 잘못 나오는 사진이 많았지만, 사진을 기다리는 시간만큼은 마냥 설레기만 하다. 이제 우리는 디지털 카메라를 통해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은 바로 지우고, 컴퓨터와 연결해 사진을 확인한다.
'기다림'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아직도 필름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다.

'기다림'이라는 선물

변해버린 시대를 따라 전기밥솥과 휴대폰, 메신저, 디지털 카메라를 통해 더 이상 기다리지 않는 것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이 시대에도 건강과 행복, 다시 만날 사랑처럼 반드시 기다려야 하는 것 또한 분명히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대림'을 통해 우리에게 '기다림'이라는 선물을 안겨줬다. 대림 4주일이 지나면 우리는 지난해처럼 또다시 '성탄'이 찾아올 것임을 안다. 하지만 어떻게 아기 예수를 기다리느냐에 따라 내 마음의 예수는 찾아올지도,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기다리지 않으면 오지 않는다.

오혜민 기자 gotcha@catholictimes.org

[기사원문 보기]
[가톨릭신문  2008.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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