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난 곳에 아무런 조처도 하지 않은 채 스쳐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얼마나 아리고 쓰린지. 상처 많은 우리 아이들은 계속 싸움을 통해 서로의 상처를 스치는 일을 반복한다. 서로 그런 의도가 아닌 줄 알면서도 눈을 흘기고, 잡아먹을 듯 욕을 하면서 쉽게 분노를 표출한다. 그런 아이들을 위하여 치료 공동체를 도입하여 서로의 성장과 변화를 도와주고 있는데 그 프로그램 중 하나가 ‘참 만남’이다. 다툼이 있을 때 곧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한숨 돌린 후에 분노를 조절하면서 자기의 입장을 밝히는 시간이다. 우리집엔 얌체가 있는데, 얼마나 얌체인지 국제란 말이 앞에 붙을 정도다. 그 애는 자기 잘못은 별게 아니고, 타인이 잘못한 것만 물고늘어진다. 그 ‘참 만남’ 자리에 우리집 ‘국제 얌체’가 참여하면 십중팔구 반성의 기색도 없이 “어, 그래. 그럼 미안하다” 한다. 그러고는 반대 입장이 되면 “너는 지금 말로만 하잖아” 한다. 그때마다 주변없는 애들은 대꾸도 못하고 속만 끓이곤 했다. 그런데 하루는 상대 아이가 “그래? 나는 네 사과를 안 받겠다. 너는 지난번에 ○○가 너에게 용서해 달라고 했을 때 절대 못한다고 그랬거든? 그래서 나도 너 용서할 맘이 없거든?” 하는 것이 아닌가. ‘국제 얌체’ 왈 “미안하다고 했는데 너는 사과도 안 받아주냐?”, “너도 마찬가지잖아. 너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러면서 어떻게 너는 미안하단 한마디로 끝내려고 하냐?” 주님의 기도를 하다 보면 청원의 기도문 속에 유일하게 조건부가 있다. 그것은 바로 용서함과 같이 용서해 달라는 부분이다. 용서해야만 용서받는 진리. 용서하지도 않으면서 용서받으려는 마음, 정말 국제 왕 얌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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