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말씀을 묵상하다가 ‘예수의 속을 떠보려고`…’라는 대목에서 좀 오래된 기억이 되살아나서 멈췄다. 덩지가 조금(?) 작은 편에 속하는 편인 나는 그것에 대한 보상 심리에서인지 성격은 상당히 다혈질이다. 미지근한 것이 싫고, 뒷말 똑 떨어지게 하기를 좋아하고, 앞뒤가 똑같게 살려고 애쓴다. 그래서 은근히 떠보는 말에는 화산폭발 일보직전까지 간다. 물론 타고난 성격도 그랬겠지만 더 강하게 굳어지게 된 사건이 있었다. 유기서원 시절, 아마도 다소 자유분방한 언행이 오해를 불러일으켰나 보다. 어떤 수녀님이 진실을 알아보고 싶었음인지 나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눈치코치 형성되기 전이어서 그 질문이 떠보는 것인지 무언지도 모르고 대답하고 있었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수녀님이 화가 나서 꽥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뭐야, 궁금하거든 제대로 물어보세요.” 그제야 그 질문이 나를 떠보기 위한 유도심문(?)이었음을 알았다. 그때의 그 열받음이란`…. 나는 그후로 상당히 쿨하게 살려고 했다. 때론 솔직함의 도가 지나칠 정도로 속을 여과 없이 보여서 평화방송의 한 프로그램에서 땅콩 수녀 하던 시절, 그 방송을 들은 다른 수도회 수녀님 한 분이 “아유, 수녀님. 너무 용감해요” 할 정도로 단순무식 솔직과가 되어버렸다. 아니, 감추는 것이 체질과 맞지 않게 변형된 듯싶다. 우리 아이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을 때도 아주 직선적이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나와 이야기를 하러 올 때는 진실만을 가지고 온다. 때론 솔직함이 아플 때도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오히려 그것이 더 신뢰하고 신뢰받을 수 있음을 체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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