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검정성당 자유 게시판

[퍼온글] 꿈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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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환 [ody] 쪽지 캡슐

2000-11-30 ㅣ No.1382

꿈의 해석이라는 프로이드(Freud)의 책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으시지요? 오늘은 꿈에 관한 개인적인 생각을 조금 나눌까 합니다. 많은 분들이 꿈에 대한 이해에 대해 질문을 하는 경우가 있지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꿈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소재로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곤 했지요. 태몽이야기에서도, 역사책에서도, 소설속에서도, 영화속에서도, 심지어는 성서 속에서도 꿈은 좋은 소재로 사용되어 왔다는 것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저의 해석은 꿈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프로이드가 말한대로 우리의 무의식의 반영일 것이고, 또 하나는 우리의 이성으로는 조금 식별이 명확하지 않은 신비스러운 체험이라고 말입니다. 보통 우리가 일상적으로 꾸는 꿈은 프로이드의 해석이 옳을겝니다. 하지만 때로는 우리의 무의식과는 전혀 상관없거나 유추시킬 수 없는 그런 꿈을 만나게 됩니다.

 

이런 예는 아주 많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아실 겁니다. 지난 금요일의 일이었습니다. 할머니 한 분이 오후 2시쯤 저를 찾아왔습니다. 한 손에는 담배 한 보루를 들고 말입니다. 그 때 저는 성당 마당의 휴지를 줍고 있었지요. "안녕하세요? 엄마!" "예, 안녕하세요? 신부님." "어쩐 일이십니까?" "저어~ 좀 말씀 좀 들어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그러세요. 이리로 오세요." 그리고 그 할머니를 눈덮힌 등나무 밑의 벤치로 모시고 자리를 잡았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조금 이상한 일이 있어서 이렇게 불쑥 찾아왔습니다. 어제 밤, 50년전에 죽은 어릴 적 소꿉친구를 꿈에서 만났습니다.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던 아이였기에 너무나 반가웠고, 그 당시의 얼굴이 너무 선명해서 반갑게 그 애의 이름을 불렀는데, 그 아이는 아주 슬픈 표정만을 지으며 쉽게 대답을 하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무엇인가를 부탁하려는 듯한 표정만을 지으며 잠시 머뭇거리다가 어디론가 사라졌지요. 그 아이의 이름은 용녀였답니다. 조선전쟁이 나고 인민군이 저 건너편 땅, 제가 살던 황해도 땅으로 밀려 왔지요. 그 당시 저와 그 아이는 둘도 없는 친구였고 늘 붙어다니던 사이였답니다. 제 나이 14살 정도 되었을 때지요. 그런데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아이는 인민군들의 심부름을 곧잘 하게되었고, 그 이후로 저의 부모들은 그 아이 곁에 가지를 못하게 했지요. 그래도 가끔은 몰래 만나서 수다를 떨고는 했습니다. 그 아이는 사실 조금은 모자라는 친구였어요. 그러다가 국방군이 올라왔을 때, 인민군의 편에 섰던 사람들을 잡아다가 죽이기 시작했지요. 그 때 용녀도 끌려갔고, 굴에 쳐넣어진 상태로 국방군의 총에 맞아 죽고 말았습니다. 그 당시 몹시 무서웠고 슬펐지만, 곧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남쪽으로 내려와서 우리 가족은 자리를 잡게 되었고, 저 역시 시집가고 아이 낳고 정신없이 사느라 그 아이에 대한 생각은 지금 이 때까지 해본 적이 없었답니다. 그런데. 어제 밤에 나타난 거에요. 신부님. 무슨 뜻이지요?" 할머니의 말씀을 듣고 저는 전혀 주저하지 않고 말씀드릴 수 있었습니다. "엄마, 기도가 무척 필요한 때인 것 같아요. 그 분을 위해서 미사도 드리고 생각날 때마다 기도해주세요. 아직 연혹에서 배회하고 계시군요. 엄마에게 부탁하러 오신거에요. 자신을 위해서 기도해달라고 말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할머니께 드리면서 어떤 작은 확신이 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대희년을 맞아 교구에서는 전대사의 은혜를 주시기 위해 순례본당을 정했고, 전대사의 은혜를 받기 위한 여러가지 교회의 가르침을 신자들에게 공포하였습니다. 우리 연평도는 기동성이 부족한 외진 곳이기에 교회로부터 대희년 순례본당으로 특별히 지정되었지요. 이곳 섬에 사는 이들의 불편한 교통을 감안한 교회의 따뜻한 사목적 배려였습니다. 그래서 50년전의 용녀라는 아이가 이곳을 찾아왔구나. 연혹의 방황으로부터 해방시켜달라고 유일한 친구이자 천주교 신자인 이 할머니를 찾아 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되었던 것입니다. 순례본당에서의 고해성사와 각종 성사 그리고 여러 가지 신심행위와 보속은 전대사를 얻을 수 있다고 교회는 말하고 있습니다. 모르는 분들을 위해서 전대사에 대한 용어를 쉽게 설명해드리면, 우리가 고해성사를 받더라도 잠벌은 남는다고 교회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잠벌을 받는 곳이 연혹이지요. 다시 말해 전대사를 받으면 연혹의 잠벌을 면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오랜 전통속에 내려오는 믿을 교리랍니다. 다시 말해 모든 사람이 이 세상에서의 삶은 다했을 때 반드시 연혹의 기간을 거치며 정화가 되는 것이지요. 물론, 신앙의 차원에서 소화가능한 이야깁니다. 佛家에서도 구천을 헤맨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는 가톨릭적으로 해석하면 연혹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도 무방할 것입니다. 물론 개신교에서는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직천당이란 교리를 말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이들의 이야기는 아주 답답한 이야깁니다.

 

저는 가끔 사제로서 신비스러운 체험을 하곤 합니다. 물론 제가 소화한 상태에서 얻어진 결론이지만요. 최근에 있던 일로서 100살이 다 된 할아버지가 2년여 넘는 병상에서의 싸움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임종의 순간을 이틀이나 버티시다가 제가 할아버지 곁으로 가서 임종경과 병자성사 그리고 마음의 평화를 위한 기도를 드렸을 때 비로소 마지막 눈물 한 방울을 떨구며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계셨습니다. 제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바라본 할아버지의 얼굴은 두려움과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습니다. 그분을 보는 순간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주위에 있는 분들에게 할아버지가 편히 눈을 감으시도록 기도하라고 간곡히 부탁했고, 저는 병자성사를 드리고 나서 그분의 손과 이마에 손을 올려놓고 온 마음을 다해서 그분만을 위해 기도드렸습니다. 그 순간 할아버지의 일그러진 얼굴이 환하게 평화를 찾더군요. 그리고 마지막 기도가 끝나자 한 방울의 눈물이 그분의 얼굴로 흘러내렸고 손을 바닥으로 내려놓으셨지요. 마치 할아버지와 저는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는 느낌, 그리고 모든 할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일치된 느낌을 온몸으로 가질 수 있었습니다. 사제로서 뜨거운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었지요. 이 양반이 나를 기다리고 계셨구나. 사제를 기다리셨구나 하는 확신 그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그분의 임종을 함께 지켜보던 모든 이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하느님의 현존을 깨닫는 듯 했습니다. 이 신비스러운 체험은 지금도 이곳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대희년을 맞이하여 우리가 해야 할 많은 기도들 중에 꼭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을 잊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낙태로 죽은 아이들의 영혼, 전쟁으로 희생된 영혼들, 굶어죽은 영혼들 등등 무수히 많은 주검들이 역사 속에 잠겨 있음을 우리는 압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부탁드립니다. 특별히 이 은혜로운 대희년을 통해서 더욱 필요한 기도임을 마음에 두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연평도에서....

 

<위의 글은 굿뉴스 밀알동호회 자유게시판에 실렸던 김대열 신부님의 글입니다. 위령성월 마지막날을 보내며 전대사에 대한 이해에 도움도 되실 것같아 올려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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