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계동성당 자유게시판 : 붓가는대로 마우스 가는대로 적어보세요

하루 밤에 만리장성을 쌓는다.

인쇄

김문규 [marco1998] 쪽지 캡슐

2011-04-22 ㅣ No.7386

하루 밤에 만리장성을 쌓는다.

인간은 세상만물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지혜로우면서도

한편으로 가장 추하고 비열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헌신적으로 사랑을 바치는 대상에게 감사와 찬미를 드리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잔인할 정도의 차가움을 드러내는 속성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인간은 모든 것을 하느님으로부터 받아 누릴 때 감사와 찬미를 드리기도 하지만,

자주 오만함과 무례함에 빠져 하느님 무서운 줄 모르고 기고만장하여

하느님의 은혜를 잊고 죄악의 삶을 살아가기도 합니다.


또한 그 무례함이 과잉되면 섬뜩한 오만함으로 상대를 죽어가게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 인류는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습니다.

이러한 비극적 드라마는 성경에서도 수없이 반복되는 이야기들이며,

인류역사 또한 비극으로 점철되어 있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하루 밤에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남자와 여자가 하루 밤 동안 깊은 사랑을 나누는

농염이 짙은 음란한 이야기라고 이해하며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한 것과 그 실제 이야기는 아주 다른 것이었습니다.


어느 외딴 집에 나그네가 하루 밤 신세를 지게 해 달라고 청해왔습니다.


그 집에는 혼인한 지 얼마 안 되는 젊은 부인이 혼자 지내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황제의 명령으로 혼인한 지 하루 만에 만리장성을 쌓는 부역꾼으로 끌려가고,

부인은 과부 아닌 과부가 되어 혼자 남게 된 불쌍한 처지였습니다.

부인은 남편을 사지로 보낸 지 하루만이라 젊은 나그네를 집에 들일 처지가 아니었지만

집이 아주 외딴 곳이라, 하루 밤을 재워주지 않으면 길가에 노숙을 할 수 밖에 없는

딱한 처지를 생각하여 어쩔 수 없이 나그네를 집에 머물도록 허락합니다.

그리고 변변치 않은 음식을 내어 나그네를 대접했습니다.

그런데 밤이 되자 신세를 지고 있던 나그네는 엉뚱한 다른 마음을 먹게 됩니다.

젊은 여인이 혼자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그는 탐욕에 빠져

여인이 잠들어 있는 안방으로 들어가 여인의 몸을 요구합니다.


여인은 나그네의 요구를 완강히 거부하며 자신은 혼인한 몸이며,

남편이 부역으로 끌려가 돌아 올 일이 막막하지만

그래도 남편이 다시 돌아올 날을 확신하며 기다리기로 작정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나그네는 부인에게 만리장성을 쌓는 부역으로 끌려가면

죽어서 송장이 될 때까지 그곳에서 일해야 한다고 말하며

남편을 기다리지 말고 자신과 혼인하여 새살림을 꾸리자고 애걸합니다.

여인은 나그네의 배은망덕과 무례함을 마음속으로 질책하며 지혜를 발휘합니다.


그녀는 일단 나그네를 진정시키고 나서,

그렇다면 당신이 남편에게 이별의 뜻을 전해 줄 수 있느냐고 말합니다.

그래야 자신도 새로 마음 편하게 혼인할 수 있겠다는 것이지요.

탐욕에 눈이 먼 나그네는 이별의 정표만 전해주면

젊고 아리따운 여인과 혼인할 수 있다는 생각에 여인의 청을 받아들입니다.

여인은 눈물을 흘리며 남편의 옷가지를 몇 가지 챙겨 보따리에 싸서 나그네에게 건네줍니다.

그리고 이것을 남편에게 전해주면 남편이 부인의 뜻을 이해하고

새로 혼인하는 것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루 밤을 무사히 넘긴 여인은 날이 밝자 나그네에게 아침을 대접하고

남편의 이름과 부역 장소를 알려주며 길을 재촉합니다.

나그네도 마음이 들떠 보따리를 챙겨들고 부역 장소로 향했습니다.


나그네는 부역꾼의 이름과 출신을 대며

부역꾼을 만나게 해 달라고 만리장성 감독관에게 말했습니다.

감독관은 나그네를 부역 장으로 들어가게 했고,

나그네는 부역에 시달리던 여인의 남편과 만나 옷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당시에 진나라 법은 ‘부역교대 법’이 있어서 누군가 옷을 부역꾼에게 전해주면

부역교대로 인정하는 관례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인의 신랑은 이름도 모르는 나그네가 전해준 새 옷을 입고

부역에서 해방되어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인의 고마움을 모르고 배은망덕을 저지른 나그네는

죽을 때까지 만리장성 부역을 하며 지내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하여 여인의 남편은 아내의 지혜로 단 하루 만에 만리장성을 쌓고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여인은 위기를 넘기고 하루 밤 만에 남편이 만리장성을 쌓고

집에 돌아올 수 있도록 지혜를 발휘했던 것입니다.


인간은 참으로 탐욕스러운 존재로 변할 때가 많습니다.

인간은 그 탐욕 때문에 인간다움도 잊어버리고 은인도 잊어버리고 하느님도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탐욕 때문에 인간은 하느님과 이웃을 잔인함과 오만함으로 대하기도 합니다.

인간의 오만이 남기는 것은 결국 비극적인 삶뿐입니다.

인간을 위해 목숨까지 바쳐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극진한 사랑을 자주 잊고 지내는 우리는

예화에 나타난 것처럼, 만리장성을 쌓는 부역꾼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면

우리는 단 하루 밤 만에 만리장성을 쌓고 죽음의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송현성당 송현마테오신부)



15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