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사동성당 게시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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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선숙 [sopia640] 쪽지 캡슐

2002-06-24 ㅣ No.10140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 도종환

 

 

  가지 않을 수 없는 고난의 길은 없었다

 

   몇몇 길은 거쳐오지 않았어야 했고

 

   또 어떤 길은 정말 발 디디고 싶지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모든 길을 지나 지금

 

   여기까지 온것이다

 

 

 

     

   한번쯤은 꼭 다시 걸어버고픈 길도 있고

 

   아직도 해거름마다 따라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길도 있다

 

 

 

 

    그 길 때문에 눈시울 젖을 때  많으면서도

 

   내가 걸은 이 길 나서는 새벽이면 남모르게 외롭고

 

   돌아오는 길마다 말하지 않은 쓸쓸한 그늘 짙게 있지

   만

 

   내가 가지 않을 고난의 길은 없었다

 

 

 

 

   그 어떤 쓰라린 길도

 

   내게 물어오지 않고 같이 온 길은 없었다

 

   그 길이 내 앞에 운명처럼 파여 있는 길이라면

 

   더욱 가슴아리고 그 것이 내 발길이 데려온 것

   이라면

 

   발등을 찍고 싶을 때 있지만

 

   내 앞에 있던 모든 길들이 나를 지나

 

   지금 내 속에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엔 안개 무더기로 내려 길을 뭉텅 자르더니

 

   저녁엔 해쳐온 길 가득 나를 버려둔다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오늘 도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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