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음동성당 게시판

* 끈질긴 요청에는(1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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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국길 [fcan] 쪽지 캡슐

2004-10-07 ㅣ No.3650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2004-10-07)

독서 : 갈라 3,1-5 또는 사도 1,12-14 복음 : 루가 11,5-13 또는 루가 1,26-38

* 끈질긴 요청에는 *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중 한 사람에게 어떤 친구가 있다고 하자. 한밤중에 그 친구를 찾아가서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주게. 내 친구 하나가 먼길을 가다가 우리집에 들렀는데 내어놓을 것이 있어야지’ 하고 사정을 한다면 그 친구는 안에서 ‘귀찮게 굴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도 나도 다 잠자리에 들었으니 `일어나서 줄 수가 없네’ 하고 거절할 것이다. 잘 들어라. 이렇게 우정만으로는 일어나서 빵을 내어주지 않겠지만 귀찮게 졸라대면 마침내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청을 들어주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나는 말한다. 구하여라, 받을 것이다. 찾아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구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생선을 달라는 자식에게 뱀을 줄 아비가 어디 있겠으며 달걀을 달라는데 전갈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너희가 악하면서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것, 곧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루가 11,5-­13)

지극히 조용하다. 당연히 말도 없다. 행동함에 소리가 없이 참 기이하다. 아이가 집에 들어오지 않은 적이 있었는데, 이유인즉슨 저녁 산책 후 돌아오니 문이 잠겨 있었다는 것. 초인종 누르기가 싫어 그냥 걷다가 공원 벤치에서 잠이 들었다는 것. 아침에 일어나니 어딘지 몰라서 헤맸다는 것이다. 수업시간에 빠져도 굳이 찾지 않으면 빠졌는지도 모르는 아이. ○○가 없어졌다고 한바탕 뒤집어지고 나면 옷장·이불장 속에서 부스스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아이. 그런데 이 아이는 자기가 필요로 하는 자리에는 빠지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곳 아이들은 배가 아니라 속이 고파서 간식까지 여섯 끼니를 먹으면서도 밤중에 배고픔을 호소하곤 하는데 그때마다 밥을 비벼주거나 라면을 몰래 끓여주는 자리에 아이는 한번도 빠진 적이 없다.
또 요청을 하면 말하는 것이 고마워서 거절하지 않았으며, 내가 외출할 때 답답할까 봐 데리고 나가기도 했다. 얼마나 집요한지 결코 포기하는 법이 없다. ‘그것은 이래서저래서 안 된다’ 하면 대부분 이해를 하고 물러서는데 이 아이는 지쳐서 허락을 할 때까지 끈질기게 와서 ‘수녀님’을 부른다. 그렇게 아이가 편할 수 있도록 방치 아닌 방치를 하다 보니 아이들 대다수가 1년 정도 지나면 가지게 되는 자격증 하나 없이 나이가 되어 퇴소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아이한테서 오늘 복음의 두 가지를 다 본다. 자신의 필요를 끈질기게 구하는 모습과 그 구함이 뱀이고 전갈이면 결코 주지 말아야 할 나의 결단까지. 이 아이가 우리집에서 일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그 한 구성원으로 살아갈 자격을 갖춰야 하는 까닭이다.

강석연 수녀(살레시오 수녀회 마자레로 센터)

- 새와 나무 -

여기 바람 한 점 없는 산속에 서면
어떤 나뭇가지 하나만 흔들린다
그것은 새가
그 위에 날아와 앉았기 때문이다
별일없이 살아가는 뭇사람들 속에서
오직 나만 홀로 흔들리는 것은
당신이
내 안에 날아와 앉았기 때문이다
새는 그 나뭇가지에 집을 짓고
나무는 더이상 흔들리지 않지만
나만 홀로 끝없이 흔들리는 것은
당신이 내 안에 집을 짓지 않은 까닭이다

- 류시화의 詩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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